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박재훈 기자]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글로벌 제약사를 상대로 약가 인하와 미국 내 생산 확대를 동시에 압박하면서 글로벌 제약·바이오 업계의 대응이 본격화되고 있다. 최혜국(이하 MFN) 약가 협약 대상이 26개사로 확대된 가운데 오는 29일부터 미국 내 생산시설이 없는 제약사의 브랜드·특허 의약품에 대한 100% 관세도 본격 적용될 예정이다.
5일 업계에 따르면 트럼프 행정부는 최근 알콘, 아스텔라스, 비온메디슨스, 브리지바이오, CSL, 교와기린, 선파마, 테바, UCB 등 9개 제약사와 추가로 MFN 약가 협약을 체결했다. 이에 따라 MFN 협약에 참여한 제약사는 총 26곳으로 늘었으며 백악관은 이들 기업이 미국 브랜드 의약품 시장의 약 89~90%를 포괄한다고 밝혔다.
◆ 약가 인하 대신 미국 생산…MFN 협약 확대
이번 협약은 단순한 약가 인하를 넘어 미국 내 생산 확대와 연계됐다는 점이 주목된다. 참여 기업들은 각 주의 메디케이드 프로그램에 자사 의약품을 최혜국 수준의 가격으로 공급하고 향후 출시하는 신약에도 같은 가격 원칙을 적용하기로 합의했다.
대신 미국 내 생산시설 확대와 함께 원료의약품 수입 관세 면제 등의 혜택을 받는다. 이번에 새롭게 협약을 맺은 9개사는 미국 내 제조시설에 총 196억 달러를 투자하기로 약속했다. UCB와 선파마, 테바, 아스텔라스 등 4개사는 총 290메트릭톤 규모의 원료의약품을 미국 비축분으로 기부하기로 했다.
앞서 체결된 1차 협약에는 화이자, 일라이릴리, 노보노디스크, 암젠, BMS, 베링거인겔하임, 젠텍, 길리어드, GSK, MSD, 노바티스, 사노피, 존슨앤드존슨, 애브비, 리제네론 등 글로벌 대형 제약사가 참여했다.
1차 협약이 직접적인 약가 인하와 메디케어 대상 할인에 상대적으로 초점을 맞췄다면 이번 2차 협약은 메디케이드 대상 MFN 가격과 미국 내 제조시설 투자를 결합한 형태다. 사실상 미국 시장에서의 약가 인하와 현지 생산 확대를 맞바꾸는 구조인 셈이다.
◆ 9월 29일 100% 관세 발효…K-바이오 영향은 제한적
삼성바이오로직스 미국 록빌 공장 전경./사진=삼성바이오로직스
약가 협약 확대와 맞물려 글로벌 제약사의 미국 생산기지 확보 압박도 한층 커질 전망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내 제조시설이 없는 제약사의 브랜드·특허 의약품에 100%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예고한 데 이어 올해 관련 포고령을 정식으로 발효했다.
관세는 기업 규모 등에 따라 단계적으로 적용된다. 대형 제조사는 지난 7월 31일부터 적용 대상에 포함됐으며 그 외 기업에 대한 100% 관세는 오는 29일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다만 한국과 EU(유럽연합), 일본, 스위스·리히텐슈타인, 영국 등 미국과 별도의 무역합의를 체결한 국가에서 생산되는 의약품에는 15% 수준의 관세가 적용된다. MFN 협약과 미국 내 생산 확대 계약을 체결한 기업에는 2029년 1월까지 0% 관세가 적용되는 예외도 마련됐다.
다만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에 미치는 단기적인 영향은 상대적으로 제한적일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 기업들이 이번 26개 MFN 협약 대상에 직접 포함되지 않은 데다 주요 수출 품목인 바이오시밀러와 바이오의약품 생산 구조가 관세 부담을 일부 회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경우 CDMO(위탁개발생산) 사업 특성상 완제품을 미국에 직접 판매하는 고객사가 관세 영향을 받는 구조다. 특히 주요 고객사 가운데 이미 MFN 협약에 참여한 기업이 상당수 포함돼 있어 고객사의 현지 생산 및 관세 대응에 따라 국내 CDMO 업체에 미치는 직접적인 부담은 크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사진 왼쪽부터) 기우성 셀트리온 부회장, 토드 윙지 셀트리온 브랜치버그 대표이사, 박경옥 셀트리온홀딩스 수석 부회장, 서정진 셀트리온그룹 회장, 토마스 킨 주니어 연방 뉴저지 하원의원, 앤디 김 연방 뉴저지 상원의원이 미국 브랜치버그 생산시설 개소식에서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사진=셀트리온
셀트리온 역시 미국 매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바이오시밀러가 이번 100% 관세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점이 변수다. 여기에 신약 '짐펜트라'(램시마SC)는 미국 뉴저지 브랜치버그 현지 공장에서 생산하고 있어 관세 부담을 사실상 해소한 상태다.
다만 중장기적으로는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는 가능성도 제기된다. 현재 관세 정책에서 제네릭과 바이오시밀러, 관련 원료의약품은 제외됐지만 향후 정책 변화 가능성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앞서 제네릭 의약품에 대해서도 향후 고율 관세를 부과할 가능성을 언급한 바 있다.
이에 따라 국내 업계에서는 당장 바이오시밀러와 CDMO를 중심으로 한 수출에는 큰 충격이 없더라도 미국 현지 생산능력 확보와 공급망 다변화 필요성이 더욱 커질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미국이 약가 인하와 관세를 동시에 활용해 글로벌 제약사의 생산시설을 자국으로 유도하고 있는 만큼 향후 의약품뿐 아니라 원료의약품과 생산공정까지 미국 중심으로 재편될 가능성이 변수로 꼽힌다.
업계 관계자는 "현재 국내 기업의 주력 수출 품목과 생산 구조를 고려하면 이번 조치가 단기간에 큰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면서도 "다만 미국의 관세와 약가 정책이 계속 확대될 수 있는 만큼 미국 현지 생산과 공급망 대응 전략을 지속적으로 주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미디어펜=박재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