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요구하는 무식한 정치권이 잘 모르는 것
   
▲ 조우석 주필
"노래 한 곡이 협치(協治) 뒤흔들다". 17일자 동아일보 1면 머리기사 제목이 그러한데, 이어지는 관련기사는 한 술 더 뜬다. "'제창 불가' 결정한 박승춘 국가보훈처장은 누구?" "사흘도 못 간 '소통 합의'…청(靑), 여소야대 정국구상 타격". 
 
애국적 결단을 한 주무부처의 수장(首長)을 마녀사냥하는 분위기로 몰고 가면서, 그 사람 때문에 여소야대 정국의 큰 그림을 그리는 청와대가 코너에 몰렸다는 식이다. 다른 신문도 마찬가지다. 같은 날짜 조선일보는 6면 머리기사로 "협치 흔드는 '노래 한 곡'…5.18상징 vs 국론분열"이라는 기사를 올렸다.
 
4.13총선 이후 청와대 흔들기에 올인하는 이 나라의 언론이 시도 때도 없이 협치 타령을 반복하고 있지만, 무얼 모르고 떠들긴 여의도 정치권도 마찬가지다. 야당들이 그렇게 나오는 것도 기막히지만, 책임있는 집권여당까지 그 지경이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모두가 외치는 '협치 만능주의'의 덫

16일 새누리당 비대위원회 비공개 회의는 "협치를 하기로 한 마당에 첫 단추부터 이렇게 꿰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 튀어나오면서 보훈처를 성토하는 분위기로 성큼 바뀌었다. 그 당의 원내대표 정진석이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불가를 결정한 보훈처에 유감의 뜻 표명과 함께 재고(再考) 요청을 했던 것도 그 배경이다.
 
언론과 정치권 모두가 '협치 만능주의'를 외치고 있는 형국이지만, 그들 모두가 짚지 못하는 맹점은 따로 있다. 협치가 결코 무원칙한 혼합정치 내지 잡탕을 뜻하는 건 아니란 점이다. 결정적으로 넘으면 안 되는 선이 있는데, 그건 국가정체성을 흔드는 대목이다.
 
협치의 큰 정신이 다양한 행위자가 통치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하지만, 그건 국가정체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합의가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지금 정치권-언론의 마구잡이 식 협치 논의가 그걸 모두 잊고 있으며, 특히 '임을 위한 행진곡'과 관련해 국가적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
 
상식이지만, 협치란 영어 거버넌스(governance)의 번역어. 사전적 의미는 사회 내 다양한 기관이 자율성을 지니면서 국정운영에 참여하는 통치방식을 말한다. 세상이 시장화, 분권화, 네트워크화로 치닫고 있기 때문에 시민사회를 포함한 구성원 사이의 소통을 강조하는 용어다. 잊으면 안 되는 게 거버넌스(governance)의 어원이다. 그건 steer(키를 잡다, 조종하다)를 뜻하는 그리스어(kubernáo)에서 파생됐다. 그렇다면 기억해둬야 한다. 사공이 많다고 모두 키를 잡으려 할 때 대한민국 호(號)란 배는 산으로 올라갈 수도 있다.

   
▲ '임을 위한 행진곡'을 둘러싼 이번 사태야말로 이 나라 지성인과 정치권이 모두 체제수호 의무에서 등을 돌리고 있는지를 보여준 것이다. 사진은 지난 2014년 5월 23일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에서 열린 '노무현 전 대통령 6주기 추도식'에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천호선 정의당 대표가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천박한 정치인 박지원을 주의하라

4.13 총선 이후 여소야대의 3당 체제가 출범하면서 협치가 급부상한 거야 이해하지만, 대한민국에 해가 되는 결정을 협치란 이름 아래 마구잡이로 밀어붙이는 건 명백한 잘못이다. 또 정치적 자살골에 다름 아니다.
 
더욱이 아무리 생각해도 '임을 위한 행진곡' 기념곡 지정이 협치의 상징일 수는 없는데, 국민의당 원내대표 박지원이 며칠 전 박근혜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자리가 마련된 기회에 선물 하나만 달라"는 식으로 요청한 것부터 실수였다.
 
그 발언 자체가 박지원이라는 정치인이 얼마나 호남지역을 볼모로 한 야바위꾼인지, 그리고 천박한 국가관을 가지고 있는지를 새삼 보여줬을 뿐이다. 새삼 밝히지만, '임을 위한 행진곡'은  "세상을 뒤엎자는 반역정신의 노래"이며 때문에 대한민국에 걸맞지 않는다.
 
반복하지만, 그 노래는 반체제 혁명가요일뿐이며, 황석영-백기완 등 반(反)대한민국 인사들이 만든 노래다. 북한영화 배경음악인 종북의 노래라서 광주정신을 왜곡하는 점도 걸린다. 그걸 광주지역에서 비공식적으로 부르는 거야 말릴 수 없는 노릇이지만, 그 이상은 결코 안 된다.
 
시민단체인 '광주5.18진상규명국민모임'이 15일 발표한 성명서대로 "북조선의 적화선동 영화 주제가를 대한민국 행사에서 부르겠다니, 대한민국은 이미 북조선의 정신적 식민지가 되었단 말인가?"를 되묻지 않을 수 없는 게 지금이다.

"애국가를 숨죽여 부르는 세상이 올까 두렵다?"

그건 '임을 위한 행진곡'의 원시(原詩)인 백기완의 혁명시 '묏비나리- 젊은 남녘의 춤꾼에게 띄우는'만 살펴봐도 확인할 수 있는데, 이 나라 언론과 정치권은 그런 수고조차 거부한 채 성역화된
광주5.18에 그냥 아부만 하고 있는 셈이다. 죽은 자들이 살아있는 투사들에게 "새날이 올 때까지 목숨 걸고 싸우라"고 호소하는 내용이 어떻게 이 나라의 공식기념곡 반열에 오를 수가 있는가를 새삼 묻지 않을 수 없다.
 
'임을 위한 행진곡'을 둘러싼 이번 사태야말로 이 나라 지성인과 정치권이 모두 체제수호 의무에서 등을 돌리고 있는지를 보여준 것이고, 그래서 더욱 참담하다. 그래도 박승춘 보훈처장이란 뚝심있는 애국자를 재확인할 수 있으니 반가운 일이다.

타협을 할 게 따로 있고, 협상을 할 것이 따로 있다. 박근혜 대통령도 흔들리지 말고 대한민국을 파괴하려는 노래 '임을 위한 행진곡'을 원칙대로, 순리대로 처리해주길 재삼 부탁한다. 그 결정을 뒤집으면 야단난다. 그런 최악의 디스토피아가 오지 않게 하기 위해 대한민국 헌법 제66조는 "국가보전과 헌법 수호의 책무"를 대통령의 의무로 규정하고 있다는 걸 재삼 환기시켜드리려 한다.

'임 행진곡'은 그걸 점검하기 위한 썩 중요한 시금석이다. 기회에 요즘 들어 나라를 걱정하는 애국세력 사이에 주고받는 심상치 않는 말 하나가 있는데 그걸 공개하려 한다. "세상이 이렇게 자꾸만 좌익세력에게 밀리다가는 애국가를 몰래 숨어서 숨죽인 채 불러야 하는 끔찍한 세상이 닥치는 것은 아닐까?" /조우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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