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국민적 성취 서술서 제외…찬반논란 보다 국민통합 지향해야
   
▲ 김광동 나라정책연구원장
새 역사 교과서에 기술된 박정희 시대
- 부정사관(否定史觀)으로 도배질 된 박정희 시대

박정희 시대에 대한 서술은 국민교육을 목적으로 한 교과서 서술로 보기 어렵다. 국민 모두가 함께 겪고 만들어간 변화와 성취에 대한 기록은 없이 당시 전개된 사건에 대한 평론(評論)으로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현행 검인정 역사교과서 체제는 김대중 정부에서 이해찬 교육부에 의해 기획되고 서중석 성균관대 교수 등이 주도하여 2002년 확정된 것이다. 이명박 정부에서의 부분적 보완에도 편향과 오류 논란 끝에 박근혜 정부는 단일한 국정 역사교과서를 만들어 교육하겠다고 결정했다. 

마침내 지난해 11월 교과서 시안이 공개되었고 수정과 보완작업이 진행 중에 있다. 교육부가 주관하여 만든 고등학교 역사교과서는 총 293페이지로 구성되어 있고, 그 중 대한민국 건국 이후 70년간의 대한민국 현대사에 대한 서술에 총 47페이지가 할애되어 있다. 

박정희 정부 시대(1961~79) 18년에 대한 서술은 9페이지 분량이며, 전체 현대사 분량의 5분의 1 수준이다. 대한민국 교과서임에도 불구하고 1948년 대한민국 건국(建國)이란 표현 대신 ‘수립(樹立)’이란 표현으로 에둘러 간 것도 문제이지만, 전반적으로 건국 이후 민족사적 변화와 근대 민주공화제 국가의 출범 의의를 서술하기에는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매우 부족했다고 보여진다.  

5·16: 사건 전개는 서술, 역사적 성격은 생략

박정희 정부 시대에 대한 기록은 두 파트로 나눠져 있다. 

첫째는 1961년도 5·16 혁명과 관련된 서술로 ‘4·19 혁명과 5·16 군사정변’이란 제목 하에 4·19와 장면 정부를 서술한 이후에 5·16에 대해선 한 페이지로 서술되어 있다. 5·16에 대한 기본서술은 “박정희를 중심으로 한 일부 군인들이 정변을 일으켜 주요 인사들을 체포하고, 방송국을 비롯한 주요 시설들을 장악하였다…. 사회적 혼란과 장면 정부의 무능, 공산화 위협 등을 정변의 명분으로 내세웠다”로 되어 있다. 

이와 함께, ‘탱크가 출동되는 군사정변’ 모습의 사진과 5·16 주도세력이 밝힌 ‘혁명 공약’에 대한 소개가 곁들여져 있다. 5·16을 계기로 펼쳐진 역사의 성격과 의의에 대한 서술은 없었고 단지 군사정변의 전개 과정을 묘사한 ‘체포’ 및 ‘장악’과 함께 ‘명분’을 내세워 집권했다는 것에 초점을 두고 있다.  

‘군사정변 주도세력은 헌법이 정한 절차에 의해 구성된 민주정부를 전복시키고, 군권으로 부당하게 권력을 잡았다.’(260p)

5·16은 분명 쿠데타이고 군사정변이다. 그러나 그것은 사건의 전개를 말하는 것이지 역사적 성격을 표현하는 것은 아니다. 5·16이란 사건으로 전개된 일련의 역사적 성격은 설명하지 않으면서 ‘체포’ ‘장악’ ‘민주정부 전복’이란 표현과 함께 ‘부당하게 권력’을 잡았다고 서술하고 있다. 

전개과정과 내용에 틀린 것은 없다. 그러나 5·16에 대한 악의적 판단을 강요하고 있다. 국민 기본교육에서 특정 사건의 전개과정을 그렇게 구체적으로 교육해야 하는가를 판단해야 한다. 역사적 성격과 의의를 배워야할 학생들에게 출발과 기원이 잘못된 것이고 정당성이 없다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5·16은 우리 민족의 역사에서 주요한 역사적 전기(轉機)가 된 사건이고 그 시점을 계기로 커다란 성공적 변화가 진행되었다면 그 사건이 갖는 의미와 전환적 계기가 설명되는 것이 맞다. 그럼에도 전개과정의 불법, 폭력과 부당성만을 교육하고자 하는 것은 정당한 서술체계라고 보기 어렵다.   

   
▲ 국정교과서에서 박정희 시대에 대한 서술은 국민교육을 목적으로 한 교과서 서술로 보기 어렵다. 국민 모두가 함께 겪고 만들어간 변화와 성취에 대한 기록은 없기 때문이다.


교과서적 서술이기보다는 사건에 대한 찬반 평론

박정희 시대에 대한 기술 중 나머지 8페이지가 할애된 둘째 파트는 박 대통령의 정치와 정책에 대한 논평과 공과(功過)에 대한 평가와 논평으로 채워져 있다. 18년간의 경제 사회적 변화와 대한민국의 위상 변화 및 국민 삶의 변화를 이해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제목부터 ‘냉전시기 권위주의 정치체제와 경제-사회발전’이라고 한 것에서 보듯 독재정치와 민주화 운동의 탄압 과정이었지만 경제 사회적 발전도 있었다는 식의 논평적 태도로 일관되어 있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교과서에 나타난 박정희 시대에 대한 서술은 국민교육을 목적으로 한 교과서 서술로 보기 어렵다. 국민 모두가 함께 겪고 만들어간 변화와 성취에 대한 기록은 없이 당시 전개된 사건에 대한 평론(評論)으로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국가사와 민족사를 관통하는 시대적 흐름과 함께 개별 사건을 엮어 역사적 조망을 할 수 있도록 했어야 했지만 전혀 그렇지 못했다. 

무엇보다 교과서적 서술로서는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기본적 판단과 객관적 서술을 피하고 시종일관 이중적 서술태도를 취했다는 점이다. 전개되는 사건에 대한 공과 과에 대한 평가를 다는 식이었고, 당시 전개된 사실과 변화, 그대로를 서술하는 대신 ‘실제’와 ‘명분’을 분리하는, 듣도 보도 못한 서술방식을 반복하였다. 한 예를 보면 다음과 같다. 

- ‘국가안보를 명분으로 대통령의 권력을 강화한 독재체제였다.’(265p, 이하 강조 필자)
- ‘국가안보와 경제개발을 명분으로…. 개헌안을 제출하였다.’(265p)
- ‘국가안전보장을 명분으로 중앙정보부를 창설하였다,’(261p)
- ‘경제발전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노동운동을 억압하였다.’(269p) 

몇 페이지 안 되는 교과서술에 모든 것은 ‘명분’이 있었고 ‘실제’가 따로 있었다는 식이다. 역사교과서 서술체계를 받아들인다면 국가안보와 경제개발 등은 모두 독재와 개헌 및 노동운동 등을 탄압하기 위한 명분이자 수단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전 세계 어느 나라의 교과서에도 없는 서술방식이다. 

불과 9페이지 분량의 서술에 ‘명분을 내세워 무엇을 했다’는 식의 서술이 반복되고 있다. 업적에 해당되는 것은 내 건 ‘명분’일 뿐이고 실제는 독재와 탄압 및 억압체제를 만들었다는 논리의 서술체계다. 

사실, 북한 전체주의가 대한민국 역사를 서술하는 전형적인 기본체계가 바로 한국에서 일어난 업적들은 모두 다른 목적을 위한 수단이자 도구였을 뿐이었다는 비난이다. 객관적 성취에 대한 서술을 회피하며 본질적 역사변화는 없었고, 모든 것은 잘못된 것이었다는 결론을 가기위해 ‘명분’만 있었다는 식의 부정사관(否定史觀)이 그것이다. 

교과서는 보편적 국민의 삶을 기록하고 시대 변화를 기록하는 것이다. 그러나 국정교과서까지도 대통령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가 중심 초점으로 되어 있다. 그러다보니 객관적 사실보다는 주관적 평가와 함께 명분과 실제가 달랐다는 식의 책임 회피적 서술방법이 반복되고 있다. 또 그런 결과로 공(功)과 과(過)에 대한 서술 분량도 비슷하게 나열되어 있다. 

국민 기본교육을 위한 교과서임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은 명분과 실제를 분리해서 이해하도록 만든 것이다. 교과서는 국민 기본교육을 위한 것이기에 특정 시기와 특정 대통령에 대해 공과 과를 별도로 나누어 기술해야 할 이유도 없다. 

   
▲ 4.19나 5.16에는 모두 민족주의에 대한 강렬한 열망이 반영됐다. 4.19나 5.16 이후 박정희 체제 모두는 그것을 대변했던 것이다./사진=미디어펜

모두가 나서 이룬 성취와 역동성을 담지 못했다

만약, 모택동의 문화대혁명과 독재, 혹은 스탈린의 전체주의와 학살과 같이 역사적으로 커다란 과오가 있었다면 그것은 명확히 지적하고 넘어가야 하지만 공과 과, 명분과 실제를 병렬하는 서술방식은 대한민국 70년 역사서술체계로는 매우 위험하고, 매우 잘못된 것이다. 과연, 왜 그렇게 되었는가를 살펴보며 전체적으로 역사를 조망하는 기본 틀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국가와 국민의 시대사에 대한 기본서술이 거의 없다. 

첫째, 1961~1979년은 우리 민족사에서 가장 역동적 시기였고 민족의 삶의 구조와 질이 근본적으로 변화하던 시기였다는 것은 너무도 명확했다. 우리 민족사 전체를 보거나, 세계사를 보더라도 전무후무한 기록임을 누구도 부정하지 못한다. 

예를 들면 박정희 정부가 안정되기 시작한 1966~1975년은 연평균 11%의 경제성장으로 민족사에 가장 빛나는 성공적 변화가 진행되던 시기였다. 그러나 산업화, 이농(離農)현상과 도시화, 농촌변화 등 보편적 국민 삶의 근본적 변화와 역동성을 이해하도록 서술된 부분은 어디에도 없다. 

흔히 알려진 바대로, 수출주도의 경제정책을 펼쳤다는 것과 중화학공업 육성정책으로 수출이 연 40%씩 증가하며 100억 달러의 수출 목표를 달성했다는 수준의 서술에 머무르고 있다. 몇몇 팩트(fact)를 나열할 뿐, 역사적 변동과 역동성이 상실되어 있다. 

역사교과서가 서술해야 할 것은 국민들의 삶의 변화와 발전이고, 함께 이뤄낸 집단적 업적이다. 특정 대통령을 영웅화할 필요도 없고, 그 지도자에 대한 평가를 서술할 필요도 없다. 국민들은 박정희 정부의 정당성이나 업적의 공과를 평가할 줄 알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당대에 전개된 사실을 역사적 조망에 따라 이해하는 것이었지만 그렇지 못했다.

둘째, 교과서의 서술은 공산주의의 위협과 냉전, 그리고 북한의 군사도발을 막아내며 사회 안정과 경제발전이란 성공시대를 만들어내는 과정에 대한 이해를 전혀 할 수 없게 만들었다. 기존 검인정 역사교과서와 차이가 없다. 

1960, 70년대는 민족주의와 반공주의에 대한 민족적 결의가 다져지며 독일이나 일본이 했듯 ‘우리도 한번 해보자’던 시대였다. 그렇다면 당시 있던 그대로, 공산주의의 도전과 위협, 방어와 안정화 노력에 대한 국민들의 헌신과 노력이 기술되는 것이 맞다. 그런데 교과서는 당시 방공, 방첩이 얼마나 중요했던 것인지를 조금도 정립하지 않고 있다. 군사력 강화와 안보국방이 얼마나 중요했었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무시하고 그런 일상적인 위기가 없어지고 대북 우위가 확고해진 현재의 시점에서 당시 역사를 서술한 격이다. 

그것은 마치 이승만 시대에 민주주의를 쉽게 할 수 있었고 조건도 갖추어져 있었는데 이승만이 민주주의를 지키지 않아 민주주의가 성숙이 되지 못했던 것으로 서술하는 방식과 마찬가지의 우를 범하고 있다. 적어도 1980년대 이전까지는 한국이 공산주의로 끌려들어 가지 않는 것이 당면한 국민적 과제였다. 그랬기에 다들 전쟁에도 나갔고, 몇 년씩 군대도 갔고, 예비군 생활도 했다. 그 결과 경제 산업적으로나 군사 안보적으로 위기를 극복해 낼 수 있었고, 이제는 그런 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렇다면 국민 모두가 나서서 성취한 그 기록을 담아내는 것이 맞지만 그런 시각은 전혀 없다. 박정희 정부도 반공 우선으로 공산 전체주의를 막는데 기여했고 성공시켜냈지만 교과서는 안보와 반공을 명분으로 “정권을 유지”했다거나 “독재체제”를 만들고 “탄압”에 나섰다는 서술만을 짧은 지면에서 반복할 뿐이다. 

김신조의 청와대 인근 침투와 울진 삼척 지역의 무장공비 출현을 거론하며 안보위기가 있었다는 서술(263~264p)은 나열하면서도, 공산 전체주의로 맞서서 그런 체제로 가지 않게 만든 역사적 성취와, 그 결과로 사회 안정과 경제발전의 토대가 되었다는 근본적 평가는 전혀 없다. 그러다보니 결론은 “반공을 강조하며 정권을 유지하던 박정희 정부”(256p)라는 식의 서술로 박정희 정부는 안보를 명분으로 독재체제를 만들었다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 1960, 70년대는 민족주의와 반공주의에 대한 민족적 결의가 다져지며 독일이나 일본이 했듯 ‘우리도 한번 해보자’던 시대였다. 그렇다면 당시 있던 그대로, 공산주의의 도전과 위협, 방어와 안정화 노력에 대한 국민들의 헌신과 노력이 기술되는 것이 맞다./사진=미디어펜

민족주의 열망과 반공의 역사적 의의를 담지 못했다
   
세 번째로는, 교과서의 서술에 1960년대 이후 20년간 펼쳐졌던 민족주의와 국가위상의 제고라는 민족적 염원과 바램에 대한 시대사적 이해가 전혀 반영되지 않고 있다. 4·19나 5·16에는 모두 민족주의에 대한 강렬한 열망이 반영된 것이었다. 4·19나 5·16 이후 박정희 체제 모두는 그것을 대변했던 것이다. 

1945년 독립 전까지는 ‘독립 민족주의’가 있었다면, 적어도 1960년대 이후에는 근대국가를 만들자는 ‘번영 민족주의’였다. 4·19 선언문을 봐도 그렇고, 5·16 혁명공약을 봐도 그렇다. 가난 극복과 민족 번영에 대한 열망이 반영되어 있었고 그것은 당시 정치 리더십이 구현해야 할 최대 과제였다. 

5·16 혁명공약도 ‘기아’를 극복하고 ‘민족통일’을 만들 실력을 갖추겠다고 했다. 연이어 ‘민족 근대화’와 ‘민족중흥’이란 과제 앞에 모두가 나섰고, ‘민족중흥’ 의식이 반영된 <국민교육헌장>을 함께 공유했다. 근대화되고 번영된 민족국가를 만들자는 것은 옳든, 그르든 우리의 삶의 모습이었다. 그렇다면 교과서는 그런 가난 극복과 민족웅비를 내용으로 하는 민족주의 실현과 관련하여 시도와 성취를 담아냈어야 했지만 찾을 수 없다.

넷째, 한국 민주주의의 성숙이란 문제는 결코 박정희라는 지도자에 책임지울 수 없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몇 백 년에 걸쳐 시행착오와 훈련을 거쳐 성숙되는 것이지 특정 지도자가 민주주의를 하고 싶다고 해서 할 수 있고, 하지 않고 싶다고 해서 거둬들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1961년이면 민주공화체제가 들어선지 불과 11년의 걸음마 단계였고, 더구나 400만 이상이 살상된 6·25전쟁이 종결된 지도 불과 7년 밖에 되지 않는 시점이었다. 그런데도 성숙한 민주주의가 실현되지 못하고 권위적 정치체제의 책임을 박정희 정부에 묻는 식의 서술이 교과서의 서술방식이다. 그렇기에 민주주의에 대한 발전과정을 보지 않고 안보를 정권 유지로 이용했다는 식의 서술을 반복하고 있다. 

무엇보다 안보 위기와 관련된 이해방식 자체도 모순적이다. 안보 문제와 관련하여 육영수 여사 피살, 남침용 땅굴 발견과 같은 안보 위기를 말하며 안보 국방의 강화체제를 서술하면서도, 다시 다른 곳에서는 “냉전이 완화되어”가는 상황에서도 반공을 강조하여 정권을 유지했다고 서술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유신체제(1972~1979)의 문제점에 대한 지적과 반(反)유신 민주화운동에 대한 서술이 지나치게 많다. 독재체제란 표현(266p)과 탄압하고 억압했다는 서술은 습관적으로 반복된다. 보편적 노동자의 삶에 나타난 거대한 변화를 기록한 부분은 일체 없고, 대신 부분적으로 있었던 탄압문제를 교과서는 과대하여 서술하는 방식이다. 

아래의 몇몇 예만 보더라도, 반복되는 ‘탄압’ 관련 서술을 보면 당대에 진행된 거대한 국가적 변화와 삶의 질의 변화는 없고, 마치 전체주의나 파시즘과 같은 탄압만 자행된 시대처럼 교유될 수밖에 없어 보인다.
 
- ‘정부와 기업인들은 경제발전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노동운동을 억압하였다.’(269p)
- ‘노동자들의 단체행동은 불법으로 탄압받는 경우가 많았다.’(269p)
- ‘반유신 민주화운동이 지속적으로 일어났고 박정희 정부는 이를 탄압하였다.’(265p)
-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시위대를 탄압하였다.’(263p)

교과서는 국민 보편적 삶에 대한 기록이다. 굳이 박정희 정부와 대통령을 평가하는데 초점을 맞출 이유도 없다. 구로공단, 마산 수출자유지역 혹은 구미 전자산업단지와 창원기계공단의 근로자가 역사의 주역이다. 그런 근로자들의 노력과 희생으로 산업 발전도 있었고 대학 교육도 가능했지만 그런 보편적 근로자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YH 무역회사의 농성사건은 부각되어 기록되어 있다. 

당시에는 국민 모두가 연탄을 땠고, 연탄을 만들기 위한 석탄 공급과 석탄 캐는 광부의 희생은 없고 시위와 관련된 광주대단지 사건(1971)과 전태일 분신, 혹은 환경운동단체의 활동은 서술하고 있다. 보편적 삶은 없고, 시위 및 저항과 관련된 특수한 사건을 상세하고 구체화되어 있는 것이다. 

또한 박정희 정부와 관련된 불과 몇 페이지의 분량에 김대중의 활동에 대한 사항이 3번에 걸쳐 등장한다. 달리 말하면 박정희 시대와 관련된 국민의 삶과 역동적 변화, 그리고 그 의의를 담아내지 않고 교과서는 민주화 투쟁을 중심에 놓고 곳곳에서 반영시키고 있다. 고등학생들이 연탄과 석탄은 모르고, YH 사건과 민청학련 혹은 인민혁명당 사건 등을 이해해야 하는지가 의문이다.

   
▲ 적어도 1980년대 이전까지는 한국이 공산주의로 끌려들어 가지 않는 것이 당면한 국민적 과제였다. 그랬기에 다들 전쟁에도 나갔고, 몇 년씩 군대도 갔고, 예비군 생활도 했다. 그 결과 경제 산업적으로나 군사 안보적으로 위기를 극복해 낼 수 있었다./사진=미디어펜

교과서가 국민통합보다는 찬반논란으로 이끈다 

특별히 지적되어야 할 것은 역사교과서가 국민통합보다는 사회적 논란을 끌어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특정 사건에 대한 공과 과를 분리 서술함으로서 시대에 대한 이해와 국가적 성취에 대한 공유를 기반으로 미래를 준비하는 기본 교육적 과제를 실현하지 못하는 교과서가 되었다. 논란이 되는 관점을 나열시켜 교사의 선호에 따라 강조하도록 만듦으로써 국민 기본교육이 아닌 부정(否定)과 과(過)에 대한 분노를 불러일으키는데 집중하는 방식이다. 그런 면에서 국민 통합적 교과서로 보기는 힘들다.

예를 들면 한-일 국교 수립도 매우 역사적 의의가 있는 것이고 국가안정과 산업발전에 도움이 된 것이다. 1945년부터 일본과 국교를 수립하던 1965년까지 한국은 유라시아 대륙의 극동지역에 철저하게 고립된 나라였다. 공산체제를 걷는 나라들에 둘러싸여 있었다. 따라서 유일하게 공산국가가 아닌 일본과의 수교는 필수적인 것이었고 한국의 경제 산업적 발전과 반공체제 확립, 그리고 전 세계 문명사회와의 긴밀한 관계형성을 위해서도 절박한 것이었다. 

그런데도 교과서는 전후 일본과 국교 정상화를 했던 것을 “경제개발을 위한 자금 마련을 위해”라고 서술한 것은 한-일 국교 정상화의 의미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도록 한다. 그렇다보니 ‘굴욕적 정상회담’에 대한 반대가 많았고 시위대를 탄압했다는 것, 한-일간에 “과거에 대한 반성과 청산은 미흡”했다는 서술로 채워져 있는 것이다.   

전반적으로 박정희 시대를 기술하며 정부의 정당성과 정부 정책에 대한 평론적 서술이 주를 이루고 있다. 과연 고등학교 학생들이 5·16의 정당성과 유신체제의 정당성, 새마을운동이나 한-일 국교 수교 등에 대해 그렇게 상세하게 찬반을 나눠가며 이해해야 할 사안인가 하는 점이다. 

대학 내지 대학원에 가서 비판적이고 성숙된 시각을 갖게 될 때 진전시켜야 할 연구 과제를 기본역사교육에서 비판적으로 이해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만약 박정희 시대에 대한 서술이 그렇다면 4·19나 5·18 사건 혹은 민주화운동과 관련된 내용들도 모두 공과 과, 혹은 찬반 양론적 비판적 이해방식을 도입했어야 했다. 그러나 저항과 시위 등과 관련된 사건에는 결코 긍정과 부정의 양론적 입장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박정희 평가보다는 그 시대의 삶과 성취가 반영되어야 한다

결론적으로 교육부 주도의 역사 교과서의 기술방식은 잔뜩 겁에 질려 기술내용에 대한 비판을 면하는데 맞춰 서술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면, 새마을운동을 짧게 설명하면서도 “유신체제 유지에 이용되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라는 서술이 그것이고, 중화학공업의 육성과정을 서술하면서 대기업에 의해 “경제력 집중이 심화되었고 정경유착의 문제가 발행하기도 했다”는 식의 서술 등이 그런 예다. 

학생들에 대한 역사교육이란 새마을운동이나 중화학공업의 성공 등은 한국의 농촌사회를 변화시키고 세계적인 농촌 발전 및 경제성장 모델이 되었다면 그것이 갖는 역사적 평가로 종결된 사안이지 굳이 유신체제와 정경유착 등과 연계시켜 비판되어야 할 사안이 아니다. 새마을운동이 무엇이고 그에 따라 우리 농촌사회가 어떻게 변화했는지와 중화학공업의 성공으로 한국경제의 위상과 국민 삶이 얼마나 달라졌는지에 대해서만 입체적으로 이해하도록 하면 되는 것이지만 그렇지 못했다.  

물론 기존 검인정 교과서보다 개선된 내용임에는 틀림없다. 참여한 학자 분들은 심한 압박과 신변 위협까지 받았다는 점에서 용기의 산물이기도 하다. 특히 현대사에 대한 기존의 연구 성과가 극히 적고, 대부분의 기존 연구는 대한민국을 부정적으로 서술하거나 북한의 대남 선전 차원에서 나온 선전선동 내용들이 범람하는 상황에서 이를 극복하려는 노력이 반영된 것도 사실이다. 

내용적으로도 한국의 산이 현재처럼 녹화되는 과정에 대한 설명이 구체적으로 들어가 있는 것도 진일보한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이 박태준과 함께 포항제철(POSCO) 용광로 준공식에 참석한 모습이나, 유한양행의 유일한, 삼성의 이병철 및 현대의 정주영과 같은 기업가들이 소개된 것도 분명 개선된 것이다. 

그렇지만 교과서의 기본 서술체계와 역사적 사건에 대한 성격을 서술하는데 있어서 근본적 차이는 거의 없다는 점은 분명 지적되어야 한다. 국가와 국민적 성취를 서술하지 않고 비판적 일부가 제기하는 사안에 긍정과 부정을 병렬시키는 ‘교과서 같지 않은 교과서’라는 사실을 지적하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국력을 결집하여 만든 교과서 치고는 너무도 빈약하고 허술하다. 갈 길도 멀고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고 보인다. /김광동 나라정책연구원장


(이 글은 박정희 대통령 서거 37주기 및 탄생 100돌을 맞아 박정희기념재단이 2017년 창간한 '박정희정신'에 게재된 글입니다. '박정희정신-미래 100년 박정희에게 길을 묻다'라는 주제하에 김광동 나라정책연구원장이 쓴 '새 역사 교과서에 기술된 박정희 시대 - 부정사관(否定史觀)으로 도배질 된 박정희 시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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