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맛도 찌를 보고 챔질하는 쾌감이 있는 것도 아닌 갈치낚시 단순노동의 묘미
[하응백의 낚시 여행]-갈치의 맛을 찾아서

   
▲ 하응백 휴먼앤북스 대표·문학박사
"맛있는 음식은 이 세상 어머니의 수만큼 많다"라는 말이 있다. 어릴 때 맛 본 어머니가 해 준 음식이 가장 맛있다는 말이다. 세상 모든 어머니의 요리 솜씨가 다 훌륭하진 않기에 결국 이 말은, 미각의 주관성을 뜻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특정한 식재료를 한 집단, 혹은 한 지방 사람들이 좋아하는 경우는 많다. 일반적으로 전라도 사람들은 홍어를 대단히 좋아한다. 경상도 사람들은 홍어보다는 문어나 돔배기를 더 좋아한다. 좀 더 범위를 확대해보면 한국 사람이 평균적으로 좋아하는 생선이 있다. 조기, 갈치, 고등어 등이다. 왜 그런 생선을 좋아할까?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그런 생선이 우리나라 연안에서 많이 잡혔고, 많이 잡혔기 때문에 많이 먹었고, 많이 먹었기 때문에 다양한 요리법이 개발되어 있기 때문이다. 

제주 연안이나 남해안에서 가끔 잡히는 만세기란 생선이 있다. 갈치 낚시를 하면 가끔 볼 수 있는 녀석으로 1미터 이상으로 자라는데, 밤바다 표층을 유유히 돌아다니다가 날치나 고등어를 추적해서 재빨리 잡아먹는다. 가끔 꽁치 미끼를 물어 낚시꾼에게 잡히기도 하지만, 이걸 먹으려고 집으로 가지고 가는 꾼들은 아직 보지 못했다. 십여 년 전 트롤링으로 서귀포 앞바다에서 만세기를 잡아 회로 먹어보긴 했지만 맛이 없어 버리고 말았던 적도 있다. 하지만 필리핀에서 이 물고기는 대단히 맛있는 생선으로 친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만세기가 우리 토착 어종이 아니기에 한국 사람들은 먹는 방법을 모르는 것이다.

갈치의 경우 대다수 한국 사람들이 좋아하는 생선이다. 하지만 어획량이 줄어 예전보다 값이 비싸 자주 못 먹는 생선이 되어버렸다. 대개 갈치는 구이, 조림 등으로 많이 먹는다. 시중 음식점에서 두툼한 토막의 갈치구이나 갈치조림이 상당히 인기가 있는데, 그건 대부분 세네갈 수입산 갈치다. 한 번 먹어 보았더니 그런대로 먹을 만했다. 하지만 제철에 나는 은갈치의 부드러움이나 고소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런 토종 갈치를 실컷 먹기 위해서는, 그리고 주위 사람들과 나눠서 먹기 위해서는 갈치낚시를 가는 수밖에 없다. 

지난 번 남해 백도로 갈치 출조 이후, 큰 씨알의 갈치에 대한 더듬이를 곤두세우고 있다가 9월 7일 절기로 백로인 날, 드디어 제주로 방향을 잡았다. 하필 이날 출조를 한 것은 밤에 이슬이 맺히고 가을에 들어선다는 백로여서라기 보다는, 주중이어서 제주 가는 항공권이 아주 저렴했고, 태풍 이후 날씨가 좋을 것이라 예상했기 때문이었다.

제주 공항에 내리면 예약해 놓은 배에서 픽업을 한다. 대부분의 제주 갈치 배들은 패키지 상품을 내 놓는다. 항공권까지 다 예약을 해 주기도 한다. 공항에서 항구까지 픽업을 하고, 낚시가 끝난 다음 날, 아침과 사우나를 제공하고, 공항까지 데려다 준다. 낚시 장비가 없으면 빌려주기도 한다. 몸만 가면 낚시할 수 있는 일종의 낚시 토털 서비스로 진화한 것이다. 게다가 갈치를 지나치게 많이 잡았을 경우 항공화물탁송까지 대행해 준다. 

제주 공항에 내리니 비가 부슬부슬 내린다. 이 정도 비는 낚시에 큰 지장이 없다. 바람이 문제인데 다행히 바람은 잔잔하다. 갈치낚시에서 바람은 오히려 약간 있는 것이 조과에 도움이 된다. 바다가 너무 잔잔하면 미끼의 유동이 작아 갈치가 오히려 잘 물지 않는다. 파도가 세면 낚시 자체가 불가능하거나 매우 불편하기에 파도가 1미터 정도에서 1.5미터 정도가 낚시하기도 좋고 갈치도 잘 물리는 것이다. 

선사(제주 만선호)에서 나온 버스에 타니 오늘 호조황을 예상하는 꾼들의 기대가 크다. 하지만 그런 설렘과는 달리 선사 사무장은 통화하느라 바쁘다. 출조 예약을 한 꾼, 네 명이 나타나지 않은 것이다. 어디나 예약부도가 문제다. 이런 꾼들은 어디에서도 대접받지 못한다. 20명 정원인 배지만, 채비 엉킴을 방지하기 위해 이 배는 16명만 태우는데, 4명이 펑크를 냈느니 낚시꾼 입장에서는 오히려 느긋하다. 

갈치 낚시에서 가장 힘들고 성가신 것은 옆 사람과의 채비 엉킴이다. 바늘이 10여 개이고, 채비 길이만 20미터인데 한 번 엉키면 바늘을 새로 달거나 채비를 다시 세팅해야 한다. 이게 시간이 많이 걸리게 마련인데, 옆에서 갈치를 연신 낚아 올리면 심리적으로 화가 나게 되어 있다. 게다가 옆 사람이 거듭 엉키게 되는 요인을 제공하고도 적반하장격으로 나오면 고성이 오가고 싸움까지 일어난다. 여러 낚시 중에서도 갈치 낚시배의 분위기가 가장 좋지 않을 수 있다. 출조비도 상당하고, 고기 욕심이 평정심을 헤치기 때문이다.

   
▲ 출조 전의 제주 도두항 풍경. 날씨가 잔뜩 흐리다.

자리차지하기 싸움도 심하다. 일반적으로 배 앞쪽 두 자리가 가장 조과가 좋다. 이 자리는 경험이 많은 베테랑이 앉는 것이 좋다. 풍을 달고 집어를 하는 갈치낚시의 특성상 갈치무리를 끌고 다니는 자리이기 때문에 선수에 자리한 꾼이 수심층을 일정하게 유지하여야 배 전체 조과가 좋아진다. 하지만 실력은 없으면서 욕심들은 대개 많기에, 서로 선수를 차지하려고 경쟁을 한다. 파도가 높은 날이면 선수는 낚시하기에 대단히 불편하지만 그래도 선수 자리는 늘 인기다. 이런 다툼을 방지하기 위해 선사에서는 화투장을 마련해두었다.
 
사무장이 내미는 화투장을 자리에는 관심이 없는 듯 무표정하게 한 장 뽑아든다. 자리다툼이나 하는 소인배가 아닌 척 가장하면서도 사실은 솔이나 매화를 뽑기를 바란다. 1번을 뽑으면 1순위. 자기가 앉고 싶은 자리에 앉는다. 한 장 뽑아서 썩 보았더니 솔이다! 사무장의 앉고 싶은 자리로 가세요, 라는 말이 나오기 무섭게 부리나케 제일 뒷자리로 간다. 선미 자리는 조과는 복불복이지만 낚시하기도 편하고 무엇보다 채비 엉킴이 덜한 자리다.

비가 간간히 내리는 흐린 날씨다. 배는 도두항을 출발하여 동남쪽으로 달려간다. 한 40여분 나갔을까? 배는 정지하고 풍을 내린다. 완전한 어둠이 내리기 전이다. 바늘 아홉 개에 꽁치 미끼를 달아 채비를 내린다. 40미터 수심을 노리라는 선장의 방송이 들린다. 40미터 수심이란, 전동릴 표시가 수심 40미터가 나오는 데서 채비 내리기를 중단하고, 갈치를 유혹하라는 말이다. 채비 길이가 대략 20미터이니까 갈치 어군이 대략 40미터에서 60미터 사이에서 형성된다는 뜻이다. 갈치낚시는 별다른 기술이 필요하지 않고, 그저 부지런히 하면 된다. 숙달되면 조과가 좋아진다.

수심 40미터를 내리니, 내리자말자 초릿대가 떨린다. 집어등을 켜기도 전에 갈치가 불기 시작하니 오늘 낚시는 대박을 예감한다. 아니 그렇게 기대한다. 채비를 올려보니 씨알 잔 갈치 네 마리가 달려온다. 점점 씨알이 좋아지기를 기대하고 다시 미끼를 달아 채비를 입수시킨다.

   
▲ 처음 올라 온 네 마리 은빛 갈치. 바로 얼음으로.

어둠이 짙어졌다. 산이나 바다에서 어둠은 빨리 온다. 도시는 어둠을 인식하지 못하도록 온갖 조명을 동원한다. 바다에서는 집어등 불빛만이 찬란하게 밝다. 집어등 불빛이 초릿대 떨림을 반사시킨다. 훅킹이 제대로 되도록 빠른 속도로 한 번 감고 기다린다. 이렇게 몇 차례. 밤 9시가 지나자 제대로 갈치가 붙기 시작한다. 바늘 9개에 8마리가 달려올 때도 있다. 부지런히 낚시를 한다. 아니 낚시라기보다는 노동이다. 갈치낚시는 손맛이 있는 것도 아니고 찌를 보고 챔질하는 쾌감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미래의 입맛을 위해 노동의 수고를 감내하는 것뿐이다. 하지만 아무 생각하지 않고 단순한 노동에 집중하는 것이 바로 갈치 낚시의 묘미다. 

   
▲ 한 번에 8마리의 갈치를 올리기도.

밤이 깊어져도 쉬지 않고 낚시만 한다. 쿨러에 갈치가 쌓이기 시작한다. 어느 정도 갈치가 쌓이면 바닷물을 붓는다. 이른바 ‘빙장’을 하는 것이다. 얼음과 갈치와 바닷물이 적당하게 섞여 있을 때 갈치가 가장 싱싱하게 보관이 된다. 하여 낚시꾼이 잡아 보관을 잘한 갈치가 가장 싱싱하다. 
한 새벽 두어 시나 되었을까 했는데, 선장이 철수하자는 방송을 한다. 시간을 보니 4시 30분이다. 후딱 밤이 지나가버린 것이다. 귀항할 때 빙장한 갈치 박스의 물을 뺀다. 이렇게 하면 서울로 공수하여도 다음날 회로 먹는 데 지장이 없다.

갈치낚시를 마치고 도두항으로 귀항하여 갈치를 아이스밖스에 담는다. 무려 두 박스나 된다. 한 30kg은 될 것이다. 덤으로 고등어도 10여 마리 올라왔다. 몇 마리를 골라내어 한 박스에 따로 담는다. 선물할 곳이 있기 때문이다. 꽤 많은 양을 잡았지만 아쉬운 것은 아직 크기가 썩 큰 것을 잡지 못했다는 것이다. 손가락 기준으로 3지 짜리가 대부분이고 4지는 몇 마리 되지 않는다. 언제쯤 5지 짜리 이상을 마음껏 잡아보나. 

   
▲ 이날 필자의 총 조과. 제법 많다. 고등어도 몇 마리 보인다.
 

   
▲ 낚시꾼들의 갈치를 포장해주는 제주 만선호 선장(가운데 푸른 색 옷을 입은 이)

서울로 돌아온 저녁부터 갈치 요리가 전시된다. 작은 녀석들은 뼈 채 채로 썰어 무침을 만든다. 큰 놈은 포를 떠 회로 만든다. 조림도 곁들여진다.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나는 갈치국을 제일 좋아한다. 그 은은하면서도 달고도 담백한 국물에 매력이 있다. 거문도 출신 소설가 한창훈은 갈치국에 대해 이렇게 표현했다.    

"갈치는 회·구이·찜으로 먹는다. 또 하나, 국이 있다. 제주도에서는 호박을 넣어 끓인다. 거문도에는 여인네가 말했던 항각구 국이라는 게 있다. 이게 갈치국이다. 항각구는 엉겅퀴의 이곳 말이다. 국화과의 여러해살이 풀이다. 들에 핀 엉겅퀴를 팍팍 삶아 쓴맛을 우려낸 다음 된장에 버무리고 갈치 넣고 젓국으로 간 맞춘 게 항각구 국이다. 단맛의 갈치와 쌉싸래한 엉겅퀴가 잘 어울린다. 섬에서 '국이 좋으니까 밥 한 그릇 먹어봐' 하면, 이 국이 있다는 소리이다. 섬사람들이 잔병치레를 안 하는 이유가 갈치와 엉겅퀴를 자주 먹어서 그렇다고들 한다. 육지로 이사 간 이들이 소증을 가장 자주 느끼는 게 또 이 국이다. 이곳에는 '갈치 뱃진데기 못 잊어서 육지로 시집 못 가겠네'라는 말이 내려온다."

갈치국에 대한 예찬이다. 경상도에서는 갈치국에 무를 넣는다. 혹은 배추 우거지를 넣기도 한다. 제주도에서는 우거지와 호박을 넣는다. 무엇을 넣어도 상관없다. 싱싱한 갈치면 단맛이 난다. 

먹는 것에 대해 백화제방의 시대가 열렸다. 각종 '먹방'이 횡횡하고 요리 프로그램이 넘쳐난다. 다 먹고 살만하니까 벌어진 현상이기도 하다. 일찍이 허균은 <도문대작(屠門大嚼)>을 기술하면서 서문에 "먹는 것과 성욕은 사람의 본성이다. 더구나 먹는 것은 생명에 관계되는 것이다. 선현들이, 먹는 것을 바치는 자를 천하게 여겼지만, 그것은 먹는 것만을 탐하고 자기의 이익을 추구하는 자를 지적한 것이지 어떻게 먹지도 말고 말하지도 말라는 것이겠는가"라고 썼다. 그래 먹자. 갈치국도 먹고 갈치회도 먹자. 먹기 위해 그 밤의 노역을 감당한 것이 아니겠는가.

   
▲ 갈치회 무침.

허균은 명문가의 자제로 태어났고, 여러 지방의 관리로 나아가서 팔도의 진미를 맛보았다. 그런데 외진 곳으로 귀양을 갔다. 귀양가서 "쌀겨마저도 부족하여 밥상에 오르는 것은 상한 생선이나 감자·들미나리 등이었고 그것도 끼니마다 먹지 못하여 굶주린 배로 밤을 지새울 때면 언제나 지난날 산해진미도 물리도록 먹어 싫어하던 때를 생각하고 침을 삼키곤 하였다." 

참다못한 허균은 음식에 대한 글을 썼다. 1611년 "마침내 (음식을) 종류별로 나열하여 기록해 놓고 가끔 보면서 한 점의 고기로 여기기로 하였다. 쓰기를 마치고 나서 <도문대작(屠門大嚼)>이라 하여 먹는 것에 너무 사치하고 절약할 줄 모르는 세속의 현달한 자들에게 부귀영화는 이처럼 무상할 뿐이라는 것을 경계하고자 한다"라고 하고 그 글을 마쳤다. 도문대작? 푸줏간 앞을 지나며 입맛을 다신다는 뜻이다. 귀양살이 하는 허균의 쓸쓸함과 곤궁함이 동시에 느껴지는 대목이다. 그 <도문대작>이 요즘은 요리서로서 각광받는다.

허균이 입맛만 다시던 시절로부터 400년도 더 지나서, 입맛만 다시지 않고 바다의 진미를 직접 잡아서 먹으니 그것이 바로 낚시꾼의 행복이다.

허균선생, 글로나마 후학(後學)의 갈치 좀 드세요. /하응백 휴먼앤북스 대표·문학박사

   
▲ 아득한 제주 바다. 허균도 이젠 평안하시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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