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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습-석화②] “수술대 오른 K-석화”…고부가로 체질 개선 돌입

입력 2026-09-15 15:43:29 | 수정 2026-09-15 15:46:57
박준모 기자 | jmpark@mediapen.com
대한민국 수출을 견인해 온 효자 산업인 석유화학이 구조적 위기에 몰렸다. 최대 수출 시장이자 ‘세계의 공장’이었던 중국이 자급률을 대폭 끌어올리며 ‘글로벌 석화 공룡’으로 급부상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주기적인 경기 변동에 따라 시간이 지나면 수요가 회복됐다면, 이번에는 중국의 공급과잉으로 인해 위기가 나타났다는 점에서 국내 석화업계의 불안감도 그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다. 이에 우리나라에서 어떻게 대응하고 있고, 앞으로의 생존 전략은 무엇인지 짚어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미디어펜=박준모 기자] 중국의 대규모 석유화학 설비 증설로 공급과잉이 장기화하면서 국내 석유화학업계가 본격적인 체질 개선에 나서고 있다. 수익성이 떨어진 범용제품 생산설비를 줄이는 동시에 고부가·스페셜티 제품으로 사업의 무게 중심을 옮기고 있다. 

중국의 대규모 석유화학 설비 증설로 공급과잉이 장기화하면서 국내 석유화학업계가 본격적인 체질 개선에 나서고 있다. 사진은 울산석유화학단지 전경./사진=미디어펜 김상문 기자



15일 업계에 따르면 이달 국내 석유화학 산업의 사업재편 1호 결실인 H&L 어드밴스드가 공식 출범했다. 대산산업단지 내에서 롯데케미칼과 HD현대 계열사의 석유화학 사업을 통합한 법인으로, 중복 설비를 효율화하고 사업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구조개편에 본격적으로 나선다는 계획이다. 

먼저 롯데케미칼의 NCC(나프타분해설비) 가동을 중단하기로 했다. 이를 통해 연간 110만 톤 규모의 에틸렌 생산능력을 감축하고, 범용재 생산량을 줄여나간다는 방침이다. 

이처럼 국내 석유화학 산업 내에서 사업재편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는 이유도 결국은 중국의 공급과잉 때문이다. 중국이 생산능력을 빠르게 확대하면서 국내 업체들이 과거와 같은 가동률과 수익성을 유지하기 어려워졌다. 

특히 에틸렌을 비롯해 PE(폴리에틸렌), PP(폴리프로필렌) 등 범용재는 품질 차이가 크지 않아 가격이 경쟁력을 좌우하는 경우가 많다. 중국 업체들이 대규모 설비를 앞세워 물량을 확대할수록 국내 기업들이 생산량을 유지하는 것 자체가 수익성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됐다. 

이에 정부도 국내 석유화학산업의 공급과잉을 해소하고 산업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사업재편을 지원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업계와 구조개편 방안을 논의해 온 정부는 국내 에틸렌 생산능력을 270만~370만 톤 감축한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대산에서 첫 사업재편이 가시화된 데 이어 추가적인 구조개편 논의도 이어지고 있다.

◆여수로 확산하는 사업재편…추가 감축 논의에 기대감

대산에 이어 여수에서도 사업재편이 결실이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여천NCC·롯데케미칼·한화솔루션·DL케미칼은 지난 7월 8000억 원 규모의 자구책을 마련해 정부 승인을 받은 상태다. 

여수 사업재편에서의 핵심은 여천NCC의 설비 가동 중단이다. 여천NCC는 NCC 3호기를 이미 생산을 멈췄는데, 2호기까지 추가로 중단한다는 계획이다. 이를 통해 연간 에틸렌 생산능력은 139만 톤이 줄어들 예정이다. 남은 1호기는 롯데케미칼 여수공장과 합쳐 통합법인으로 운영한다. 

대산과 여수의 사업재편이 계획대로 진행된다면 에틸렌 생산능력 감축은 연간 249만 톤에 달한다. 하지만 정부의 목표에는 미치지 못해 추가적인 사업재편이 필요한 상황이다.

다만 추가 사업재편까지는 다소 시간이 필요할 것로 보인다. LG화학과 GS칼텍스도 여수에서 사업재편을 논의하고 있다. 노후화된 LG화학의 여수 1공장(연산 120만 톤)을 GS칼텍스 설비와 연계하거나 매각·통합하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으나 이견이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울산에서의 논의도 좀처럼 속도가 나지 않고 있다. S-OIL은 내년부터 ‘샤힌 프로젝트’가 본격 생산에 들어가면서 연간 에틸렌 180만 톤, 프로필렌 75만 톤을 공급하게 된다. SK지오센트릭과 대한유화는 S-OIL 생산능력이 확대되는 상황에서 자사 설비 가동 중단에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석유화학업계 관계자는 “이번 사업재편은 단순한 생산설비 감축을 넘어 국내 석유화학산업의 경쟁 방식을 바꾸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며 “사업재편이 계획대로 진행된다면 중국과의 경쟁은 최소화하면서 수익성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범용 내주고 ‘스페셜티’로…초격차 기술로 중국 따돌린다

NCC 감축에 이어 고부가 제품 확대에도 나서고 있다. 범용재 비중을 낮추는 대신 자동차·전기전자·반도체·의료·친환경 등에 사용되는 고기능성 소재를 새로운 성장축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범용재는 중국과의 직접적인 경쟁이 불가피하다면 고부가·스페셜티 제품은 고객사의 요구에 맞춘 기술 개발과 품질 인증이 필요해 상대적으로 진입장벽이 높다. 특정 고객의 생산공정에 맞춰 소재를 개발하는 경우 제품을 쉽게 바꾸기 어렵다는 점도 장점으로 꼽힌다. 

실제로 국내 석유화학업체들은 각사별로 특화된 스페셜티 제품 생산 확대에 집중하고 있다. 먼저 LG화학은 반도체용 IPA(이소프로필알코올)와 SSBR(고성능 합성고무) 등 고부가 제품을 중심으로 석유화학 사업을 고도화하고 있다. 또 전기차와 로봇 등 차세대 산업이 요구하는 내열성·유연성·내구성을 확보한 HRTP 소재를 통해서도 고부가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롯데케미칼 역시 범용 석화사업 비중을 줄이고 고기능성 소재를 확대하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율촌 컴파운딩 공장을 거점으로 엔지니어링플라스틱(EP) 등 고부가 소재를 확대하고, 첨단소재·정밀화학·전지소재·수소에너지 등을 새로운 성장축으로 육성한다는 방침이다.

한화솔루션도 기존 범용 제품 중심의 사업 구조를 고도화하기 위해 고부가 특화제품 확대에 집중하고 있다. XLPE(케이블 절연용 가교폴리에틸렌)를 통해 최근 수요가 늘어나고 있는 전력망 시장에서 입지를 확대한다는 전략이다. 

금호석유화학은 합성고무 분야에서 고기능성 제품 개발에 힘을 싣고 있다. 특히 전기차용 타이어 등에 활용되는 고기능성 합성고무와 탄소나노튜브(CNT) 등 차별화된 소재를 통해 범용 석화제품과의 경쟁을 피한다는 구상이다. 

이처럼 국내 석유화학업체들이 고부가 사업에 투자하는 이유는 중국 기업과의 가격 경쟁이 불가피한 범용재에서 벗어나 기술력과 고객 기반을 통해 수익성을 확보하려는 것이다.

다만 스페셜티 전환을 위한 투자는 일회성에 그쳐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중국 업체들도 범용재를 통해 확보한 자본과 생산 경험을 바탕으로 고부가 영역까지 사업을 확대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중국의 추격을 따돌리고 기술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연구개발과 제품 고도화가 꾸준히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국내 기업들이 스페셜티로 전환한다고 하더라도 중국이 추격한다면 다시 같은 치킨게임에 직면할 위험이 있다”며 “중국과의 기술 격차를 꾸준히 넓힐 수 있는 지속적인 R&D 투자는 물론 고부가 영역 안에서도 모방이 불가능한 초격차 기술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언급했다. 

[미디어펜=박준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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