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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귀단장 고전특강(134)-포르투갈 선교사의 눈에 비친 임진왜란
승인 | 편집국 기자 | media@mediape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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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승인 2016-09-16 08: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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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는 지식이 넘치는 사회이지만, 역설적으로 가치관의 혼돈을 겪고 있는 '지혜의 가뭄' 시대이기도 합니다. 우리 사회가 복잡화 전문화될수록 시공을 초월한 보편타당한 지혜가 더욱 절실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고전에는 역사에 명멸했던 위대한 지성들의 삶의 애환과 번민, 오류와 진보, 철학적 사유가 고스란히 녹아있습니다. 고전은 세상을 보는 우리의 시각을 더 넓고 깊게 만들어 사회의 갈등을 치유하고, 지혜의 가뭄을 해소하여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사단법인 행복한 고전읽기'와 '미디어펜'은 고전 읽는 문화시민이 넘치는 품격 있는 사회를 만드는 밀알이 될 <행복한 고전읽기>를 연재하고자 합니다. [편집자 주] 

박경귀의 행복한 고전읽기(134)-1592년, 임진왜란의 종군기
루이스 프로이스(1532~1597) 『임진난의 기록』

   
▲ 박경귀 국민대통합위원회 국민통합기획단장
임진왜란은 16세기말 동아시아의 역사를 뒤흔든 대 사건이다. 가장 혹심한 피해를 입은 곳은 조선이었다. 전쟁은 백성의 삶을 처참하게 파괴했다. 또 전쟁 동안 노비문서는 소실되고, 도망가기 바빴던 국왕과 사대부에 대한 권위가 실추되어 신분제의 붕괴를 가속시켰다. 명나라 또한 임진왜란 참전으로 국력을 낭비하여, 왕조의 쇠망을 앞당겼다. 일본 역시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 정권이 무너지고,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가 250여년 이어진 에도 막부시대를 여는 전초가 된다.

 <임진난의 기록>은 동아시아의 격변을 만든 임진왜란의 배경과 경과를 지켜본 제3국인이었던 포르투갈 출신 예수회 선교사 루이스 프로이스가 쓴 <일본사>중 임진왜란 및 조선에 대해 쓴 부분을 발췌한 책이다. <일본사>는 16세기 일본의 실정을 프로이스가 5~6년의 저술기간을 거쳐 기록한 방대한 저술이자, 당시의 귀중한 정보를 많이 담고 있는 역사서이다. 

프로이스는 1563년부터 1597년까지 일본에 거주하며 일본 전국시대(戰國時代)의 정치적 격변기를 몸소 체험했다. 특히 그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임진왜란을 계획되고 전쟁을 치러나가는 과정을 지켜봤고, 왜군과 함께 조선에도 건너왔다. 이 책의 특징은 당시 조선에 대한 역사적 자료가 부족한 상황에서 임진왜란의 전개과정과 강화 협상내용, 조선 측 사정을 외국인의 시선으로 솔직하고 중립적으로 기술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에게는 임진왜란의 전말과 당시 조선의 상황을 간접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벽안의 선교사에게 비친 당시 조선의 모습은 어떠했을까? 그가 낯모르는 조선에 대해 특별한 애정을 갖고 있었던 것 같지는 않다. 또 일본역사의 기술이 원래의 목적이듯이 조선 자체에 대한 묘사가 그의 주된 관심도 아니었다. 하지만 당시 조선에 대한 그의 관찰과 인식에 특별히 편협한 부분은 없다. 상세한 지식과 정보가 부족할 뿐이다.  

"조선은 북쪽 오랑캐와 자주 전쟁을 치르면서 잘 이겨내고 있고, 쌀과 밀이 많이 나 풍요롭고, 사람들은 살갗이 희고 활기차며, 대식가로 힘이 아주 좋다. 작은 활과 화살에 매우 능숙하며, 정교한 수공예품을 만드는 솜씨가 뛰어나다."

그가 파악한 조선에 대한 간략한 정보이다.

"중국에 공물을 바치고 있음에도 중국인들은 조선인들을 두려워한다. …조선의 왕은 대단히 큰 궁전을 가지고 있고, 수많은 가신이 있다. 내륙으로는 성이 몇 군데 있는데 방비가 잘돼 있지는 않다. 일본과 인접해 있는 해안 지역의 성만이 제대로 방비됐으며, 이곳에 모든 군수품을 비축해 놓았다."

그가 묘사한 임진왜란이 발발하기 전 조선의 개략적인 모습이다. 다른 상세한 묘사가 없는 것으로 보아 이 파란 눈의 서양인에게 조선의 정치경제적 상황과 문화적 특질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았던 듯하다. 

저자는 임진왜란이 당시 관백(關白)으로 실질적 왕 노릇을 하던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과다망상과 오만에서 비롯되었다고 보는 듯하다. 그는 나름대로의 근거로 네 가지를 든다.

첫째, 풍신수길이 중국을 정복하겠다고 했을 때, 많은 영주들은 극도의 두려움에 휩싸였고, 일본 전역에서 반역의 움직임이 도사리고 있었다.

둘째, 일본인들이 다른 나라와 국제적인 전쟁을 치른 경험이 전혀 없었고, 정복하고자 하는 나라에 대한 지식이나 정보가 빈약했다는 점이다.  

셋째, 전쟁 시 우선적으로 해상 공격을 해야 하는 데, 내륙 지방 출신 영주들은 선박이나 수병을 보유하고 있지 않았다.

넷째, 선박, 군수품 등 전쟁 준비 기한이 너무 촉박하고 짧았다. 그럼에도 이런 악조건들을 풍신수길은 철저히 무시했다. 그런데도 영지와 군사를 빼앗길 것을 두려워한 영주들은 관백의 무모한 전쟁포고령에 동조하지 않을 수 없었다. 

풍신수길의 오판과 야욕 때문에 임진왜란은 필연적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임진왜란 2년 전에 조선통신사로 일본에 파견되었던 황윤길과 김성일이 풍신수길의 이러한 탐욕을 감지하지 못한 채, 엇갈린 보고를 하여 왜란의 방비를 제대로 하지 못했던 점이 통탄스럽다.

저자는 임진왜란 중 조선군의 활약상을 여러 군데에서 기술한다. 최초의 접전인 부산포 전투, 동래성 전투 등에서 조선군은 용감하고 과감하게 저항하며 목숨이 다할 때까지 싸운다. 성이 함락될 때, 일본 병사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기 위해 신분이 높은 여인들은 얼굴에 숯 검댕을 바르거나 남루한 옷을 입어 신분을 감췄고, 아이들은 절름발이인 척하거나, 입이 비뚤어진 것처럼 위장하기도 했다는 대목이 애처롭다. 전리품을 약탈하거나 닥치는 대로 도적질하는 일본군 병사의 장면과 더욱 비교가 된다. 

프로이스는 조선 땅을 유린하던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와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가 선봉을 다투던 알력을 여러 대목에서 소개한다. 그는 독실한 가톨릭교도였던 아고스티뉴(小西行長)를 우호적으로 기술하는 데 반해, 이교도였던 도라노스케(加藤淸正)는 교활하고 술수로 가득 찬 위선자로 묘사하고 있다. 

고니시 유키나가가 한양을 점령했다는 보고를 받은 태합(太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자신의 관백 자리를 물려준 조카이자 양자인 도요토미 히데쓰구(豊臣秀次)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가관이다. 그가 조선의 수도 점령에 얼마나 도취했었는지 알 수 있다.  

그는 먼저 자신이 조선으로 건너갈 것이며, 곧이어 중국을 점령하여 천황을 베이징으로 옮기고, 도요토미 히데쓰구를 중국의 관백으로 임명하고, 또 다른 조카를 조선 관백으로 임명하겠다는 등 과대망상적 호기를 한껏 부렸다. 그가 전쟁을 선포하면서 "전 세계로부터 명성과 경탄을 불러일으킬 만한 과업을 이루고자"하며 정복한 왕국을 영지로 나누어주겠다며 영주들을 회유하던 오만과 집착, 호기를 그대로 보여준다.  

그런데 고니시 유키나가 한양을 점령했을 때를 묘사한 대목은 과연 얼마나 정확한 것인지 의문이 든다. 프로이스는 고니시 유키나가가 한양에 입성하는 병사들에게 조선인들에게 해를 끼치지 말 것을 엄격하게 지시한 가운데, 한양의 백성 1,000여명이 성문으로 나와 물과 쌀을 쪄서 말린 밥과 제철 음식을 "자발적으로 친절하고 진실하게" 일본 병사들에게 제공했다는 것이다. 조선 군주로부터 버림받은 백성들이 임금과 관군에 대한 원망이 아무리 높았다한들 왜군을 환대까지야 했을까? 조선 왕성 점령의 극적 효과를 강화하기 위해 왜군이 지어낸 이야기를 저자가 그대로 인용한 것은 아닐까?  

저자는 일본군이 평양성에서 이여송의 명군과 조선의 연합군에 밀려나 서울로 퇴각하던 당시 일본군이 추위와 굶주림으로 혹독한 고생을 했던 상황도 기술하고 있다. 당시 적에게 추격이라도 당했다면 단 한명도 살아남지 못했을 것으로 보았다.

이 대목에 특별한 눈길이 가는 이유는 <징비록>에서 유성룡이 평양에서 퇴각하는 왜군을 추격하여 섬멸해야 한다고 명군에게 강력히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아 통분하던 모습이 상기되기 때문이다. 왜군 진영의 처참한 상황을 간파한 유성룡의 전략적 판단이 정확했음을 이 책을 통해 다시 확인할 수 있다. 

프로이스는 조선군이 유일하게 승전하는 전황으로 조선 수군의 연승의 활약상을 전하면서 하나의 예만 들었다. 직접 명기하지 않았지만, 아마 한산대첩이 모습이 아닐까 한다. 이 해전에서 조선 수군은 견고하고 장대한 전선(戰船)과 우수한 화포 공격으로 70여척의 일본 함대를 물리쳤고, 일본 병사를 거의 다 죽였다고 기술했다. 그는 일본군의 패인으로 일본군이 해전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었던 점과 화력의 절대적 열세를 들었다. 직접 이름을 들지 않았지만 충무공 이순신이 지휘한 조선 수군의 탁월성을 인정한 대목이다.  

저자는 일본군과 명군 사이의 강화협상 과정도 비교적 상세히 전한다. 명나라 측 심유경의 기만적 협상에 일본 측이 몇 번이나 속게 되는 사정과 강화 협상과정에서 고니시 유키나가와 가토 기요마사의 주도권 다툼의 전말도 기술했다. 또한 일본군이 전쟁 수행과 협상과정을 통해 명나라 군대의 전투 역량과 명나라의 실상에 대해 많은 것을 파악하게 되고 새로운 인식을 갖게 되었다고 설명한다. 왜군이 중국이나 조선에 대한 충분한 사전 정보 없이 얼마나 무모하게 전쟁을 시작했는지를 짐작하게 해 준다. 

가톨릭교의 종군 선교사였던 저자는 종군 과정에서 설교를 하거나 고해성사를 통해 영주들과 병사들을 위무하는 선교활동의 모습도 보여주어 이채롭다. 당시 일본 사회의 지도층 사이에 가톨릭교가 상당히 퍼져 있었음을 알게 해준다.

아쉬운 점은 저자 프로이스가 임진왜란을 일본과 명나라의 전쟁으로 봄으로써 조선의 관점에서 임진왜란의 전황과 전개 과정을 설명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조선 조정의 정치 상황에 대한 언급도 없고, 각종 전투의 묘사에 조선 군대의 장수 인명이 전혀 등장하지 않는 이유이다. 

이는 프로이스의 무관심이라기보다, 당시 전쟁 수행과 협상과정에서 주도적 입장을 가질 수 없었던 명나라의 속국 조선의 상황이 그대로 반영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조선 강토에서 7년 동안이나 비참한 전쟁이 벌어졌고 가장 큰 희생과 고통을 겪으면서도 명나라 군대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조선은 동아시아 국제전의 서러운 국외자가 되었던 셈이다. /박경귀 대통령소속 국민대통합위원회 국민통합기획단장·사단법인 행복한 고전읽기 이사장

   
▲ ☞ 추천도서: 『임진난의 기록: 루이스 프로이스가 본 임진왜란』, 루이스 프로이스 지음, 정성화․양윤선 옮김. 살림(2010. 3쇄)(2000), 210쪽.

[박경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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