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이승혜, 한기호 인턴기자] 언제 반팔입은 사람들이 거리를 메웠냐는 듯 아침부터 한기가 돌았다. 어버이날임에도 불구하고 탑골공원 초입은 날씨처럼 우울한 기운만 맴돌았다.
탑골공원을 둘러싼 돌담길에 들어서자마자 무리를 지은 노인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들은 늘 그랬듯 자연스럽게 장기판을 둘러싸고 훈수와 농담을 주고받았다.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200원짜리 커피 자판기 앞에서도 이야기꽃이 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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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한기호 인턴기자 | ||
신문 두 부를 손에 쥔 채 멋지게 차려입고 나타난 노신사는 익숙한 듯 한 부를 바닥에 깔고 앉은 뒤 남은 한 부를 펼쳐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신문을 내려놓고 무료한 듯 행인들을 바라보던 그는 “약속이 있어 친구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으나 한참이 지나도 다가오는 이는 없었다.
대다수 노인들은 그처럼 초점없는 눈으로 자리를 지켰다. 처음 말을 걸었을 때 “귀가 어둡다”며 차갑게 대꾸하던 한 노인은 얼마 지나지 않아 슬며시 다가와 “어디서 왔냐”고 묻기도 했다.
탑골공원 주변에서는 2000원짜리 국밥, 3500원짜리 이발소, 2000원짜리 영화관이 길을 따라 늘어서 있다. 하루 만원이면 사치 아닌 사치를 누릴 수 있다.
수원에서 왔다는 A씨(68·남)는 “하던 일이 없어지니 무료해 종로까지 왔으나 그마저도 돈이 드는 일”이라며 “3000원을 내면 하루 종일 바둑을 둘 수 있는 바둑방이 있다. 거기서 시간을 때우고 점심 사먹으면 하루 1만원은 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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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한기호 인턴기자 | ||
성수동에 사는 B씨(66·남)는 “어릴 때 탑골공원쪽에서 살았다”며 “추억도 있고 실직 후 무료해서 성수동에서부터 여기까지 걸어온다”며 “도착해서 혼자 2000원짜리 국밥을 사먹고 1000원짜리 소주 반병을 마시고 나면 할 일이 없어 그대로 돌아간다”고 말했다.
어버이날을 맞아 무료급식소에서는 소박한 주전부리를 나눠주기도 했다. 노인들의 가슴에 카네이션을 달아주는 행사도 진행됐다. 그러나 카네이션을 가슴에 단 노인들의 표정은 변함없이 공허했다. 해가 가장 높게 떠오른 오후 무렵에도 칙칙하기만 한 하늘처럼 생동감이 없었다.
나이도 사는 곳도 밝히기 싫다는 노인은 “경기가 좋지 않아 자식들은 모두 돈 벌러 가서 바쁘다”고 말했다. 어버이날 이야기를 꺼내기가 무섭게 “어버이날이라 해도 어쩔 수 없지 않냐”며 바삐 걸음을 재촉했다. 그의 어깨 위로 쓸쓸한 그늘이 짙게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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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한기호 인턴기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