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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우현의 아틀라스] 박정희 서거일에 돌아본 정치의 품격, 그리고 기업가정신

입력 2026-10-26 11:15:14 | 수정 2026-10-26 11:15:14
조우현 기자 | sweetwork@mediapen.com

조우현 기자

[미디어펜=조우현 기자]"국민을 납득시키는 게 바로 정치 아니겠는가."

대한민국 근현대사를 아무리 들여다봐도 이만한 명대사가 없지 싶다. 1961년 6월 27일, 군사정변 직후 최고권력자 박정희 앞에 불려간 이병철 삼성 창업회장이 던진 말이다. 당시 군부는 주요 기업인들을 '부정축재자'로 규정해 이미 형무소에 줄줄이 가두고 재산을 압류한 상태였다. 일본에 머물다 귀국해 서슬 퍼런 권력 앞에 선 이병철은 그럼에도 주눅 들지 않았다.

이병철은 수익의 120%를 세금으로 내라는 엉터리 세법을 조목조목 짚으며 "기업인을 가두기보다 경제건설에 뛰게 하는 것이 나라에 이득"이라고 받아쳤다. 박정희가 "그걸 국민이 납득하겠느냐"며 고민하자, 정곡을 찌른 대답이 바로 저 한마디였다. 이 담판 직후 군부는 구속했던 기업인들을 석방했고, 전 재산 몰수 대신 공장을 지어 주식을 국가에 납부하는 방식으로 법을 바꿨다. 이후에는 이병철을 초대 회장으로 앉혀 지금의 한국경제인협회(전 전국경제인연합회)를 출범시켰다. 

이병철의 '소신 발언'이 없었다면 결코 일어날 수 없었던 반전이다. 권력자에게 정치가 감당해야 할 본연의 책무를 정면으로 언급했고, 지도자는 그 직언을 피하지 않고 수용했다. 비굴하게 머리를 조아리거나 권력으로 누르는 대신, 각자의 영역에서 국가의 명운을 걸고 담판을 지은 것이다. 요즘 세상에선 찾아보기 힘든 품격이라고 회고하면 낭만이 지나친 걸까. 

정치가 판을 깔고 기업이 증명해낸 한강의 기적 앞에, 시대를 불문하고 그를 깎아내리려는 프레임은 무력하다. 본질이 아닐뿐더러, 대한민국 국토 전체가 사실상 '박정희 박물관'이기 때문이다.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포항 제철소, 울산 조선소, 구미 전자산단만 둘러봐도 알 수 있다. 1970년대 밀어붙인 '중화학공업화 선언'이 없었다면 지금의 반도체, 자동차, 방산은 마주할 수 없었다. 박정희가 토대를 놓았기에 오늘날의 기업도, 미래도 존재한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사진=박정희대통령 탄생 100돌 기념잡지 '박정희정신-미래 100년 박정희에게 길을 묻다' 2017 1~2월 창간호


정치가 판을 깔고 기업이 증명해낸 한강의 기적 앞에, 시대를 불문하고 그를 깎아내리려는  프레임은 무력하다. 본질이 아닐뿐더러, 대한민국 국토 전체가 사실상 '박정희 박물관'이기 때문이다.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포항 제철소, 울산 조선소, 구미 전자산단만 둘러봐도 알 수 있다. 1970년대 밀어붙인 '중화학공업화 선언'이 없었다면 지금의 반도체, 자동차, 방산은 마주할 수 없었다. 박정희가 토대를 놓았기에 오늘날의 기업도, 미래도 존재한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물론 지도자의 결단만으로 된 것은 아니다. 500원짜리 지폐 한 장 들고 조선소를 짓겠다던 정주영의 무모함, 그룹의 명운을 걸고 반도체에 베팅한 이병철의 결기는 대한민국 현대사에 빠질 수 없는 명장면이다. 지도자의 결단과 기업가정신이 맞물려 전무후무한 기적을 만들어낸 것이다. 그 모든 결실을 누리고 사는 우리는 그야말로 축복받은 국민이다.

그런데 지금은 어떨까. 품격이나 낭만은 기대 자체가 불가능하다. 미국과 중국은 자국 기업을 밀어주기 위해 법과 제도를 뜯어고치며 뛰고 있는데, 우리 정치는 선대가 깔아놓은 인프라에 기대 기업을 길들이기의 대상으로만 바라본다. 지원은커녕 규제만 촘촘하다. 당장 호남 반도체 팹(Fab) 유치 논란만 봐도 그렇다. 

인프라는 물론 용수도 전력도 어설픈 곳에 공장을 지으라며 정치 논리를 앞세우는 권력자와, 누가 봐도 강요된 선택을 '지역 균형을 위한 자발적 투자'라 포장하는 기업의 모습은 안타깝다 못해 허탈하다. 정치는 기업을 '정치 논리의 하수인' 정도로 취급하고, 기업은 눈치를 보느라 입을 닫는다. 선대들이 가졌던 꿈과 야망은 사라지고, 그저 몸을 사리는 것이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유일한 지혜가 돼버린 셈이다.

박정희 대통령 서거일을 맞아 지금으로선 아득해 보이는 정치와 경제의 품격을 떠올린다. 선배 세대가 어렵게 쌓아 올린 유산에 기대어 살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정치는 표를 위해 기업 팔을 비틀고, 기업은 그저 눈치나 보는 지금의 방식으론 결코 오래 버틸 수 없다. 과거의 기적을 갉아먹으며 안주하기엔 우리의 미래가 아깝다. 정치가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고 기업이 본래의 야성을 회복할 때, 또 한 번의 도약을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미디어펜=조우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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