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응백의 낚시여행]-시각 장애인과 함께 한 주꾸미낚시

   
▲ 하응백 휴먼앤북스 대표·문학박사
나의 스승 소설가 황순원 선생이 작고하였던 2000년 가을, 백령도로 여행을 떠났다. 황순원 선생의 장남인 황동규 시인이 워낙 상심이 커서 위로를 하고자 문인 대여섯 명이 함께 한 여행이었다. 일행은 백령도로 가서 낚시도 하고, 두무진을 비롯한 백령도의 명소를 여행하다가 심청각에 들렀다.

심청각은 백령도 진촌리에 세워진 효녀 심청을 기리기 위한 전시관이다. 심청은 물론 고소설과 판소리에 등장하는 가상의 인물이다. 상인들에게 공양미 삼백 석에 팔린 심청은 바다 한가운데서 물에 던져졌다. 이른바 인신공양인데, 소설을 보면 심청이 빠진 곳의 지명이 바로 임당수(인당수)다. 그 임당수가 어디일까? 물론 소설에는 자세한 위치가 나오지 않는다. 가상의 공간이니 나와도 이상하다. 그런데 실제로 임당수가 있다.

백령도나 대청도에서 전해지는 전설에 따르면 백령도와 황해도 장산곶 사이의 중간 지점이 바로 임당수란 것이다. 물론 믿거나 말거나지만, 백령도에서는 그 임당수가 잘 보이는 지점에 심청각을 세워 백령도를 찾는 관광객이 한번쯤은 찾게 만들었다. 맑은 날이면 건너편 황해도 땅이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보이니 북녘 땅을 바라볼 겸 해서 겸사겸사 찾는 곳이 바로 심청각인 것이다.

2000년 가을 이곳을 둘러보았을 때 약간은 색다른 광경을 목격했다. 10여 명의 시각 장애인이 가이드의 설명에 집중하고 있었다. 가이드가 "저 쪽이 바로 임당수입니다."라고 하자, 시각 장애인 여러분들은 마치 그 곳을 보는 듯 가이드가 가리킨 곳으로 시선을 집중했던 것이다. 이 장면은 나의 머리속에 오래도록 각인되어 있었다. 왜 그랬을까? 앞을 보지 못하는 시각 장애인들이 그 바다로 시선을 집중해서 본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시각장애인을 위해 바다낚시를 기획하였으니 한 번 따라가 보지 않겠느냐는 서울특별시 장애인체육회 사무총장의 제의를 받고, 조금 망설이다가 그 제의를 받아들였다. 재능기부의 일종이라니 배낚시야 프로는 아니지만 내가 잘하는 것 중의 하나이니 하루쯤 그들과 같이 시간을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잠시 망설였던 것은 내가 뭐 별 도움이 될까 하는 생각에서 나온 것이었지만 생초보 친구들도 데리고 가서 낚시 가르쳐주고, 회도 쳐주고 했으니까 이번에도 그렇게 하면 될 것이었다.

장애인체육회의 행사 안내를 메일로 받았더니 대한스포츠피싱연맹에서 낚시 관련 일체를 진행한다고 되어 있었다. 사무총장에게서 배낚시를 한다고만 안내를 받았지 그 이상의 정보는 없었던 것이다. 행사 안내 메일에도 '루어낚시'를 한다고만 되어 있었다.

루어낚시의 장르야 워낙 다양하다. 광어 다운샷 낚시를 하는지, 섬에 붙여서 농어나 우럭, 노래미를 노리는지 알 수가 없어 피싱연맹 김선규회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무슨 낚시를 하느냐고 물었더니 주꾸미낚시란다! 주꾸미야 내 전공 중의 전공이 아닌가! 주꾸미 낚시에 프로가 있겠냐만 충분히 실력 발휘도 하고 잡는 방법도 알려주고 또 갑오징어를 잡으면 회도 쳐 줄 요량으로 허브소금과 참기름을 준비했다. 감오징어나 주꾸미 회는 초고추장에 찍어 먹어도 맛있지만 기름 소금에 찍어 먹으면 그 맛이 훨씬 좋다.

수요일 아침 7시 잠실운동장에 집결했다. 시각 장애인 분들이 도우미들의 도움을 받아서 버스에 탑승한다. 청년 도우미들이 워낙 듬직하고 안내를 잘 해서 오늘 낚시는 별 탈 없이 잘 진행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영흥도 산착장에 도착한 것이 아침 9시. 피싱연맹 관계자들이 나와 환대를 하고 낚시 요령과 주의사항을 알려준다. 모두 모여 기념 촬영 한 컷.

   
▲ 모든 행사의 시작은 기념촬영으로부터

두 척의 배에 분승해 바다로 나아간다. 날씨가 좋아 바다는 장판이다. 아침에는 안개가 심했지만 다행히 안개가 걷히기 시작한다. 시각 장애인 한 분은 기분이 좋은지 갈매기 끼룩거리는 소리를 흉내 낸다. 그렇겠지. 나야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바다에 나오니, 바다의 매력에 무뎌있을 것이다. 하지만 시각 장애인 분들은 정말 오래간만에 바다에 왔을 것이다. 표현은 안하지만 그들은 모두 들떠있음에 틀림없다.

   
▲ 이날 행사에 참가한 낚싯배

한 가지 걱정은 요 2,3일이 연중 물이 가장 많은 날이라는 점이었다. 큰 사리여서 바닷가 낮은 지대까지 해수가 들어찬다. 이때는 서해에는 뻘물이 지게 마련이어서 주꾸미 조황이 극히 좋지 않다. 주꾸미가 루어를 보지 못해 잘 잡히지 않을 것이다. 관계자에게 이 말을 하려다가 아차! 했다. '보지 못한다는 말' 자체가 시각 장애인분들에게 상처를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말하지 말고 낚시만 하자. 도우미들이 워낙 든든한 청년들이니 알아서 할 것이다. 나의 역할은 많이 잡아 저분들께 회 맛을 보여주는 것이다!

   
▲ 낚시 요령을 진지하게 경청하고 있는 시각장애우 여러분들

배는 입파도 부근으로 간다. 이곳은 우럭 낚시하러 많이 와 본 곳이다. 입파도, 육도 부근에서 낚시는 시작된다. 하지만 불행히도 나의 예상은 적중했다. 도대체 주꾸미가 한 마리도 물지 않는 것이다. 선장도 답답한지 여러 곳으로 포인트를 옮겨 다닌다. 거의 두 시간이 흘렀을까? 회는 고사하고 이러다간 주꾸미 라면 맛도 보여줄 수 없겠다 싶어 더욱 낚시에 집중한다. 다른 한 척에서는 갑오징어 몇 마리 올라왔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선장이 그 배 옆으로 다시 포인트를 옮긴다.

   
▲ 바다는 장판처럼 고요하다

선수에서 집중하면서 낚시를 하는 순간 갑오징어 입질이 느껴진다. 재빨리 챘더니 떨어져 나간다. 조급함이 실수로 이어진 것이다. 다시 입질이 온다. 이번에는 실수가 없어야지. 갑오징어다. 조금 있다가 갑오징어와 주꾸미 쌍걸이. 그제서야 배 여기저기서 주꾸미가 한두 마리 올라오고, 갑오징어도 올라온다. 하지만 갑오징어는 떨어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챔질이 약해서다. 약 한 시간 열심히 낚시를 한다. 이 배 전체에서 낚시를 지도하는 최석민 프로의 손길도 분주하다. 대한민국의 유명한 배서 프로낚시인인 그는 에스엠테크라는 썩 좋은 낚싯대를 생산하는 기업의 대표이기도 하다. 최석민 프로는 낚시 tv에도 나오는, 나 같은 잡어 낚시꾼과는 비교가 안 되는 실력파이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간간히 잡아낼 뿐이다.

   
▲ 이날 행사를 주관한 대한스포츠피싱연맹 김선규회장

그렇게 한 두어 시간 낚시를 했을까? 사무장이 잡은 갑오징어와 주꾸미를 거두어 라면 끓일 준비를 한다. 나의 조과를 보니 갑오징어 5마리와 주꾸미 7,8마리다. 고군분투한 최프로와 몇몇 도우미들 덕에 전체를 모으니 제법 양이 된다. 회를 치기는 부족하지만 주꾸미 라면이나 먹을 수 있음을 다행으로 여긴다.
일행들은 배 앞뒤로 나뉘어 주꾸미, 갑오징어 라면을 먹는다. 다들 시장한 탓도 있고, 또 주꾸미, 갑오징어 먹물 라면은 대부분 처음이라 '맛있다'를 연발하며 맛있게 먹는다. 다행이다. 내 역할의 반은 했다.

   
▲ 오전에 잡은 녀석들은 주꾸미, 갑오징어 라면으로 직행

점심을 먹고 나서도 아주 간간히 주꾸미와 갑오징어가 올라온다. 부지런히 잡아서 시각장애인 어느 분이나 가져갈 수 있게 하려고 했지만 역부족이다. 물이 흐려 낚시는 오전과 별반 다름없이 지지부진하다. 2시 45분. 낚시를 끝내고 항구로 돌아간다. 내가 잡은 10여 마리를 도우미에게 준다. 어느 분이 가져가시겠지.

   
▲ 진지하게 낚시를 하고 있다

항구로 돌아와서 시상식이 열린다. 1등은 7마리를 잡은 분이고, 2등는 4마리로 3분이다. 상품이 3개밖에 없자 김선규회장이 급히 낚시가게에서 하나 사서 상품으로 내 놓는다. 참으로 볼품없는 조과였지만 시각장애인 분들은 모두 즐겁게 하루를 보냈다고 입을 모은다. 한 여성 시각 장애우는 "내년에도 또 해요."라고 한다. 그래, 양이 문제겠어. 하루 이 청명한 가을 날 바다에서, 배 위에서 하루를 보낸 것이 즐거운 거지. 그런 생각을 한다.

   
▲ 1등상 수상자의 자랑스러움

회 맛을 보여주는 데는 실패했지만, 그래도 열심히 했다. 그것으로 만족한다.

16년 전 심청각에서 바다를 바라 본 그 시각장애인들은 어떤 간절한 염원에서 그곳을 찾았을 것이다. 나는 어느 칼럼에서 <심청전>을 인용하면서 다음과 같은 글을 쓴 적이 있다.

"<심청전>에서 황후가 된 심청은 맹인 잔치를 벌인다. 우여곡절 끝에 황궁에 도착한 심학규는 마침내 청이와 감격의 부녀 상봉을 한다. 하지만 이때까지 심학규는 눈을 뜨지 못했다. 청이가 옥수(玉水)로 아버지의 눈을 씻으면서 자신의 효성이 부족했는지를 한탄할 때, 비로소 심학규는 눈을 번쩍 뜬다. 보통 부녀 상봉과 심학규의 개안을 마지막으로 심청전은 끝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것이 끝이 아니다. 맹인 잔치에 모인 많은 맹인들이 이 이야기를 듣고 일시에 눈을 뜨는 진짜 마지막이 남아 있다. 

<심청전>은 심학규 한 사람만이 아니라 잔치에 참여한 맹인 모두 함께 눈을 뜨는 것으로 결말을 맺는다. <심청전>이라는 고전소설 혹은 판소리 <심청가>는 장엄한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되는 것이다. 심청각에서 보이지도 않는 임당수를 바라보았던 시각장애인들은 그 장엄한 해피엔딩에 동참하고 싶은 염원 혹은 희망으로 가득 찼을 것이다."

오늘 낚시는 서울특별시장애인체육회, 대한스포츠피싱연맹, 최석민 프로, 도우미 등 여러 단체와 사람들의 도움으로 해피엔딩으로 끝났다. /하응백 휴먼앤북스 대표·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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