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은 2026년 연중기획 'AI와 시장경제 2.0, 대한민국의 심장을 다시 뛰게 하다'를 통해 AI 혁명이 가져오는 산업과 시장의 변화, 대한민국 경제의 새로운 성장 가능성을 지속적으로 조명해 왔다. 창간 15주년을 맞아 AI가 기업의 생산성과 경쟁구조, 자본의 흐름을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 살펴보고, 대한민국이 새로운 성장의 기회를 확보하기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짚어본다. [편집자주]
[미디어펜=김태균 편집국장] 대한민국 경제가 새로운 갈림길에 서 있다. 인공지능(AI)은 반도체 수출과 데이터센터 투자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지만 저출생·고령화에 따른 노동력 감소와 산업간 생산성 격차,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경쟁력 차이라는 구조적 과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지난 수십 년간 한국 경제를 성장시킨 공식은 비교적 분명했다. 우수한 인력을 양성하고 자본을 투입해 공장을 세웠으며,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한 기업들이 수출을 늘리는 방식이었다. 반도체와 자동차, 조선, 철강 등 제조업은 이러한 성장전략의 핵심이었다. 그러나 향후 15년은 과거와 같은 방식만으로 성장하기 어렵다. 일할 사람은 줄어들고, 글로벌 공급망과 통상질서는 빠르게 바뀌고 있다. AI는 이러한 한계를 극복할 새로운 수단으로 떠올랐지만 기술 도입 자체가 경제성장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중요한 것은 AI가 만들어내는 생산성 향상을 기업의 투자와 고용, 가계소득, 새로운 산업의 성장으로 연결하는 일이다. 미디어펜이 창간 15주년을 맞아 제시하는 '시장경제 2.0'의 출발점도 여기에 있다. 기술이 혁신을 촉진하고, 기업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며, 경쟁의 성과가 경제 전반으로 확산하는 성장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AI가 진정한 성장동력으로 자리 잡으려면 첨단 제조업뿐 아니라 유통과 물류, 금융, 의료, 건설, 농업 등 다양한 산업에서 생산성 향상이 나타나야 한다. /사진=AI 이미지
▲반도체 호황 넘어 경제 전체의 생산성 높여야
AI 혁명은 우리 경제에 중요한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AI 데이터센터 투자가 확대되면서 고성능 메모리와 첨단 반도체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 국내 반도체 기업은 이런 변화의 핵심 공급망에 참여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올해 7월 발표한 '2026 한국경제보고서'는 반도체 수출 증가가 한국 경제성장을 뒷받침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OECD는 당시 한국의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2026년 2.6%, 2027년 1.9%로 전망했다. 이 수치는 7월 발표 당시의 전망치다. AI가 가져올 장기 성장효과를 직접 측정한 결과는 아니다.
반도체 수출이 늘어나는 것은 반가운 일이지만 특정 산업의 호황이 경제 전체의 경쟁력 향상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반도체 기업의 실적이 개선되더라도 내수 서비스업과 중소 제조기업의 생산성이 정체된다면 경제 전반의 성장 잠재력을 끌어올리는 데는 한계가 있다. AI가 진정한 성장동력으로 자리 잡으려면 첨단 제조업뿐 아니라 유통과 물류, 금융, 의료, 건설, 농업 등 다양한 산업에서 생산성 향상이 나타나야 한다.
예를 들어 중소 제조기업이 AI를 활용해 설비 고장을 미리 예측하고 불량품 발생을 줄인다면 같은 인력과 설비로 더 많은 제품을 생산할 수 있다. 물류기업이 수요를 정확하게 예측해 운송 경로와 재고를 최적화한다면 비용을 줄이면서 서비스의 질을 높일 수 있다. 의료기관이 AI를 활용해 반복적인 행정업무를 줄인다면 의료인력이 환자 진료에 더 많은 시간을 사용할 수 있다.
이런 변화가 산업 전반에 확산할 때 AI는 일부 기업의 실적 개선을 넘어 국가 전체의 생산성 혁신으로 이어질 수 있다. 문제는 기술 활용 능력의 격차다. 대기업은 자체 자본과 인력으로 AI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지만 중소기업은 초기 투자비와 전문인력 부족, 데이터 확보의 어려움에 직면하기 쉽다. 정부가 AI 인프라 확충과 기업 지원에 나서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지난 2월 확정된 '대한민국 인공지능행동계획(2026~2028)'은 AI 컴퓨팅 인프라 확충과 핵심 인재 확보, 산업 전반의 AI 전환을 주요 과제로 제시했다. 그러나 정책의 성패는 투입한 예산이나 도입 기업의 숫자보다 실제 생산성이 얼마나 개선됐는지로 평가해야 한다.
AI를 도입한 기업의 생산시간이 얼마나 단축됐는지, 비용과 불량률이 얼마나 줄었는지, 새로운 매출이 얼마나 발생했는지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대한민국 경제의 다음 성장단계는 반도체 수출 증가에 더해 산업 전반의 생산성을 높이는 데서 시작될 것이다.
▲AI가 일자리 바꾸는 시대…기업가정신과 인적자본이 성장 좌우
AI는 기업의 생산방식뿐 아니라 일하는 방식도 바꾸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2024년 발표한 연구에서 전 세계 고용의 약 40%가 AI의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직무에 노출돼 있다고 분석했다. 선진국에서는 그 비율이 약 60%에 이른다. IMF는 AI에 노출된 일자리 가운데 일부는 생산성 향상의 혜택을 누리지만 다른 일부는 노동수요 감소와 임금 압박에 직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는 전체 일자리의 40%가 사라진다는 의미가 아니다. AI가 기존 업무를 보완하거나 대체하면서 노동시장의 구조를 바꿀 수 있다는 뜻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변화는 피하기 어렵다. AI는 단순 반복업무를 자동화하는 데 그치지 않고 ▲연구개발 ▲설계 ▲회계 ▲법률 ▲금융분석 ▲콘텐츠 제작 등 전문직 업무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일부 직무에서는 필요한 인력이 줄어들 수 있지만 새로운 기술과 서비스, 사업모델이 등장하면서 새로운 일자리도 만들어질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기업과 근로자가 변화에 얼마나 빠르게 적응하느냐다. 기존 인력이 AI를 활용해 더 높은 생산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교육과 재훈련을 강화해야 한다. 동시에 새로운 산업에 도전하는 창업기업이 성장할 수 있는 환경도 필요하다.
특히 AI 시대에는 거대한 공장이나 막대한 설비투자 없이도 새로운 기업이 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소규모 기업도 AI를 활용해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 고객 서비스를 자동화하며 해외시장을 개척할 수 있다. 그러나 가능성이 실제 성공으로 이어지려면 기술 접근성뿐 아니라 자금조달과 인재 확보, 시장 진입 기회가 뒷받침돼야 한다.
실패한 기업가가 다시 도전할 수 있는 제도, 성장 가능성이 높은 기업에 자본이 공급되는 금융시장, 혁신적인 사업모델이 기존 규제에 가로막히지 않는 환경이 중요하다. 시장경제의 활력은 새로운 기업이 등장하고 기존 기업과 경쟁하면서 산업 전체의 효율성을 높이는 과정에서 만들어진다. AI 시대에도 이러한 원리는 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기술 변화가 빨라질수록 새로운 아이디어가 시장에서 시험받고 성공과 실패의 결과에 따라 자원이 이동할 수 있는 환경이 더욱 중요해진다. 다만 경쟁이 혁신으로 이어지려면 공정한 시장질서도 필요하다.
AI 산업은 대규모 데이터와 컴퓨팅 인프라, 네트워크 효과 때문에 일부 기업에 시장지배력이 집중될 가능성이 있다. 소수 플랫폼이 핵심 기술과 유통망을 장악해 새로운 기업의 진입을 어렵게 만든다면 AI 혁신이 오히려 시장의 역동성을 약화시킬 수도 있다. 기업의 자유로운 도전을 보장하면서도 경쟁을 제한하는 행위에는 적절히 대응하는 균형 잡힌 정책이 필요한 이유다.
▲시장경제 2.0의 조건…혁신의 성과가 성장과 소득으로 이어져야
AI 시대의 시장경제는 기술혁신과 기업가정신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새로운 기술이 만들어낸 성과가 경제 전반으로 확산하고, 기업의 성장과 가계의 소득 증가로 연결돼야 지속가능한 성장구조가 만들어진다.
세계은행은 올해 6월 발표한 세계경제전망에서 AI가 장기간 둔화한 세계 경제성장세를 반전시킬 가능성이 있지만, 생산성 향상이 크고 지속적이며 폭넓게 확산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AI의 경제적 효과가 일부 기업과 산업에만 집중된다면 거시경제 전체의 성장효과는 제한될 수 있다는 의미다.
이 점에서 한국 경제가 해결해야 할 과제는 세 가지다. 우선 기업의 혁신과 투자를 촉진하는 환경이다. 기업이 AI를 활용해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를 개발하고 생산시설을 고도화하려면 예측 가능한 제도와 안정적인 투자환경이 필요하다.
규제는 안전과 소비자 보호라는 목적을 달성하되, 새로운 기술과 사업모델이 시장에서 검증받을 기회를 불필요하게 제한하지 않도록 설계해야 한다. 또 혁신의 확산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수도권과 지역, 제조업과 서비스업 사이의 AI 활용 격차를 줄여야 한다.
이를 위해 산업별 공통 데이터와 AI 활용 인프라를 구축하고 중소기업이 전문인력과 기술을 확보할 수 있도록 지원할 필요가 있다. 기술을 개발하는 기업뿐 아니라 실제 산업현장에서 활용하는 기업도 성장의 주체가 돼야 한다.
마지막으로 혁신의 성과를 경제 전반으로 연결하는 일이다. AI로 생산비용이 낮아지고 기업의 수익성이 개선되면 새로운 설비투자와 연구개발, 고용, 임금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는 환경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노동자의 역량 강화와 원활한 직무 전환, 혁신기업에 대한 자본 공급, 공정한 경쟁질서가 함께 작동해야 한다. 물론 AI가 모든 경제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저출생과 고령화, 지역 간 불균형, 에너지 공급, 교육과 노동시장 문제는 별도의 구조개혁을 필요로 한다.
AI는 이런 과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지만 제도와 시장구조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기대한 성과를 얻기 어렵다. 결국 시장경제 2.0은 AI라는 새로운 기술 위에 시장경제의 기본 원리인 자유로운 도전과 혁신, 경쟁과 책임을 다시 세우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대한민국은 지난 수십 년간 기업의 도전과 수출 경쟁력을 바탕으로 세계적인 산업국가로 성장했다. 이제는 그 경험을 토대로 새로운 성장의 길을 열어야 한다.
AI를 얼마나 많이 개발하고 보유했는지를 넘어 AI를 통해 얼마나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얼마나 많은 기업이 성장하며, 국민의 삶이 얼마나 개선되는지가 새로운 경쟁력의 기준이 될 것이다.
미디어펜이 창간 15주년을 맞아 'AI와 시장경제 2.0'을 조명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지난 15년이 대한민국 기업의 도전과 성취를 기록한 시간이었다면 앞으로의 15년은 AI 혁신이 한국 경제의 새로운 성장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확인하는 시간이 될 것이다.
‘기술이 혁신을 만들고, 기업이 새로운 시장을 열며, 그 성과가 다시 투자와 일자리, 소득으로 이어지는 경제’ 그것이 대한민국의 심장을 다시 뛰게 할 시장경제 2.0의 미래다.
[미디어펜=김태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