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성공모델 본받아야…정경유착, 경제 살릴수도 죽일 수도 있는 양날의 검
정경유착 비판하면서 정경유착 강요한다?
- 반(反)기업정서와 박정희 지우기다 -

‘정경유착’을 써야 하나, ‘정경협력’(김인영 한림대 교수)을 써야 하나 망설였다. 용어의 뜻을 따르자면 정경협력이 바른 용어겠으나, 본 발제에서는 정경유착을 가치중립적 용어로서 다루기에 정경유착으로 통일하였다.

정경유착에 대한 비난과 분노는 현재진행형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구속영장이 법원에 의해 기각되면서 새해 벽두부터 ‘삼성공화국’이니 ‘대통령 위의 삼성’이니 하는 따위의 흰소리가 광장을 메우고 있다. 광장뿐만 아니다. 명색이 입법기관이라는 국회에서도 대기업 때리기가 유행하고 있다. 지난 청문회는 단적인 예다. 인터넷 댓글에서부터 광장의 촛불, 여의도의 국회에 이르기까지 대기업 비난에 모두가 열을 올리고 있다. 명분도 충분하다. 공정사회 구현! 여기엔 시대정신이란 포장도 달라붙는다.

이들의 비판과 논리는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대한민국 대기업(그들은 ‘재벌’이란 표현을 더 선호한다)은 박정희 군사독재정권과 유착하여 힘없는 노동자를 탄압하고 착취한 대가로 오늘날 대기업이 되었다. 이제 ‘민주정부’가 나서서 대기업을 징벌함으로써 이 땅에 정의를 구현시켜 달라. 친일파, 군사독재세력과 대기업의 정경유착 때문에 양극화된 한국 사회를 모두가 공평하게 잘 사는 공정한 나라로 만들어 달라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올 해 반드시 민주화 세력이 집권해야 한다는 말도 슬며시 끼워 넣는다. 물론 이는 다 거짓말이다. 산처럼 쌓아올린 거짓이다. 

본 발제에서는 먼저 정경유착에 대한 비판에 대해 그 타당성을 검증해보기로 한다. 그럼으로써 왜 정경유착에 대한 좌익세력의 비난이 허구인지가 드러날 것이다. 이어서 정경유착에 대한 비판과 함께 그에 대한 대안으로 제시하는 내용들이 얼마나 모순적인 것인지를 지적해보기로 한다. 미리 핵심을 말하자면, 정경유착 때문에 잘못된 것을 정경유착으로 해결하라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마지막으로 앞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정부-경제의 관계는 무엇인지를 생각해보기로 한다.

   
▲ 도를 넘은 관치금융, 기업경영에 대한 전 방위적 간섭 등 잘못된 관치경제가 문제인 것이지 정경유착 자체가 문제인 것은 아니다./사진=(좌)미디어펜,(우)연합뉴스


대한민국 정경유착의 진실

박정희 대통령 집권기의 경제발전을 평가절하하고 비난하는 자들은 국가의 불공정한 자원 배분, 노동자 착취, 이에 따른 경제적 불평등의 심화를 그 근거로 든다. 그리고 모든 문제의 원흉으로 정경유착이 지목된다. 그러나 사실은 이와 다르다.
 
첫째, 박정희 대통령 시기의 자원 배분은 매우 공정하였다. 산업화 초기, 국가가 자원 배분의 결정권을 쥐고 있던 때 제일 큰 관심사는 당연히 ‘누구에게 자원을 배분할 것인가’였다. 쉽게 말하면, 어떤 기업에게 더 많은 지원을 줄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이 문제였다. 박정희 대통령은 어떻게 지원할 기업을 선택하였는가?
 
지난 세미나에서 김인영 교수(한림대 정치학)가 지적하듯이 박정희 대통령 시기에는 오로지 ‘성과’를 기준으로 자원을 배분하였다.1) 수출을 많이 한 기업에게 차관을 지원해주고, 생산목표를 초과달성한 기업에게 융자를 더 많이 해주는 식으로. 이것이 공정한 것 아닌가. 친척이 운영하는 기업이라서, 같은 고향 사람이 하는 기업이라고 지원해준 게 아니었다. 그런데 대체 무엇이 불공정한 배분이라는 말씀인지.
 
모든 기업에게 균등하게 지원을 해주지 않고, 성과가 좋은 소수 기업에만 집중 지원해준 것이 불공정하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그렇게 안했다면 과연 지금의 경제발전이 가능했을까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세상만사 경쟁이 있는 곳엔 낙오자와 선택받는 자가 나뉠 수밖에 없다. 그게 싫어서 경쟁을 없애버리면 도달할 결과는 하향적 평준화다. 공산주의가 경험한 바로 그 길이다. 시장경제의 요체는 자유로운 경쟁이며, 박정희 대통령 시기의 국가는 아직 미생(未生)인 시장을 대신해 기업들을 경쟁하게 한 것뿐이다. 국가가 시장기구의 역할을 대신 수행해 준 것이다.
 
둘째, 노동자는 착취 받지 않았다. 최근 류석춘 교수(연세대 사회학)는 ‘전태일 평전’에 대한 실증적 검토를 통해 1960~70년대 노동착취가 허구임을 밝혀냈다.2) 전태일로 대표되는 당대의 노동자들은 비록 고된 노동과 열악한 작업환경에 노출되었을지언정 착취 받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착취’란 상식적으로 볼 때, 오늘이 어제보다 먹고살기 힘들고, 내일이 오늘보다 살기 어려워져야 성립할 수 있다. 그러나 박정희 대통령 시기의 노동자는 꾸준한 임금상승(물가상승률을 상회하는)을 경험했고, 오늘날 대다수가 중산층으로 계층 상승에 성공했다. 사실이 이럴 진데 어찌 착취라 할 수 있나? 착취란 가난했지만 열심히 일해서 현재 만족스런 삶을 누리고 있는 분들에 대한 모욕적 언사일 뿐이다.
 
셋째, 부(富)의 양극화는 박정희 경제발전 모델이 해체된 이후 심화되었다. 많은 사람들의 오해와 달리 현재 대한민국의 소득양극화나 빈부격차는 소위 ‘민주정부’ 10년 동안에 가장 심화되었다. 정규재 주필(한국경제신문)에 따르면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서 빈부격차가 확대되었고, 지니계수는 상승했다.3) 소득양극화를 잘 보여준다는 지니계수만 따져보면 놀랍게도 제5공화국 때가 가장 좋았다.
 
박정희 대통령 집권 초기에는 모두가 가난했기에 빈부격차라는 것이 의미가 없었고, 집권 후반기에는 경제성장에 따른 임금상승으로 빈부격차도 줄어드는 추세였다. 경제적 불평등의 심화는 박정희 대통령 시기 정경유착 때문이 아니라 박정희 모델을 급격히 해체한 좌익정부의 설익은 분배정책이 초래한 결과였다.

   
▲ 과거의 정경유착에서 성공한 요소는 받아들이고, 실패한 요소는 과감히 배제하는 슬기와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박정희 시대의 정경협력 모델을 연구하고 돌아봐야하는 이유다.

정경유착에 대한 해법은 또 다른 정경유착?

이상에서 살펴보았듯 정경유착에 대한 좌익세력의 비난은 근거가 없다. 더욱이 그들이 제시하는 대안이라는 것을 보면 “정말 이 사람들이 정경유착을 없애자는 사람들이 맞나?”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좌익진영에서는 정경유착 때문에 대기업에게 유리하도록 왜곡된 시장을 바로잡기 위해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를 위한 해법으로 ‘경제민주화’를 강력히 내세운다. 그러나 무언가 앞뒤가 안 맞는다는 생각이 드시지 않는가? 정부와 기업이 너무 친밀해서, 정부가 특정 기업에게 혜택을 골라줘서 문제라면서 그 해결책으로 정부가 기업 활동에 간섭하라고 하니 말이다. 정경유착을 정말 근절해야 될 악습이라고 본다면, 정부더러 경제에서 손 떼라고 말해야 맞는 것 아닐지.
 
소위 경제민주화라고 불리는 각종 법률과 정책들이 이런 모순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중소기업을 보호하고 육성하라는 것부터 생각해보자. 정부가 대기업은 제쳐두고 중소기업만 보호·육성한다면 그것도 차별적 혜택을 주는 것이 된다(사실 이미 수많은 중소기업 혜택이 존재한다). 그렇게 해서 만약 중소기업 가운데 몇몇이 대기업으로 일어섰다고 해보자. 그러면 그 기업은 또 정경유착 때문에 성공했다고 욕을 먹어야 하는 건가?

‘집밥 백선생’을 한 번 생각해보시라. 정부가 국민연금관리공단을 통해 기업경영에 적극 참여하라는 것도 앞뒤가 다르기는 마찬가지다. 정부가 기업의 주요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그만큼 정경유착을 강화하라는 말과 다를 바가 없다. 정부가 나서서 재벌을 해체하라느니, 삼성그룹의 지배구조를 개혁하라느니 하는 주장도 똑같다. 그런 행위 자체가 정치와 경제의 유착을 심화시키는 것이며, 정경유착이라 비난하는 것을 정경유착으로 해결하겠다는 모순에 불과하다. 

박정희 대통령이 경제성장을 위해 선택한 정경유착은 악(惡)이지만, ‘민주정부’가 경제민주화를 위해 행하는 정경유착은 선(善)이라는 해괴한 논리다. 진실은 오히려 반대다. 박정희 대통령은 경쟁과 기율(discipline)에 기초한 정경유착을 통해 세계사에 유래가 없는 경제발전을 이룩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는 원칙도 규율도 없는 정경유착으로 경제를 망쳐놓았다. 

대기업들로부터 수억 달러를 걷어 북한 김정일에게 가져다주고, 수익성이 불분명한 대북사업에 투자하도록 팔을 비틀고, 좌파 성향 시민단체에게 돈을 기부하도록 등을 떠 민 것이 이른바 민주정부 10년에 일어난 일이었다. 비난받아야 할 정경유착은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정경유착은 경제를 살릴 수도 있고, 경제를 죽일 수도 있다. 대한민국은 전자의 훌륭한 사례요, 남미와 아프리카의 독재국가들은 후자의 대표적 사례다. 박정희 정부의 성공은 전자의 모범사례요,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10년은 후자의 표본이다. 현재 좌익진영에서 박정희 대통령 시기의 정경유착을 비난하는 것은 결국 박정희 지우기를 위한 공작에 불과하다. 

도저히 박정희 대통령 시대 경제성장이란 업적을 부정할 수 없게 되자, 박정희 모델이 해체된 이후의 사례를 들어가면서까지 정경유착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다른 한 편으로는 뿌리 깊은 좌익적 편향, 반(反)기업·반(反)자본주의 정서가 자리 잡고 있다. 진작 망했어야 할 대한민국 경제를 계속 떠받치며 이끌어나가는 대기업이 좌익세력은 미워죽을 지경이다. 

어떻게든 대기업을 때려 부셔서 한국경제를 망가뜨리고 싶어 안달이다. 그래서 정경유착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며 오늘도 삼성 해체, 재벌 해체를 목이 터져라 외치고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성공을 부정하고픈 욕망에 들끓는 좌익세력의 ‘정경유착 선동’에 우리가 말려 들어서는 안 되는 이유다.

   
▲ 제3세계에 속한 후발 공업국가로서 중진공업국으로 발돋움하는 것이 목표였던 1960~70년대와 달리, 이제는 국민 소득 4만 달러, 5만 달러의 선진국을 목표로 새로운 정경협력 모델을 찾을 때다./사진=연합뉴스

이제 우리에게 더 이상 정경유착은 불필요한 유산인가

좌익들의 근거 없는 비판과 달리 자유주의자들이 말하는 정경유착 탈피는 경청해볼 여지가 충분하다. 자유주의 세력에서는 시장경제가 제대로 자리를 잡기 전에는 국가가 시장에 개입해 적극적인 역할을 할 필요가 있었지만(박정희 모델), 지금처럼 시장경제가 성숙기에 접어든 상황에서는 정부가 되도록 개입을 자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정부의 적극적 개입이 오히려 기업의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경제성장을 저해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김대중 정부 이후 20년을 돌아보건대 설득력이 있는 주장이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는 더 말할 필요도 없고, 이명박 정부도 경제정책은 ‘공정성장’이니 ‘동반성장’이니 하는 좌익적 구호를 내걸었다. 박근혜 정부도 ‘경제민주화’를 전면에 내걸고 출범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저성장의 고착화요, 2 % 성장이었다. 현실이 이러한데도 대선을 앞둔 정치권은 앞을 다퉈 ‘확실한 경제민주화’를 외치고 있다. 이럴 바에야 차라리 정부가 경제에서 완전히 손 떼는 것이 나아 보인다.
 
그러나 정경유착은 앞에 말했듯 가치중립적이다. 반드시 나쁜 결과를 초래하는 것도 아니고, 반드시 좋은 결과로 귀결되는 것도 아니다. 지금 벌어지는 일련의 경제적 실패는 정경유착의 유산을 잘못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도를 넘은 관치금융, 기업경영에 대한 전 방위적 간섭 등 잘못된 관치경제가 문제인 것이지 정경유착 자체가 문제인 것은 아니다. 선진국이라는 미국, 영국, 독일, 일본을 둘러봐도 어떤 정부도 경제에 대해 손을 놓고 있지는 않다. 사실 ‘산업정책’이나 ‘경제정책’이라는 것이 본질적으로 정경유착이 아니던가.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가 고민할 문제는 어떻게 변화된 환경에 맞게 박정희 시대의 정경유착(정경협력) 모델을 잘 변모시켜 활용하느냐 라고 생각한다. 제3세계에 속한 후발 공업국가로서 중진공업국으로 발돋움하는 것이 목표였던 1960~70년대와 달리, 이제는 국민 소득 4만 달러, 5만 달러의 선진국을 목표로 새로운 정경협력 모델을 찾을 때다. 이를 위해 과거의 정경유착에서 성공한 요소는 받아들이고, 실패한 요소는 과감히 배제하는 슬기와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박정희 시대의 정경협력 모델을 연구하고 돌아봐야하는 이유다. /이승수 연세대 대학원 언론학 석사과정


1) 김인영(2016. 1. 5.) 정경유착이냐, 정경협력이냐? -우리가 ‘정경협력’에 대해 착각하는 것들-(‘생각의 틀 깨기’ 연속세미나 제17차 발제문, 자유경제원).

2) 류석춘(2016. 12. 27.)  류석춘의 한국사회 읽기... ‘전태일 평전’의 3가지 함정(조선pub, http://pub.chosun.com/client/news/viw.asp?cate=C03&mcate=M1003&nNewsNumb=20161222430&nidx=22431); 류석춘(2017. 2.) 박정희가 노동자를 착취했다고?(월간조선).

3) 정규재(2017. 1. 31.) 대선후보들의 경제지력 너무 낮다 (한국경제신문); 정규재(2017. 1. 16.) 높은 자살률은 지옥의 증거? (한국경제신문); 정규재(2016. 12. 14.) 빈부격차, 또 속았죠? (정규재TV, https://www.youtube.com/watch?v=9WPwduxenf4).


(이 글은 자유경제원이 7일 주최한 ‘생각의 틀 깨기’ 청년편 제1차 『정경유착이냐 정경협력이냐:대한민국 경제성장은 정경협력으로 이루어졌다』 세미나에서 이승수 청년이 발표한 발제문 전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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