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이소희 기자] 한국이 아세안(ASEAN)과 한·중·일이 참여하는 아세안+3 협력체를 중심으로 역내 식량안보 강화에 나서는 한편, 한국형 스마트팜과 K-푸드의 해외시장 진출 확대를 위한 농업 외교에 속도를 내고 있다.
기후변화에 따른 자연재해와 글로벌 공급망 불안이 식량안보의 주요 변수로 떠오른 가운데, 식량 비축과 농업기술 협력을 결합해 역내 농업 협력의 실질적인 성과를 만들어 내겠다는 전략이다.
농림축산식품부는 김종구 차관이 지난 10월 30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제26차 아세안+3 농림장관회의에 참석해 역내 식량안보 강화와 지속가능한 농업 발전을 위한 협력 의지를 밝혔다고 전했다.
김종구 농식품부 차관이 아세안+3 농림장관회의 참석해 회원국 간 연대와 협력을 다졌다./자료사진=농식품부
김 차관은 기조연설에서 비상 상황에 대비한 역내 식량안보망 구축, 기후변화 공동 대응, 디지털·혁신 기술의 농업 현장 확산을 주요 협력 과제로 제시했다.
특히 한국의 아세안+3 비상쌀비축제(APTERR) 기여 실적을 강조했다. APTERR은 아세안 회원국을 비롯해 한국·중국·일본이 참여하는 역내 비상시 쌀 공급 체계다. 한국은 2013년부터 운영된 이 제도의 누적 비축 물량 78만 톤 가운데 약 72%를 기여했으며, 올해에도 5900톤의 쌀을 지원할 계획이다.
이는 자연재해 등으로 식량 수급에 차질이 발생할 경우 역내 국가들이 공동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한국이 식량안보 협력의 핵심 역할을 수행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농업기술 협력도 주요 의제로 제시됐다. 농식품부는 스마트농업 육성 기본계획을 바탕으로 데이터 기반 작물 생육 제어, 인공지능(AI)을 활용한 병해충 예찰, 드론 방제 기술 등을 소개했다. 농림 특화위성 발사를 통한 정밀과학 농정 고도화 계획도 공유했다.
농업 생산성 향상과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농업기술의 디지털 전환이 중요해지는 만큼, 한국의 스마트농업 기술을 아세안 회원국의 농업 현장에 확산하는 협력을 지속적으로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이번 방문에서 주목되는 또 다른 성과는 싱가포르와의 스마트팜 협력 기반 마련이다.
김 차관은 싱가포르 지속가능환경부 그레이스 푸(Grace Fu) 장관과 면담하고 양국 간 스마트팜 협력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양해각서에는 스마트팜 공동위원회 설치와 스마트농업 기술·정책·정보 교류, 관련 기업 및 기관 간 협력 촉진 등이 담겼다.
이번 MOU는 정부 간 협력 약속을 넘어 국내 스마트팜 기업의 싱가포르 시장 진출을 뒷받침할 제도적 기반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정부 간 협력 채널을 통해 기술 교류와 기업 간 사업 협력을 연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현장 방문도 이어졌다. 김 차관은 세계 최대 높이의 실내 수직농장을 운영하는 것으로 소개된 그린파이토(GreenPhyto)를 찾아 자동화·AI 기반 정밀농업 기술을 활용한 친환경 엽채류 생산 현황을 살펴봤다. 국내 스마트팜 기업과의 기술 교류 및 협력 가능성도 논의했다.
K-푸드의 현지 시장 확대 방안도 주요 일정에 포함됐다.
김 차관은 싱가포르 현지 한식당과 농식품 수입·유통업체, 현지 법인 관계자들과 간담회를 갖고 한우·한돈·전통주 등 한국 농식품의 소비 동향과 수출 과정에서의 애로사항을 청취했다. 참석 기업은 한식당 내음·주신정·엄용백, 수입·유통업체 SL푸드·고려무역, 롯데웰푸드 현지 법인 등이다.
또한 현지 고급 식재료 유통매장인 컬리나(Culina)를 방문해 프리미엄 식품 유통시장도 살펴봤다.
싱가포르는 고급 식재료에 대한 수요와 다양한 식문화가 공존하는 시장인 만큼, 한국 농식품의 품질 경쟁력을 바탕으로 프리미엄 소비층을 공략할 가능성이 크다. 다만 지속적인 시장 확대를 위해서는 현지 소비자 선호에 맞는 상품 개발과 유통망 확보, 수입·검역 등 비관세장벽에 대한 대응도 중요하다.
이번 농업 외교는 식량안보를 위한 공공 협력과 스마트팜·K-푸드 수출이라는 민간 경제협력을 함께 추진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역내 비상시 식량 공급망을 강화하는 동시에 한국 농업의 기술 경쟁력을 해외시장 진출로 연결하려는 접근이다.
김 차관은 이번 회의가 기후변화에 따른 자연재해와 글로벌 공급망 위기 속에서 역내 식량안보를 위한 회원국 간 연대와 협력을 다지는 계기가 됐다고 평가했다.
이어 앞으로도 정보 공유와 식량 비축, 스마트 기술 보급 등 역내 협력을 강화하고, 싱가포르를 비롯한 해외시장에서 우리 농산업과 K-푸드 수출이 확대될 수 있도록 정보 교환과 기술 교류, 연구 협력, 마케팅 지원을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농업을 둘러싼 국제 환경이 빠르게 변화하는 가운데 한국 농업의 경쟁력은 이제 생산기술을 넘어 식량안보 협력과 글로벌 유통시장 진출 역량으로 확장되고 있다. 이번 아세안+3 농림장관회의와 한·싱가포르 스마트팜 협력이 국내 농산업의 실질적인 해외 진출 성과로 이어질 수 있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