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서동영 기자]공사비 급등과 건설경기 침체가 길어지면서, 건설사들이 대형 사업에서도 주저 없이 발을 빼고 있다. 사업성이 나오지 않거나 감당하기 어려운 사업이라면 일찍 정리하는 편이 낫다는 판단이 건설업계 전반에 걸쳐 퍼지고 있어서다. 건설경기가 회복되기까지 이런 기조가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공사비 급등과 건설경기 침체가 길어지면서, 건설사들이 대형 사업에서도 주저 없이 발을 빼는 모습이다./사진=미디어펜 김상문 기자
◆잔금 9억 원 앞에서 멈춘 대전역세권 개발
22일 업계에 따르면 대전역세권 복합2-1구역에 참여한 한화 컨소시엄은 납부기한인 지난 19일까지 한국철도공사(코레일)에 토지대금 잔금을 내지 않았다. 전체 토지대금 859억 원 가운데 남은 돈은 9억 원에 불과했다.
대전 역세권 복합2-1구역은 대전역 동광장 일대 2만8391㎡에 약 1조3000억 원을 들여 주거·업무·판매·문화시설을 짓는 사업이다. 2008년부터 추진됐지만 사업자 공모가 여러 차례 무산됐고, 2020년 한화 건설부문 등이 참여한 PFV가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으나 끝내 착공하지 못하게 됐다.
업계에서는 PFV가 마지막 9억 원을 내지 않은 데 주목한다. 자금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잔금을 완납하는 순간 사업에서 빠져나오기가 훨씬 어려워지기 때문이라는 해석이다. PFV로서는 최고 72층 주상복합을 분양해 수익을 내야 한다. 그러나 대전, 그중에서도 원도심 부동산 시장이 침체한 데다 공사비까지 크게 뛰었다.
결국 PFV로서는 도저히 사업성이 나오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한화 건설부문으로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이라고 이해했다.
◆국책사업도 예외 없다…가덕도신공항 컨소시엄 '흔들'
건설사의 사업 참여 포기는 국가 핵심 인프라 사업도 예외가 아니다. 10조7000억 원 규모 가덕도신공항 사업이 그렇다. 최근 가덕도신공항 부지조성공사 컨소시엄에 지분 5%로 참여한 중견 건설사 BS한양은 주관사인 대우건설에 탈퇴 공문을 보냈다. 대우건설은 구성사 탈퇴 절차를 조달청에 구두로 문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탈퇴는 조달청 승인을 거쳐야 확정된다.
BS한양은 바다를 메워 공항을 짓기에 예상보다 훨씬 까다로운 난공사가 될 수 있어 탈퇴를 결심했다고 이유를 밝혔다.
다만 업계에서는 애초에 국토교통부가 적절한 공사비를 줬더라면 탈퇴까지는 나오지 않았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미 부산·경남 지역 건설사 12~13곳은 물가 상승분이 반영되지 않으면 수십억 원대 적자가 불가피하다며 정부에 공사비 증액 탄원서를 낸 상황이다. 이에 대우건설 컨소시엄은 10조7000억 원 규모인 가덕도신공항 부지조성공사 공사비에서 약 6200억 원을 늘려달라고 국토부에 요구했다.
공사비가 급격히 오른 상황에서 건설사들은 선별수주를 기조로 내세우고 있다./사진=미디어펜 김상문 기자
◆'수주가 곧 성장', 더는 통하지 않는다
이처럼 건설사들이 사업 포기를 선언하는 이유는 이미 들인 비용을 일부 잃더라도 사업이 본궤도에 오르기 전에 빠지는 편이 더 큰 손실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단 착공하면 책임준공 의무와 PF 보증 등에 묶여 발을 빼기가 사실상 어려워지는 게 현실이다. 이는 수주 규모가 곧 성장의 지표로 통했던 과거와는 다른 모습이다.
이런 배경에는 공사비 상승이 한몫한다. 코로나19와 러-우전쟁, 중동전쟁 발발 이후 공사비가 급격하게 올랐는데, 한국건설기술연구원에 따르면 건설공사비지수는 지난 8월 138.74로 1년 전(130.91)보다 6% 올랐다. 12개월 연속 상승으로 역대 최고치다. 2020년(100)과 비교하면 6년 새 공사비가 40% 가까이 뛴 셈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직후인 2022년 2월(120.14)보다도 15% 이상 높다. 올해 초 중동 전쟁이 터진 뒤에는 단열재, 접착제 등 일부 자재 가격이 30~50%까지 오르면서 상승세가 다시 가팔라졌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공격적으로 따낸 사업들이 원가율 상승과 대규모 손실로 돌아오면서 업계 분위기는 신중함으로 바뀌었다.
주요 건설사들이 최근 경영 기조로 일제히 '선별 수주'를 내건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얼마나 많이 따내느냐보다 원가를 관리할 수 있는 사업을 얼마나 확보하느냐가 실적을 가른다는 인식이 자리 잡았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판단이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본다. 발주처가 적정 공사비를 반영하고 물가변동분 보전, 공사기간 현실화 등 사업성을 담보할 장치를 마련하지 않는 한 건설사의 사업 포기가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돈이 되는 사업이면 어디든 다 해야 하지만, 사업성이 안 나오면 못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건설사 관계자도 "아니다 싶으면 초장에 빠지는 게 맞다"며 "어느 건설사든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현재 기조를 이어 나가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미디어펜=서동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