[미디어펜=김연지 기자]미국과 캐나다의 관세 갈등이 격화하면서 북미 자동차 시장의 경쟁 구도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캐나다에 대규모 생산기지를 둔 토요타와 혼다 등 일본 완성차 업체들의 부담이 커지는 가운데 미국 현지 생산을 확대하고 있는 현대자동차·기아에는 시장 점유율을 넓힐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31일 자동차업계에 따르면 미국과 캐나다의 무역 협상은 지난 22일(현지시간) 최종 결렬됐다. 미국은 협상 결렬 직후 캐나다산 제품 약 200억 달러 규모, 550여개 품목에 50% 관세를 부과했다. 이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내년 1월 1일부터 캐나다산 자동차와 트럭에 대한 관세를 현행 25%에서 50%로 높이고 자동차 부품에도 50%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추가로 예고했다.
캐나다도 맞대응에 나섰다. 캐나다 정부는 지난 25일 미국의 관세 조치에 대응해 다음 달 8일부터 276억 캐나다달러 규모의 미국산 제품에 15~50%의 보복관세를 부과한다고 발표했다. 철강과 유제품, 가전제품, 농업 장비, 펄프·제지, 전자제품 등이 대상이다. 기존 미국산 자동차에 대한 보복관세도 유지한다.
미국과 캐나다는 경제적으로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특히 자동차 산업은 완성차와 부품이 양국 국경을 오가는 긴밀한 공급망을 구축하고 있어 관세 갈등이 장기화할 경우 파장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캐나다에서 차량을 생산해 미국으로 공급하는 완성차 업체는 물론 양국을 오가는 부품에 의존하는 업체들까지 생산비 상승과 공급망 재편 압박을 받을 수 있다.
미국의 캐나다산 자동차·부품 관세 인상 예고에 캐나다도 미국산 제품에 대한 보복관세로 맞서고 있다. 사진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를 묘사한 이미지./사진=AI 생성
◆ 미·캐나다 관세전쟁에 일본 완성차 '비상'
관세 인상의 직격탄을 맞을 것으로 예상되는 곳은 캐나다를 북미 주요 생산거점으로 활용해 온 일본 완성차 업체들이다. 지난해 캐나다에서 생산된 자동차는 약 120만 대로 이 가운데 토요타와 혼다가 차지하는 비중은 75%를 웃돈다. 이 중 상당수가 미국으로 수출됐다. 미국의 50% 자동차 관세가 예정대로 시행될 경우 양사에 상당한 비용 부담이 예상된다.
토요타는 캐나다 온타리오주 케임브리지와 우드스톡에 생산기지를 운영하고 있다. 토요타 캐나다 공장은 지난해 53만5000대 이상의 차량을 생산했으며 올해 1월부터는 북미 시장을 겨냥한 6세대 신형 RAV4 생산을 시작했다. RAV4는 2009년 캐나다 생산을 시작한 이후 누적 생산량이 400만 대를 넘은 토요타의 핵심 북미 전략 차종이다.
특히 토요타는 신형 RAV4 생산을 위해 캐나다에 11억 달러 이상을 새로 투자했다. 6세대 RAV4는 하이브리드(HEV)와 플러그인하이브리드(PHEV)로만 구성돼, 최근 미국에서 빠르게 늘고 있는 친환경 SUV 수요에 대응하는 전략 모델이다. 캐나다 생산 차량에 고율 관세가 적용되면 미국 판매 과정에서 비용 부담이 커지는 동시에 가격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한 대응 부담도 커질 수 있다.
혼다 역시 온타리오주 앨리스턴을 주요 북미 생산거점으로 활용하고 있으며 이곳에서 미국 시장의 주력 SUV인 CR-V 등을 생산한다. 캐나다산 차량이 지난해 혼다의 미국 판매량 가운데 약 4분의 1을 차지하는 만큼 관세 인상이 현실화할 경우 영향이 클 것으로 보인다. 혼다는 USMCA를 둘러싼 불확실성이 이어지면서 북미 신규 조립공장 투자 여부도 재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힌 상태다.
문제는 완성차 생산시설과 공급망을 단기간에 다른 지역으로 옮기기 어렵다는 점이다. 대규모 설비 투자와 협력업체 공급망이 맞물려 있어 생산지를 바꾸는 데 상당한 시간과 비용이 필요하다. 미국 완성차 업체들도 캐나다 생산시설과 부품 공급망을 활용하고 있어 관세 충격이 일본 업체에 그치지 않고 북미 자동차 산업 전반으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 미국 생산 늘리는 현대차·기아…반사이익 기대
반면 현대차·기아는 미국 현지 생산 기반을 확대하는 동시에 하이브리드 판매도 빠르게 늘리고 있어 북미 시장에서 상대적으로 유리한 위치를 점할 가능성이 거론된다. 캐나다산 차량의 비용 부담이 커질 경우 현지 생산 능력과 확대된 친환경차 라인업을 바탕으로 시장 점유율을 넓힐 여지가 있다는 분석이다.
현대차·기아는 미국 내 생산 기반을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현대차 앨라배마 공장과 기아 조지아 공장에 더해 조지아주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를 가동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2025년부터 2028년까지 미국에 총 260억 달러를 투자해 자동차 생산을 비롯해 철강·부품 공급망과 미래 산업 분야의 현지 기반을 강화한다는 계획이다.
특히 일본 업체들과 경쟁이 치열한 하이브리드 시장에서 반사이익 가능성이 거론된다. 지난 7월 현대차의 미국 하이브리드 판매량은 2만2733대로 전년 동월보다 35% 늘었고, 기아는 2만994대로 76.6% 증가했다. 양사의 합산 하이브리드 판매량은 4만3727대로 52.2% 늘었다.
현대차는 미국 내 하이브리드 생산도 강화하고 있다. 현대차는 오는 2030년까지 북미에서 10종 이상의 하이브리드 모델을 운영하고 현지 판매에서 하이브리드 비중을 50%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다. 앨라배마 공장과 HMGMA를 중심으로 하이브리드 생산을 확대하는 한편 북미 현지 부품 조달 비중도 높여 관세 등 통상 리스크에 대한 대응력을 강화한다는 전략이다.
토요타 RAV4와 혼다 CR-V가 현대차 투싼, 기아 스포티지 등과 경쟁하는 대표적인 SUV인 만큼 일본 업체들의 관세 부담이 커지면 현대차·기아가 하이브리드 SUV 시장에서 입지를 넓힐 기회가 될 수 있다.
다만 미국과 캐나다의 관세 갈등이 현대차·기아의 수혜로 곧바로 이어진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업계 관계자는 "현대차·기아가 미국 현지 생산을 확대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일본 업체보다 상대적으로 유리할 수 있지만 북미 자동차 공급망은 미국과 캐나다, 멕시코가 촘촘하게 연결돼 있어 부품 관세에 따른 원가 상승 등의 영향을 완전히 피하기는 어렵다"며 "향후 양국의 추가 협상과 관세 적용 범위, 업체별 공급망 구조에 따라 실제 영향은 달라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디어펜=김연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