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이소희 기자] 정부가 계절별 기온 변화에 맞춰 송전선로의 전력 수송능력을 탄력적으로 조정하는 계절별 송전용량(SAR, Seasonal Allowable Rating) 시범사업에 들어간다.
재생에너지 발전 확대에 따라 전력망 신설만으로는 늘어나는 전력 수요와 발전량을 감당하기 어려운 만큼, 기존 송전망의 활용도를 높여 전력계통 운영의 효율성을 끌어올리겠다는 취지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9월 19일부터 1년간 전북 진안과 충남 금산 지역에서 SAR 시범사업을 시행한다고 밝혔다. 대상 지역은 올해 봄철 계통 분석 결과 상정 고장 상황에서 송전선로 과부하가 발생할 우려가 있는 지역을 중심으로 선정됐다.
SAR는 송전선로의 열적 특성에 주목한 제도다. 송전선로는 전류가 흐르면서 열이 발생하고, 주변 온도가 높을수록 선로의 열적 여유가 줄어든다. 반대로 기온이 낮아지면 동일한 선로에서도 더 많은 전력을 송전할 수 있다.
기상예보·센서 취득정보 기반 일정 시간 단위로 계산된 동적 송전용량(DLR)의 주요 개념./자료=기후부
현재 국내 전력망은 가장 불리한 조건에서도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 가능하도록 정적 송전용량(SLR, Static Line Rating)을 적용하고 있다. 대기온도 40도, 풍속 0.5m/s라는 최악의 조건을 가정해 송전 가능 용량을 정하는 방식이다.
문제는 실제 계통 운영 여건과 이 같은 보수적인 기준 사이에 차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기온이 낮은 계절에도 연중 최고기온을 기준으로 설정된 송전용량을 적용하면 실제 선로가 가진 송전 여력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번 시범사업에서는 이 같은 특성을 반영해 계절별 최고기온을 기준으로 송전선로 용량을 조정한다. 상대적으로 기온이 낮은 계절에는 송전 가능 용량을 높이고, 고온기에는 이에 맞춰 용량을 낮추는 방식이다.
핵심 기대효과는 재생에너지 출력제어 감소다. 송전망의 물리적 여유가 부족하면 발전소가 생산할 수 있는 전력이 있어도 계통 안정성을 위해 발전량을 제한하는 출력제어가 발생한다. SAR를 통해 송전 여력이 확대되면 늘어난 선로 용량만큼 재생에너지 전력을 추가로 계통에 수용할 수 있다는 게 기후부의 설명이다.
송전망 정비 측면에서도 활용도가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송전선로나 변전설비를 점검·정비하려면 해당 설비를 계통에서 일시적으로 분리하는 ‘휴전’이 필요한데, 계통 여유가 부족한 지역에서는 다른 선로로 전력을 우회시키는 데 제약이 발생할 수 있다.
SAR를 적용하면 송전 여력이 커지는 시기에 정비를 시행할 수 있어 기존에는 계통 여건상 휴전이 어려웠던 설비의 유지·보수에도 여유가 생길 수 있다. 송전용량을 높이는 데 그치지 않고 전력망 운영의 시간적 유연성을 확보하는 효과도 기대되는 이유다.
이번 사업은 향후 동적 송전용량(DLR, Dynamic Line Rating)으로 전력망 운영방식을 고도화하기 위한 단계적 접근으로도 볼 수 있다.
DLR은 기상 및 선로 주변 환경 등을 고려해 송전선로가 실제로 감당할 수 있는 전력량을 보다 유연하게 산정하는 기술이다. SAR는 이 가운데 계절별 온도 특성을 반영하는 방식이며, 한 단계 더 나아가 대기온도 고려 송전용량(AAR, Ambient Adjusted Rating)은 송전선로 주변의 실제 대기온도를 반영해 송전용량을 조정한다.
해외에서는 이미 이러한 방식이 활용되고 있다. 유럽에서는 독일을 포함한 27개국에서 SAR, AAR 등 동적 송전용량 관련 방식을 적용하고 있으며 미국에서도 관련 기술이 운영되고 있다.
국내에서도 재생에너지 보급 확대와 함께 DLR 적용을 위한 연구가 본격화되고 있다. 특히 정부가 재생에너지 확대 목표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신규 송전망 건설과 함께 기존 전력망의 숨은 송전 여력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활용하느냐가 주요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전력망을 새로 건설하는 데는 상당한 시간과 비용이 필요하고, 인허가와 지역 수용성 문제 등도 뒤따른다. 반면 기존 송전망의 운영기준을 실제 기상·계통 여건에 맞춰 유연하게 조정하면 신규 설비 투자와 병행해 단기적으로 전력망 수용능력을 높일 여지가 있다.
SAR 확대가 곧바로 모든 송전선로의 용량 증대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기온과 풍속 등 환경조건뿐 아니라 계통의 상정 고장 상황, 주변 선로의 여유도 등 전력계통 전체의 안정성을 종합적으로 검토할 수 있게 하는 검증의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기후부는 이번 시범사업의 운영 결과를 바탕으로 효과를 검증하고, 향후 AAR 시범사업 추가 운영 등 DLR 적용 확대 방안도 검토할 계획이다.
이재식 기후부 전력망정책관은 “이번 시범사업을 통해 전력망을 보다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고, 출력 제어도 감소시킬 수 있을 것”이라며 “앞으로도 재생에너지 100GW 확대를 위한 전력망 여건 확보를 다각적으로 추진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이번 SAR 시범사업의 의미는 새로운 송전망을 추가로 건설하는 것과 별개로 현재 구축된 전력망을 계절과 기상 여건에 맞춰 보다 정밀하게 활용하는 운영체계로 전환하는 데 있다. 시범사업을 통해 실제 송전용량 증가분과 출력제어 감소 효과가 확인될 경우, 향후 AAR 등 보다 정교한 동적 송전용량 기술로 전력망 운영을 확대하는 기반이 마련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