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1700억 원대의 횡령·배임 혐의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신 회장이 소환조사를 받은 후 6일에 걸친 장고 끝에 내린 결정으로 경제적 파장보다 법 집행의 위상을 세우는 방향을 택한 것이다.

   
▲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지난 20일 신동빈 회장이 검찰의 소환조사에 응한 이후 6일 동안 검찰이 구속영장 청구 여부를 결정하지 못하자 신 회장의 그룹 비리 개입 고리가 불분명하다는 점과 구속 시 롯데그룹 경영 전반에 심각한 타격이 예상된다는 점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신동빈 회장은 계열사 비자금 조성, 해외기업 부실 인수, 계열사간 저가 매각·인수 개입 여부 등을 조사 받았으며 특히 자신을 비롯한 총수 일가의 이름을 계열사 등기이사로 올려놓고 별다른 역할 없이 급여를 챙기도록 한 혐의도 받았다. 검찰 조사에서 신동빈 회장은 혐의 대부분을 부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사실상 검찰은 3개월여 동안 진행된 수사에서 드러난 롯데그룹 계열사의 각종 비리와 신동빈 회장의 연결고리를 찾고자 했지만 이인원 부회장 자살 등으로 윤곽을 잡지 못하고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 역할 없이 급여를 받아왔다는 부분도 경영의 중요 의사결정에 개입할 수 있는 그룹 총수에게 구속 사유로는 부족하다는 평가도 있었다. 때문에 경제적 파장 등까지 고려하면 검찰이 불구속 기소로 가닥을 잡는 것 아니냐는 예상까지 나왔었다.

그럼에도 이번 구속영장 청구가 결정된 것은 검찰이 3개월 넘게 대대적으로 벌여온 수사의 종지부를 찍는 만큼, 총수인 신동빈 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할 수밖에 없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직접적인 혐의보다 그룹의 문제에 대한 최종 책임자라는 점이 유효하다는 시각이다.

구체적으로 1700억 원에 달하는 비리 수사를 벌여 놓고 구속영장마저 청구하지 않는다면 ‘재벌 봐주기’, ‘솜방망이 처벌’ 등의 질타를 받을 것이라는 점이 부담으로 작용했을 수밖에 없다.

◆ 검찰 수사는 롯데에게 ‘수술’일까 ‘안락사’일까

이번 구속영장 청구에 롯데그룹은 “안타까운 심정”이라며 “법원의 현명한 판단을 기다리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실제로 롯데그룹은 ‘안타깝다 못해 애가 타는’ 위치에 놓였다. 검찰을 장고에 빠뜨린 경영 위기를 정면으로 마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먼저 실제로 구속영장이 발부될 경우 롯데그룹의 경영권이 일본에 넘어갈 수 있다는 우려가 지속적으로 불거졌다.

롯데그룹은 창업주인 신격호 총괄회장이 일본에서 사업을 시작해 국내 투자로 세운 역사적특성상 지배구조에 일본 롯데까지 얽혀있다. 한국 롯데의 실질적 지주회사인 호텔롯데 지분의 90% 이상이 일본 롯데 계열사 소유며 일본 롯데의 정점에는 롯데홀딩스가 있다.

이런 지배구조에서 그룹 총수인 신동빈 회장이 구속될 경우 양국에서 실질적 경영권이 일본으로 넘어갈 수 있다. 전원 일본인으로 구성된 일본 롯데 임원진이 일본 뿐 아니라 한국 롯데의 경영에까지 입김을 넣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신동빈 회장이 구속돼 물러나게 되면 현재 신 회장과 일본 롯데홀딩스 공동 대표를 맡은 쓰쿠다 다카유키 사장의 단독 대표 체제가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때문에 신 회장의 구속이 ‘국부 유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전경.

경영권을 지킬 수 있다고 해도 이미 지난 6월 압수수색 이후 실질적으로 마비된 롯데그룹의 경영 문제가 남아있다.

롯데그룹은 우리나라에만 약 12만 명, 일본 등 전 세계에 총 18만 명에 달하는 임직원이 있고 국내 재계 서열로는 다섯 번째에 꼽힌다. 한 번에 무너질 경우 미칠 경제적 파장이 우려될 수밖에 없는 규모다.

지난 수년 간 롯데그룹은 약 7조원 규모의 투자를 해왔지만 지난 6월 수사 개시 이후 사실상 대규모 투자가 중단된 상태다. 이 같은 경영 마비는 최근 급변하는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유통업 위주의 롯데그룹에게 치명적이다.

다음달 예정된 서울 시내 면세점 입찰만 해도 롯데는 그룹 차원의 대응을 할 수 없어 롯데면세점이 단독으로 고군분투해야 하는 상황이다. 롯데면세점은 지난해 월드타워점 운영권을 잃어 1천 명 이상의 임직원이 유급휴가 상태거나 타 사업장으로 전출됐다.

여기에 경영권 분쟁까지 겪으며 신격호 총괄회장의 옛 체제에서 신동빈 체제로 넘어온 롯데가 본격적인 체질개선을 할 기회가 사라졌다는 문제도 지적된다.

신동빈 회장은 신격호 총괄회장이 식품 사업에 주로 치중해온 것과 달리 금융권의 신용을 얻기 위한 투명 경영, 해외시장 진출 등을 통한 성장전략 등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그는 부친 신격호 총괄회장의 반대에도 롯데쇼핑을 상장하고 호텔롯데의 기업 공개도 추진했다.

또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복잡한 순환출자 구조를 개선하겠다는 약속을 이행하는 차원에서 호텔롯데의 계열사 주식 매입을 통해 지난해 초 기준 416건에 달했던 순환출자 고리를 올해 7월 말 67건까지 줄이기도 했다.

즉 검찰 조사에서 드러난 바와 같이 낡은 관행과 조직문화 등 많은 문제를 안고 있던 롯데가 신동빈 체제에서 변화될 가능성도 있다는 평가가 가능하다. 적어도 신동주 전 롯데홀딩스 부회장과의 경영권 분쟁과 이번 검찰 수사 등을 통해 썩은 부위를 도려낼 기회는 마련됐다.

다만 신동빈 회장이 구속될 경우, 드러난 환부를 도려내고 변모하기 전에 롯데그룹이 손발마저 움직일 수 없는 ‘뇌사’ 상태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는 지울 수 없다.[미디어펜=김정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