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이소희 기자] 농업 현장에 자율주행과 전기·수소 등 첨단기술이 빠르게 도입되면서 농기계 안전관리 체계도 새로운 전환점을 맞고 있다. 기존의 운전자 중심 안전관리 방식에서 벗어나 무인 자율주행과 새로운 동력원까지 포괄하는 방향으로 제도가 확대되기 때문이다.
농림축산식품부는 농업기계의 안전성을 높이고 농작업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농업기계 검정기준’ 고시를 개정하고 11월 6일부터 시행한다. 이번 개정은 지난 6월 발표한 '농림분야 안전관리 종합대책'의 5대 전략을 반영한 것으로, 농업기계 기술 발전에 대응하는 동시에 농작업과 도로 주행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사고 위험을 줄이는 데 초점을 맞췄다.
변화하는 시대에 맞춰 농식품부가 농업기계의 안전성을 높이고 농작업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농업기계 검정기준’ 고시를 개정, 11월 6일부터 시행한다고 밝혔다. 사진은 자율주행 농기계를 시연하고 있는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자료사진=농식품부
이번 제도 개편은 크게 세 가지로, 자율주행 농업기계의 안전기준을 새롭게 마련하고, 전기·수소 농업기계의 안전성을 검증할 수 있는 기준을 신설하며, 기존 농기계의 끼임 및 야간 추돌사고 예방장치를 강화하는 것이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자율주행 농업기계에 대한 검정기준 고도화다.
그동안 농업기계의 자율주행 관련 기준은 자동조향 등 제한적인 기능을 중심으로 마련돼 있었다. 그러나 최근 기술 발전으로 운전자가 직접 탑승하지 않고도 현장이나 원격에서 감독하면서 농기계를 운행하는 수준까지 기술이 확대되면서 기존 기준만으로는 새로운 위험요인에 대응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이에 농식품부는 운전자 탑승 없이 현장·원격 감독하에서도 주행할 수 있는 자율주행 농업기계의 검정기준을 마련했다.
핵심은 위험 상황에서의 자율적인 대응 능력이다. 농기계가 장애물을 만나거나 작업 경로를 이탈하고, 기계 고장이 발생하는 경우 이를 스스로 인식해 정지할 수 있도록 안전기준을 마련했다.
기계의 작동 가능 여부 등 현재 상태를 표시하는 기능과 자율주행 모드에 활용되는 휴대용 제어장치의 안전기준도 포함했다. 사용자가 기계의 이상 여부를 쉽게 확인하고, 원격 조작 과정에서도 사고 위험을 줄일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특히 이번 기준은 자율주행 농기계 국제표준인 ISO 18497을 반영했다. 국제표준에 부합하는 검정체계를 마련함으로써 국내 농기계 업체의 기술개발과 첨단 농기계의 농업 현장 보급을 뒷받침한다는 취지다.
이는 농업기계 정책이 단순한 기계 성능 검증에서 벗어나 자율주행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험까지 관리하는 단계로 발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농업기계의 동력원이 다양해지는 데 따른 안전기준도 새롭게 마련됐다.
탄소중립과 에너지 전환 흐름 속에서 전기·수소 등 새로운 동력원을 활용하는 농업기계의 개발과 보급이 확대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하지만 기존 내연기관 농기계와는 다른 형태의 안전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별도의 관리기준이 필요하다.
농식품부는 전기·수소 농업기계의 감전과 화재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안전기준을 신설했다.
전기 농업기계는 고전압 전기장치에 신체가 직접 접촉하지 않도록 하고, 충전 중 누전이나 기계 작동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기준을 마련했다.
특히 리튬이온 배터리에 대해서는 급격한 온도 변화와 과충전·과방전 등에 대한 안전시험 기준을 적용한다. 배터리 관련 사고를 사전에 예방하고 전기 농기계의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한 조치다.
수소 농업기계에는 수소 누출 경고와 연료 공급 차단 등 별도의 안전요건을 마련했다.
이는 새로운 동력원의 도입을 단순히 기술개발이나 보급의 문제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농업인이 사용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험까지 제도적으로 관리하겠다는 의미다.
첨단기술뿐 아니라 농업 현장에서 반복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는 기존 농기계 사고 예방기준도 강화됐다. 대표적인 분야가 보행형 농업기계의 후진 끼임사고다.
농식품부는 후진이 가능한 보행형 농업기계에 대해 작업자의 신체가 안전장치에 닿으면 동력이 차단되도록 기준을 강화했다.
위급한 상황에서 작업자가 직접 정지 스위치를 누르기 어려운 경우에도 신체 접촉을 통해 신속하게 동력을 차단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작업자의 대응 능력에만 의존하던 기존 안전관리 방식에서 벗어나 기계 자체가 사고를 방지하는 기능을 갖추도록 한 점이 특징이다.
도로 주행 농업기계의 야간 추돌사고 예방을 위한 기준도 강화된다.
기존 야간 반사판에 더해 농업기계 뒤쪽에 후부 반사판이나 반사지를 추가로 부착하도록 했다. 자동차와 건설기계 수준으로 설치기준을 강화해 야간에 뒤따르는 차량이 농업기계를 쉽게 식별할 수 있도록 했다.
농기계가 농촌 도로를 주행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후방 추돌 위험을 줄이기 위한 조치다.
이번 고시 개정은 첨단 농업기계의 기술 발전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동시에 농작업 현장의 안전 사각지대를 줄이려는 정책적 시도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자율주행과 전기·수소 농기계의 도입은 농업 생산성과 작업 효율을 높일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 하지만 기술이 고도화될수록 기존과 다른 위험요인도 함께 등장한다. 무인 운행 중 장애물 인식 실패, 배터리 화재, 고전압 감전, 수소 누출 등은 새로운 안전관리 체계가 필요한 이유다.
농식품부도 농업기계 기술 발전과 농작업 현장의 여건 변화를 반영하고 농업인의 의견을 수렴해 안전기준을 지속적으로 정비하겠다는 방침이다.
이시혜 농식품부 농산업혁신정책관은 이번 개정과 관련해 기술 변화에 맞춰 농업기계의 안전성을 높이고 농작업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것이라며, 농업인의 경험과 의견을 반영해 안전기준을 지속적으로 정비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