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PDATE : 2021.09.28 17:01 화
> 칼럼
자유·독립 없는 교육…오도된 민족주의, 민주화의 한계
대한민국 교육 70년 되돌아보기…막대한 비용의 큰 혼란, 교육현장에서 빚어져
승인 | 편집국 기자 | media@mediapen.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승인 2016-12-22 10:55:00
트위터 페이스북 밴드 카카오스토리
   
▲ 이영훈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
교육 자유화의 당면 과제

대한민국 교육 70년 되돌아보기

오성철 외 6인이 2015년에 출간한 『대한민국 교육 70년』(대한민국역사박물관, 2015)은 한국 교육의 역사와 현실에 대해 새롭고 유익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이 책의 총론은 교육 70년을 규정한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서 한국인의 높은 교육열을 꼽고 있다. 한국인의 교육열은 이례적이라 할 정도로 높다. 그렇게 된 이유로서 오성철은 1) 개방적 학제와 선발체제, 2) 학력엘리트의 출현, 3) 사회계층구조의 재편, 4) 가족의 생존전략, 5) 유교문화의 유산과 학력의 위신효과, 6) 국가의 포퓰리즘 교육정책을 열거하고 있다. 쉽게 수긍할 수 있는 지적이다. 한마디로 높은 수준의 교육열은 한국 사회와 문화의 특질에 규정되어 역사적으로 형성된 것이다. 

이 책은 교육 70년을 다음과 같은 세 시기로 구분하고 있다. 제1기는 1945〜1968년으로서 “국가교육체제의 성립과 초등 의무교육제의 실현”의 시기이다. 이 기간은 국가의 교육체제가 단선적인 6-3-3-4제로 정비되고, 교육정책의 중심이 초등교육의 의무교육제 실현에 두어진 시기이다. 제2기는 1968〜1995년으로서 “교육의 국가주의적 재편과 중·고등교육의 보편화”의 시기이다.

이 기간은 1968년 중학교 평준화, 1974년 고등학교 평준화, 1980년 대학정원의 대폭 증원 등으로 이어진 교육 평준화의 시기이다. 교육 평준화는 상급 학교로의 진학률을 높였다. 이 시기의 고도성장은 국민의 경제적 처지와 사회적 지위를 개선하였다. 그에 부응하여 이 시기의 교육정책은 국가주의적, 평등주의적 특질을 띠었다.

제3기는 1995년 이후 지금까지로서 “교육의 민주화·분권화와 교육 불평등의 심화”의 시기이다. 1994년 제2시기를 상징한 국민교육현장이 자연스럽게 폐기되었다. 1997년 기존의 교육법을 대신하여 교육기본법이 제정되었다. 교육에 대한 중앙집권적 통제가 약화되고 교육자치가 강화되었다. 교권이 신장되고 전교조가 합법화하고 학교운영이 자율화하였다. 그와 더불어 고교평준화정책에 변화가 일어나 자율고와 자사고가 출현하였다. 이후 교육기회의 계층적 불평등 문제가 정치적 이슈로 제기되었다. 

이 같은 교육 70년의 시기 구분에 대해서도 대체로 공감할 수 있다. 이 책의 저자들은 제3기에 조성된 교육기회의 불평등을 교육정책이 신자유주의에 포획된 결과로 이해하며, 이를 시정하기 위한 교육 안팎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교육 밖에서는 학력에 따른 소득과 사회적 위신의 격차를 줄이기 위한 사회·경제정책을 실행할 필요가 있으며, 교육 안에서는 지금까지의 권위주의적 교육에서 벗어나 국가와 국민의 관계를 평등하게 재배치하는, 시민적 공공성을 강화하기 위한, 교육 내용의 전환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책을 읽은 뒤의 소감은 교육 70년의 역사와 현실을 쉽게 정리해 받았다는 고마움이다. 뒤따른 의문은 다음과 같다. 7인의 저자들이 보유한 교육철학은 무엇인가. 그들은 어디를 지향하고 있는가. 교육 불평등을 해소하자는 주장은 당연한듯하지만 따지고 보면 이상하다. 그들의 설명대로 제2기 권위주의시절 교육정책의 기저는 평준화이다. 민주화와 분권화를 표방한 제3기의 교육철학은 평준화와 어떠한 관계에 있는가. 민주화와 분권화를 하면 어느 정도의 불평등은 불가피하지 않은가. 바람직한 교육정책에서 불평등은 어떻게 용해되어 마땅한가. 오늘날 한국의 이른바 진보세력은 교육평준화를 주장하고 있다. 그들은 제2기의 권위주의정치에 대해 특별히 비판적이다. 그럼에도 제2기의 평준화 정책만큼은 적극 계승하고 있다. 이러한 어긋남을 어떻게 이해해야 좋은가.

   
▲ 지난 70년의 역사에서 개인-사회-국가의 관계를 규율하고 통합하는 근대문명의 기초 원리는 한 번도 적극적으로 의식되거나 교육되어 본 적이 없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자유와 독립이다./사진=미디어펜


민주화의 실태

문민정치를 표방한 김영삼정부(1993〜1998)는 후대의 정부가 범하지 말아야 할 교훈을 많이 남겼다. 역사는 쉽게 바뀌지 않으며, 보다 나은 역사를 만들기 위한 노력은 점진적이며, 체계적이며, 지속적이야 한다. 그를 위해서는 그에 대한 정치적 합의가 도출되어야 하며, 무엇보다 그것을 지지하는 역사에 대한 충실한 이해를 전제한 지성사회의 성립이 요구된다. 김영삼정부는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바꾸고자 했으며, 그래서 기존의 모든 체제를 허물어버렸다.  

그러한 현상은 경제정책에서 특별히 심하였다. 1993년 지난 30년을 이어온 5개년개발계획체제가 부정되었다. 진행 중인 제7차 경제사회개발5계획을 폐기하고 신경제정책을 실시하였다. 이 정책은 사계의 합의를 도출하는 절차를 거치지 않은 채 어느 교수 출신 경제수석의 개인적 구상과 그에 대한 집권자의 지지로 실천에 옮겨졌지만, 1년 6개월을 넘기지 못하고 폐기되었다. 이후에 내걸어진 ‘경제국제화10개년계획’, ‘세계화’, ‘21세기발전전략’ 등도 마찬가지였다. 현란한 구호가 치밀한 기획을 대신하는 사이 1997년 말 외환위기가 찾아왔다. 34년에 걸친 고도성장이 이로써 종식되고 엄청난 양의 국부가 해외로 유출되었다. 

외환위기의 와중인 1997년 12월에 기존의 교육법을 대신하여 교육기본법이 제정되었다. 새로운 법은 이전의 국가주도적 교육을 대신하여 교육의 민주화와 분권화를 지향하였다. 학생, 교원, 교원단체, 학부모의 권리가 강화되었으며, 학교운영에 참여할 기회가 널리 개방되었다. 이후 지금까지 어떠한 일이 교육현장에서 벌어졌는가. 무분별한 경제정책이 외환위기를 초래한 만큼 가시적이지 않지만, 보이지 않은 형태로 막대한 비용의 큰 혼란이 교육현장에서 빚어져왔다.  

새로운 교육기본법이 이전의 교육법과 비해 드러내는 두드러진 차이는 그 때까지 교육을 규정해 온 각종 이념의 대부분을 폐기해 버렸다는 점이다. 구 교육법은 “홍익인간의 이념 아래 모든 국민으로 하여금 인격을 완성하고 자주적 생활능력과 공민으로서의 자질을 구유하게 하며 민주국가 발전에 봉사하여 인류공영의 이념 실현에 기여하게 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선언한 다음(제1조), 신체건전, 애국애족, 민족문화, 과학정신, 자유시민, 예술정서, 근검노작의 7가지를 교육의 방침으로 제시하였다(제2조).

새로운 교육기본법은 이 7가지 교육방침을 모두 삭제하였다. 그 대신 “학교교육은 학생의 창의력 계발 및 인성 함양을 포함한 전인적 교육을 중시하여 이루어져야 한다”라는 규정을 신설하였다(제9조). 요컨대 교육기본법은 교육의 방침을 ‘창의력 계발’과 ‘인성 함양’으로 제시하였다. 이 같은 교육정책의 대전환은 1998년부터 시행된 제7차 교육과정으로 구체화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그 동안 제7차 교육과정은 몇 차례 개정을 거치는 가운데 세계화와 정보화의 시대에 세계 어디서도 적응할 수 있는 창의력을 지닌, 그러면서도 인성이 풍부한, 전인적 인간을 지향해 왔다. 

제7차 교육과정이 어떠한 결과를 초래했는지는 지난 10여년에 걸친 역사교과서논쟁을 통해 잘 살필 수 있다. 중·고등학교 역사교과서는 대한민국 건국의 정통성을 부정하였다. 역사교과서는 대한민국의 건국은 민족분단을 불러온 없었으면 좋을 사건으로 치부하였으며, 건국의 주체세력을 새로운 외세 미국을 등에 업고 민족분단을 불사한 세력으로 비판하였다. 그들은 장기독재와 부정부패를 획책한 집단으로 매도되었다.

교과서는 지난 70년간 이 나라가 이룩한 여러 방면의 성취는 대외 종속과 대내 불평등을 심화시켰을 뿐이며, 진정한 민주주의에 입각한 국민국가의 수립은 민족의 통일과 더불어 완수될 것이며, 이에 북한체제는 화해와 협력의 대상으로 고쳐 이해될 필요가 있음을 강조하였다. 이런 식의 교육은 중·고등학교 교과서에서만이 아니다. 초등학교 교과서는 어린아이들에게 그들의 국가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언급하지 않은 채 가족주의 원리에 입각한 통일의 당위를 가르치고 있다. 

나는 이 같은 내용의 교과서는 1997년 말에 발생한 외환위기에 못지않은 국가적 재앙을 이미 초래했거나 앞으로 더 초래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제3기는 민주화와 분권화를 표방했지만, 교육철학에서는 허무였다. 기존의 교육방침을 폐기하고 창의력과 인성을 내걸었지만 그 결과는 오도된 민족주의였다. 교육철학에서 제3기는 혼돈과 후퇴의 시기였다. 

   
▲ 이제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근대문명의 기본 원리로서 ‘개인의 근본적 자유’에 대한 국민적 교육과 실천에 다름 아니다. 그에 입각하여 국가의 역사를 재정립하고, 초·중등 교과서를 전면 개편하는 일이야말로 더 늦출 수 없는 교육 자유화의 당면 과제이다./사진=미디어펜

한국인의 가치관

폐기되기 이전의 교육법이 어떤 정향으로 체계화된 이념에 입각했다고는 보기 힘들다. 제1〜2기에 걸쳐 교육 정책이나 현장에서 지배적인 교육이념이 민족주의 내지 국가주의였음은 사실 그대로이다. 제3기의 교육기본법은 형식상 그것들을 내려놓았지만, 사회와 문화의 역사적 경로성은 그리 쉽게 바뀌지 않았다. 제3기는 어느 신생국이 그에 마땅한 이념적 지향을 포기할 때, 교육이 알게 모르게 신생국의 존립 자체를 부정하는 사회·문화의 특정 세력에 의해 얼마나 손쉽게 포획되는가를 교훈으로 남기고 있다.

한국의 사회와 문화가 지니는 비교적 특질은 1985년 이래 미국 미시간대학이 5년마다 실시해 온 세계가치관조사에 잘 드러나 있다. 그에 관해서는 이미 잘 알려진 분석이 있는데, 2010년 조사결과에 대해서는 아직 소개된 바가 없기 때문에, 이하 간략히 소개한다. 한국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18개국을 비교대상으로 한다. 한국인이 인생살이에 있어서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은 일(work)이다. 일이 중요하다고 대답한 비율은 18개국 가운데서 가장 높다. 반면 여가가 중요하다고 대답한 비율은 15위로서 낮은 수준이다(<표1> 참조). 

부모가 자식에게 어떤 덕목을 교육하는가는 세대에 걸친 가치관의 구조를 대변한다. 한국의 부모는 자식에게 열심히 일해라, 책임감을 가져라, 절약하고 저축해라, 목적을 정한 다음 참을성 있게 노력해라, 과감하게 자기를 표현하라는 덕목에서 18개국 평균 이상의 열성을 보인다.

반면에 상상하라, 남에게 관용을 베풀어라, 이타적으로 행동하라, 권위에 복종하라는 덕목에는 평균 이하이다(<표2> 참조). 요컨대 한국인은 부모로부터 열심히 공부하고 근검절약하여 정한 바 목적을 성취하도록 강하게 교육받는 한편, 사회생활에 있어서 남에게 관용을 베풀고 이타적으로 행동할 것을 배우지는 않는다. 부모는 자식에게 그가 승복해야 할 어떤 사회적 가치나 권위를 가르치고 있으며, 자식에게 물려줄 상상의 정신세계를 갖고 있지 않다. 그런 가운데 자기 자식이 기죽지 말고 자기주장에 적극적이도록 요구하고 있다. 

이 같은 가정교육의 덕목은 두드러지게 물질주의적이다. 행복의 기준은 부의 크기와 사회적 지위의 고저에 두어진다. 이 점은 부, 일의 보람, 행복의 관련을 묻는 조사 항목에서 뚜렷이 확인되고 있다. 그 결과 한국인은 정신적으로 행복하지 않다. 행복한가라는 질문에 적극적으로 대답하는 비율은 18개국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다.

건강한가라는 질문에 대한 긍정적 대답도 17위의 매우 낮은 수준이다(<표3> 참조). 그런 가운데 한국인들의 사회생활은 상대적으로 고립적이다. 노동조합, 정당, 인권·자선단체, 자조·상호부조단체에 가입한 비율은 18개국의 평균 이하이다(<표4> 참조). 기타 단체에의 가입률이 높은 것은 다른 나라에서 찾기 힘든 혈연, 지연, 학연에 바탕을 둔 단체가 활발하기 때문일 터이다. 요컨대 한국인은 아직 충분히 사회화되어 있지 않다.

한국인이 살기 싫은 이웃으로 다른 인종과 외국인노동자를 지목한 정도는 18개국 가운데 특별히 높은 수준이다. 이 현상이 매우 높은 수준의 민족주의 탓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2010년까지도 한국인의 정신세계는 혈연 원리에 기초한 가족주의나 민족주의에 닫혀 있는 편이다. 사회적 소수에 대한 관용도 낮은 편이다. 에이즈환자, 동성애자, 미혼부부에 대한 혐오감 역시 두드러지게 높은 수준이다(<표5> 참조).

이 같은 가치관의 구조와 그에 규정된 사회생활의 특질은 한국인이 그의 오랜 역사에서 물려받은 것이다. 19세기까지 한국은 오랫동안 닫혀 온 소농사회였으며, 거기서 형성된 사회문화적 특질은 1950년대까지 거의 변하지 않았다. 이후 객관적으로 진행된 근대화와 국제화의 물결은 개인, 자유, 독립과 같은 근대적 가치를 행동원리로 하는 인간들을 양산하였다. 그렇지만 그 과정은 복선적이었다. 가족주의, 지역주의와 같은 집단적 생존윤리나 그것의 정치적 반향으로서 민족주의가 개별화하는 인간들을 통합하는 새로운 원리로 강화되었다.   

제2기의 권위주의정치는 사회와 문화의 이 같은 객관적 흐름을 고도성장의 동력으로 동원하고 조직함에 성공하였다. 고도성장은 그에 참여한 국민에게 인간실현과 계층상승의 기회를 제공하였으며, 단선적 학제의 평등주의적 교육체제가 가장 중요한 통로를 이루었다. 그렇지만 고도성장의 시대가 끝나자 그 같은 통합과 상승의 호순환은 더 이상 작동하지 않게 되었다. 제3기를 연 주역들은 제2기의 호순환이 여전히 이어지리라는 낙관에 기초하였다. 실은 그들은 정신적으로 공백 상태였다. 그들은 민주화와 분권화를 형식으로만 추구하였다. 그 결과 한국인의 사회생활과 정신생활은 더욱 황량해졌다. “일반적으로 사람을 신뢰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1985년 긍정적으로 대답한 한국인은 38%였다. 그것이 2010년까지 26%로 낮아졌다(마지막 그림 참조). 

   
▲ 김영삼정부는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바꾸고자 했다. 새로운 법은 이전의 국가주도적 교육을 대신하여 교육의 민주화와 분권화를 지향하였다. 학생, 교원, 교원단체, 학부모의 권리가 강화되었으며, 학교운영에 참여할 기회가 널리 개방되었다./사진=연합뉴스

‘자유’와 ‘독립’을 교육해야 한다

지난 70년의 역사에서 개인-사회-국가의 관계를 규율하고 통합하는 근대문명의 기초 원리는 한 번도 적극적으로 의식되거나 교육되어 본 적이 없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자유’와 ‘독립’이다. 신체의 자유와 재산권의 정립을 양대 축으로 하는 ‘자유와 정의의 법’이야말로 개인-사회-국가를 통합하는 근대문명의 핵심 원리이다.

지난 70년간 그에 관한 교육 당국의 인식은 거의 없었으며, 제3기에 들어서는 오히려 후퇴하였다. 전술한대로 현행 교육과정은 전인적 인성을 소중하게 가르치고 있다. 초등학교 바른생활 교과서는 인성의 덕목으로서 성실, 정직, 자주, 절제, 책임, 노력, 계획, 반성, 실천, 협동, 봉사, 배려, 창의, 끼, 준법, 효도, 우정, 화해, 사랑, 자비, 용서, 평화, 비폭력을 열거하고 있다.

이 23종의 덕목은 초·중등 12년에 걸쳐 반복적으로 교육되고 있다. 그렇지만 생각해보라. 이런 덕목을 가르치지 않은 나라가 양의 동서를 막론하고 어느 시대에 존재한 적이 있는지를. 유교의 나라 조선왕조도, 천황주의 일본도, 공산주의 소련·중국도, 수령주의 북한도 이 같은 덕목을 젊은 세대에 주입함에 조금도 소홀하지 않았다. 오히려 사회가 신분제나 전체주의로 통합될수록 이 같은 덕목은 더욱 강조되었다. 

이 같은 인성은 파생적인 덕목일 뿐이다. 본원적인 가치로서 인간들을 사회적 신뢰와 협동으로 이끄는 원리는 시대와 체제에 따라 상이하였다. 70년 전 대한민국은 ‘개인의 근본적 자유’를 지지하는 나라로 성립하였다(이승만 대통령이 건국 기념식전에서 행한 연설을 참조). 그것이 지난 70년간의 볼만한 성취를 초래한 근본 동력이다. 그럼에도 한국의 정치, 사회, 문화는 지금껏 그에 대한 자각적 이해와 의지적 실천을 결여하였다. ‘자유’ 하면 의례히 약육강식의 정글문화를 떠올리거나 있는 자들의 기득권 타령으로 치부하는 한국의 지성은 어찌해서 그 ‘자유’가 충만한 선진국에서 신뢰와 협동이 가장 높은 수준으로 구현되는지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한 지성의 한계는 역설적이게도 제2기까지의 국가주의적 통합이 나름의 시대적 역할을 수행하게 한 토양을 제공하였다. 제3기의 민주화가 한국인을 저신뢰와 고갈등으로 밀어 넣은 것은 그러한 사회와 문화의 조건에서이다. 이제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근대문명의 기본 원리로서 ‘개인의 근본적 자유’에 대한 국민적 교육과 실천에 다름 아니다. 그에 입각하여 국가의 역사를 재정립하고, 초·중등 교과서를 전면 개편하는 일이야말로 더 늦출 수 없는 교육 자유화의 당면 과제이다. /이영훈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

   
▲ <표1> 인생에서 중요한 것, 2010년 (대단히 중요하다고 대답한 비율)./자료출처: 세계가치관조사(http://www.worldvaluesurvey.org)
       
   
▲ <표2> 부모의 자식교육 가치, 2010년(교육한 적이 있는가에 대한 대답 비율)./자료출처: 세계가치관조사(http://www.worldvaluesurvey.org)

   
▲ <표3> 행복하고 건강한가, 2010년(강하게 그렇다고 대답한 비율)./자료출처: 세계가치관조사(http://www.worldvaluesurvey.org)
            
   
▲ <표4> 어떤 단체에 가입해 있는가(있다고 대답한 비율)./자료출처: 세계가치관조사(http://www.worldvaluesurvey.org)
         
   
▲ <표5> 살기 싫은 이웃, 2010년(그렇다고 대답한 비율)./자료출처: 세계가치관조사(http://www.worldvaluesurvey.org)

   
▲ 한국에 대한 신뢰도 조사./자료출처: 세계가치관조사(http://www.worldvaluesurvey.org)
     


(이 글은 22일 마포 리버티홀에서 자유경제원 및 자유통일문화원 공동 주최로 열린 ‘이념은 교육에 의해 정립된다: 대한민국과 북한의 정체성 교육 비교’ 세미나에서 발제자로 나선 이영훈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가 발표한 발제문 전문이다.)
[이영훈] ▶다른기사보기

[이런 기사 어때요?]

피 냄새 나는 민족주의…증오·폭력으로 얼룩진 괴물
"폐쇄적 민족주의 한국사…세계사 빗장을 풀어야"
퇴행적 역사인식·전체주의 부르는 위험한 민족주의
친일 낙인찍는 시대의 지진아들…민족주의는 끝났다
민족주의 뒤에 숨은 좌파, 조작된 과거사 아닌 올바른 역사 쓰자
조희연 교육감, 탄핵 빌미 역사교과서 죽이기 유감
전희경 "'국정교과서=응급수술' 알려야" 촉구…교육부 전향적 답변
역사교과서, 불편한 진실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국정교과서 반대, 시장의 자유경쟁은 이미 타살됐다

서울특별시 종로구 새문안로3길 30 세종로대우빌딩 복합동 508호  |  회사직통번호 : 02)6241-7700  |  팩스 : 02)6241-7708
정기간행물ㆍ등록번호 : 서울 아 00574 | 등록일.발행일 2008.5.8   |  발행인 : 이의춘 | 편집인·편집국장 : 민병오 | 청소년보호책임자:김사성
Copyright © 2013 미디어펜.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