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견희 기자] 할머니가 손수레(구르마)를 끌고 시장에 '커피 마실'을 나왔다. 외지인들로 시끄러울 법도 하지만 할머니는 그저 "사람들이 많아서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며 활짝 웃는다. 올해 99세라는 나이와 매일 커피를 마시러 나온다는 이야기도 빼놓지 않았다.
올해 99세 할머니가 매일 커피를 마시러 나온다는 충남 예산군 예산 상설 시장 전경./사진=김견희 기자
2일 본지가 방문한 충남 예산군 예산 상설 시장은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의 손을 거쳐 지난 2023년 개장한 이후 누적 방문객 1000만 명을 돌파한 명소다. 인근에는 예당호와 출렁다리가 위치해 관광지를 둘러본 방문객들이 먹거리를 찾아 예산 상설 시장을 찾는 식이다. 더본코리아는 지역 상생 프로젝트로 예산군과 손잡고 1920년대 개장 이후 쇠락의 길을 걷던 예산 전통 시장의 상권을 부활시켰다.
일각에서는 재단장한 전통 시장이 쇼핑 센터 내 푸드코트를 방불케 한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지만, 현장은 결코 인위적으로 꾸며낸 테마 파크의 모습이 아니었다. 수십 년 자리를 지켜온 노점과 할머니의 투박한 좌판 그리고 1970~1980년대 감성을 입힌 세련된 식음료(F&B) 점포가 이질감 없이 어우러져 있었다.
충남 예산군 예산 상설 시장 내에서 카페 다방면커피를 운영하고 있는 최선호 사장이 기자의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사진=김견희 기자
예산 시장에서 복고풍 카페를 운영 중인 최선호 다방면커피 대표는 "5일, 10일 장이 열릴 때면 할머니들의 좌판 장사가 오늘보다 더 즐비해진다"며 "제가 어릴 때부터 나오셨던 분들"이라고 웃으며 귀띔했다. 최 대표가 운영하는 다방면커피 역시 조부모 때부터 수예점으로 운영하던 자리였다고 한다.
상권이 대대적인 리모델링을 거치며 젊은 층이 몰렸지만, 기존 상인들이 쫓겨나는 '젠트리피케이션(둥지 내몰림)' 보다 신구(新舊)가 조화롭게 공존하는 생태계가 만들어졌다.
◆ 30년 떡집·잡화점, 특산물 F&B로 체질 개선
더본코리아의 상권 기획력이 기존 상인들의 상업 체질 개선으로 이어진 사례도 돋보였다. 예산 출신 점주가 운영하는 낙원약과는 30년간 떡 장사를 이어오던 '낙원떡집'을 최근 트렌드에 맞춰 약과 전문점으로 재단장한 곳이다. 예산군의 특산물인 사과를 활용한 사과 페스츄리 약과가 대표 메뉴다.
특히 이 매장은 오프라인 시장을 찾는 관광객 수요를 넘어, 현재 온라인 판매까지 성황을 이루며 수익 다각화에 성공했다.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가 지역 특성과 연관된 먹거리를 현장 소비에 이어 온라인 주문과 선물 세트로 확장해야 지속적인 수익이 창출된다고 강조한 비즈니스 모델이 실현된 대표적 사례다.
오디션 프로그램 '프로듀스 101 시즌4'에 출연했던 아이돌 출신 김국헌 한신광정육점 사장./사진=김견희 기자
정진표 낙원약과 사장은 "30년 간 떡 장사를 해온 이력을 살려 전통 다과인 약과로 더본코리아로부터 메뉴 컨설팅을 받았다"며 "현재 주요 고객층은 예산 상설 시장 방문객이거나, 최근에는 인터넷 주문도 늘어 배송 나가는 물량도 많다"고 말했다.
광시 카스테라 역시 기존 잡화점에서 메뉴 컨설팅을 받아 카스테라 전문점으로 재탄생한 상가다. 이강민 광시카스테라 사장은 예산 출신 점주가 부모님이 운영하던 '광암수퍼마켙'을 이어받아 지역 특색을 담은 사과 카스테라를 판매하고 있다. 가게 이름은 예산군 행정 구역인 광시면에 착안했다.
충남 예산군 예산 상설 시장 광시카스테라 전경. 기존 잡화점에서 메뉴 컨설팅을 받아 카스테라 전문점으로 재탄생한 상가다. /사진=김견희 기자
◆ 기존 상권 훼손 없이 체류형 문화 완성
청년 창업자들의 유입도 전통 시장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한신광정육점에선 오디션 프로그램 '프로듀스 101 시즌4'에 출연했던 아이돌 출신 김국헌 사장이 앞치마를 두르고 손님을 맞는다. 이 매장은 요리 경연 프로그램 '레미제라블'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둔 김 사장과 양경민 등이 소속된 리본브라더스가 운영을 맡고 있다.
한신광정육점에서 구입한 신선한 고기는 인근 불판 빌려주는 집에서 상차림을 구매한 뒤, 장터 광장에서 바로 구워 먹을 수 있도록 동선이 짜여 있다. 기존 정육점의 옛 감성에 체류형 외식 시스템이 더해지면서 예산시장만의 특별한 먹거리 문화를 완성했다는 평가다.
충남 예산군 예산 상설 시장 내 좌판. /사진=김견희 기자
예산 시장의 풍경은 낡은 상권을 획일적으로 밀어내고 거대 자본을 주입하는 재개발 방식이 아니라, 지역민의 삶을 보존하면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지역 상생 비즈니스를 보여준다. 단기간 얻는 성과보다 지역민과 오래 할 수 있는 구조를 설계하는 과정에서 수익이 창출된다는 백 대표의 상생 철학을 현장에 이식했다. 단순 '핫 플레이스'를 넘어 지속 가능한 B2G(기업·정부 간 거래) 사업의 대표 사례로 평가되는 이유다.
[미디어펜=김견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