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적 안정·부의 추구 부정하는 예술계…자격지심 '좌파 좀비' 양산
'좌파 예술가'들의 이중성

대학에서 연기를 전공했다. 필자가 재학했던 대학의 특성은 다른 학교의 특성과 다르게 연극 전공자와 영화 전공자가 자유롭게 교류가 가능한 곳이었다. 영화 연출 전공으로 입학을 했어도 본인의 의지만 있다면 연극을 할 수 있었고, 노력여하에 따라 배우까지 할 수 있는 곳이었다. 때문에 필자는 연기를 전공 하면서도 영화의 구조를 배울 수 있었다. 열려있었기에 노력했다. 덕분에 공연과 영상 매체의 특성을 모두 배울 수 있었다.

사실 필자 본인은 글쓰기가 전공이 아니기 때문에 지금 쓰는 것이 제대로 칼럼의 성격을 가지고 있는지, 혹은 고발성 글 인지는 무척 조심스럽다. 하지만 사람들이 현 상황에 대해 직시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원하는 마지노선은 딱 거기 까지다. 많은 사람들이 보다 더 본질적인 흐름을 읽는 눈을 가지게 되었으면 한다.

여태까지 살면서 단 한 번도 본인 스스로를 ‘자유’ 주의자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렇게 불리기를 원하지도 않았고, 자부한 적도 없다. 내가 태어나서 살아 숨 쉬는 나라가 ‘자유민주주의’ 국가이기에, 인간이 굳이 공기의 존재를 인식하지 않는 것처럼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와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을 했다. 비록 예술가들이라 할지라도…….

대한민국 국민들은 통상적으로 우파는 보수, 좌파는 진보 이렇게 생각한다. 아주 일반적이고 보편적 관념이 그렇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공연예술분야에서 겪은 일들과 흐름을 보면서 그러한 상식이 반드시 통하지 않는 것임을 조금씩 느껴왔다. 

이 분야에서(물론 다른 분야에서도 마찬가지겠지만) 배우를 하는 사람이든, 연출을 하는 사람이든 사회적인 성공을 하는 것, 그리고 본인의 가치를 인정받는 것, 경제적인 안정과 부흥을 꿈꾸는 것, 더 나은 환경에서 작업하게 되는 것들은 굳이 예술가가 아니더라도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게 되는 목표이자, 삶을 이어나가는 모티브 중 하나다. 그 누가 이것을 부정 할 수 있을까? 

   
▲ 본질적인 특성상 진보성향이 강한 예술 문화계라 하더라도, 결과물의 높은 퀄리티와 더 나은 작업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는 결국 시장경제의 논리가 적용되는 것이 옳다. 작년 흥행에 성공한 영화 '내부자들'이 대표적 예다./사진=영화 '내부자들' 포스터


문제는 예술계 좌파들은 그들의 추구하는 이념상 이를 부정하려 애쓴다는 것이다. 그들은 마치 인간은 밥을 먹지 않고 살아도 되는 것처럼 이야기 한다. 본인들 체내에서 광합성이 일어난다는 것과 같은 터무니없는 주장을 한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게 되는 보편적인 삶의 목적을 본인들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추구하는 사람들을 손가락질 하며 더러운 부르주아라고 매도한다. 시장경제를 악(惡)의 축이라 선동한다. 만약 그들이 더 나은 급여 조건의 출연 계약서를 바라지 않으면서, 시장 경제를 부정한다면 그들의 주장도 설득력이 생길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그들은 단지 자신들 보다 좀 더 나은 것, 좀 더 선진화 된 것들에 이유 없는 자격지심과 질투심을 느낀다. 좌파 예술가 본인들 스스로는 더 풍족한 생활과 더 나은 기반을 얻기를 원하지만 남이 자신보다 더 우수한 것을 가지고 있는 것을 두려워한다. 이는 꼭 물질적인 가치가 아니라, 정신적, 영혼적인 가치에도 적용된다.

자괴감은 좌파들의 원동력이라고 본다. 그 이중적인 잣대가 그들이 싸우는 방법이긴 하지만 그로 인해 자신들 인생도 갉아 먹힌다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에 대해 더욱 분노하게 되는 것이고, 그 분노 표출의 방향은 일반적으로 본인이 아닌, 사회가 된다. 그러한 심리적 알고리즘은 힘들게 사는 젊은이들에게 무섭게 퍼져 나갔다. 머릿수로 따지자면 성공한 소수 보다, 성공하지 못한 다수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좌파 예술가들은 그 심리를 매우 잘 안다. 그것을 이용해서 반사회 성향을 가진 젊은이들 숫자를 기하급수적으로 늘리는 것이다. 이는 곧 (그들이 부정하겠지만)정치적인 선동과 일맥상통한다. 그들은 경력자와 비경력자, 프로와 아마추어, 성실한 사람과 게으른 사람간의 사회적 역차별 분위기를 조성한다.

예술 문화는 그 자체가 생산 수단 아니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물질적인 풍요는 가져다주지 못한다. 하지만 정신적 파급 효과가 강하기 때문에, 좌파들은 선동 수단으로 문화 예술계를 이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 최근에 개봉한 이재한 감독의 ‘인천상륙작전’ 을 보고 평론가의 채점과 대중들의 반응이 판이하게 다름을 눈으로 확인했다./사진=영화 '인천상륙작전' 스틸컷


몇 년 전만해도 공연이나 영화를 볼 때, 그 평가의 잣대가 결과물의 퀄리티, 배우의 연기, 감독의 연출력, 내러티브 구성 등 작품을 작품 그 자체로써 보았던 것 같다. 말 그대로 보여 지는 그대로, 있는 그대로 평가했다. 만든 감독의 성향이 어떠니, 시나리오의 관점이 어떠니, 배우가 어떠니 굳이 생각 할 이유가 없었다. 영화는 영화일 뿐이고, 공연은 공연 일뿐이니까.

본질적인 특성상 진보성향이 강한 예술 문화계라 하더라도, 결과물의 높은 퀄리티와 더 나은 작업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는 결국 시장경제의 논리가 적용되는 것이 옳다(그런 의미에서 좌파는 진보가 아니다). 좌파라고 해봐야 그들이 원하는 방향 자체가 시장경제를 추구하면 대부분 해결되는 문제들이다. 미국의 ‘할리우드’가 시장경제 자체는 버리지 않는 것처럼.     

그들은 대체 무엇을 위해 시장 경제를 부정하고, 젊은 좌파 좀비들을 무수히 양산하는가?

최근에 개봉한 이재한 감독의 ‘인천상륙작전’을 보고 평론가의 채점과 대중들의 반응이 판이하게 다름을 눈으로 확인했다. 영화 인천상륙작전을 접한 대다수의 대한민국 젊은이들이 그것을 눈과 귀로 확인 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좌파 선동이 조금씩 통용되지 않는 시기가 왔음을 직감했다. 그들은 그동안 너무 많은 젊은이들을 정신을 희생 시켰고, 예술가들이 인간다운 삶을 지향하지 못하도록 눈을 가렸다. 현 대한민국의 좌파들은 이 막대한 손실은 책임져야 할 날이 머지않아 올 것이다. /박자유 자유기고가


(이 글은 자유경제원 '젊은함성' 게시판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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