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술적 집단주의가 조장한 탄핵정국…"사실보도 외면한 언론 때문"
   
▲ 조우현 자유경제원 자유사회실장
언론이 사실을 보도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렇게 됐다

감성만으론 세상이 발전하지 않는다. 세상을 이끄는 사람들이 감성을 접어두고 이성적인 사고를 해야 하는 이유다. 그러나 본분을 망각한 정치와 언론은 감성만 앞세워 대한민국을 분노의 장으로 만들었다. 가깝게는 탄핵정국, 사드 괴담이 그랬고 멀게는 광우병 파동이 있었다. 이 사건 모두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로 둔갑시키고, 온갖 괴담에 가담하며 국민의 감성영역을 극대화 시킨 것들이다. 

감성적인 마음이 집단화 되면 어마어마한 힘을 발휘한다. 법적 근거 없이 대통령의 직무를 정지 시키고, ‘국민’의 명령이랍시고 바쁜 기업인들을 불러내 호통 친다. 그것이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는 중요치 않다. 그저 집단적 환호를 자아내고, 그 환호에 힘입어 대기업 총수의 팔에 포승줄을 묶었다. 이의를 제기하면 ‘마녀사냥’만 돌아올 뿐이니 바른 소리 할 분위기도 아니다. 무언가에 홀린 듯하다. 

먹는 즉시 사망이라던 미국산 소고기, ‘뇌송송 구멍탁’이라 불리었던 그 소고기로 만든 햄버거를 맛있게 먹는 것도 사실 무서운 현상이다. 고등학생까지 ‘MB아웃’ 촛불을 들게 했던 광우병 사건이 몇 해 전 일이다. 그 큰일을 치르고도 당시 분위기를 주도했던 언론, 그것을 믿었던 소비자 등 누구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 그저 줄 서서 기다렸다 맛있게 먹는다. 그 소고기와 이 소고기는 다르다고 여기는 걸까. 무언가에 홀린 것이 아니라면 참으로 기이한 풍경이다.

   
▲ 탄핵정국은 언론에 의해 확대 재생산 됐다. 오죽하면 대통령 변호인단 김평우 변호사가 "쓰레기 언론들이 사실을 보도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된 거"라고 했을까./사진=연합뉴스


그것을 주술적 집단주의라 한다

이와 비슷한 것들을 나열하자면 끝도 없다. 바다에서 일어난 안전사고가 대통령의 음모로 포장되고, 맛있는 성주참외가 ‘사드참외’라는 독특한 수식어를 얻으며 대통령을 원망하고, 북한이 침몰시킨 천안함은 미국이 그랬다는 집단적 음모로 재탄생했다. 이 기이한 현상을 새롭게 정의한 용어가 바로 ‘주술적 집단주의’다. 이것은 모두 비전문가들에 의해 비과학적으로 생성되고 비이성적으로 퍼져 나갔다.  

비과학적이지만 치밀하게 기획된 이 현상은 기득권에 대한 불신, 기업총수에 대한 미움도 만들었다. ‘양극화’란 용어가 대표적이다. 양극화는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를 나누고, ‘우리’가 가난한 이유는 부자 때문이라는 핑계를 대는데, 이것은 배 아픔의 정서를 이용한 대표적인 주술적 집단주의다. 이 감성을 이용해 표를 얻는 정치인의 역사도 대한민국 역사와 궤를 같이 한다. 오래된 현상이란 뜻이다.

사례는 다르지만 위에 언급한 사건의 패턴은 대체로 비슷하다. 누군가를 마녀로 만들고, 모든 것을 마녀 탓으로 돌린다. 명백한 과학적 근거가 있음에도, 그것은 귀담아 듣지 않고 감성만 건드린다. 이에 동조하면 영웅이 되지만 조금만 다른 의견을 말하면 표적이 된다. 모두 다 맞다고 할 때 덩달아 맞다고 하는 것은 소신이 아님에도 이상한 개념의 ‘소신’이 그들끼린 통하는 모양이다.

이토록 터무니없는 일이 가능한 이유는 ‘개인’보단 ‘집단’을 선호하는 성향, 아닌 것도 맞는 것처럼 만드는 집단주의 특성 때문이다. ‘공동체’, ‘집단’, ‘우리’에 익숙한 한국인에게 ‘개인’이란 말은 어쩐지 어색하다. 게다가 시스템으로 움직이는 집단의 거짓 프로파간다를 이길 개인 역시 세상에 거의 없다. 때문에 말도 안 되는 주술이 가능하고, 속는 사람이 매번 나오는 것이다.

   
▲ 언론의 힘은 막강하다. 그들의 편협함이 꾸준히 제기 되어 오고 있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언론을 믿는다. 특히 1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조중동이라는 매체는 의심 없이 받아들인다./사진=미디어펜

개천절은 믿고 건국절은 안 믿는 이상한 현상

100일 동안 마늘과 쑥만 먹고 사람이 된 곰이 있다. 그 곰이 낳은 자식이 우리 민족의 시조 단군할아버지다. 매년 10월 3일 개천절이면 이와 관련된 전래동화가 TV에 방영된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지만 많은 어린이들이 이날을 기념하며 자랑스러워한다. 이걸 가르쳐준 사람들은 어른이다.

반면 대한민국 건국일인 1948년 8월 15일은 여지껏 논란의 대상이다. 대한민국 건국이야말로 여지없는 사실인 것이 역사적으로 증명이 되었음에도 좌익운동권을 필두로 한 정치인은 이것을 부정한다. 그야말로 ‘신화’인 전래동화는 믿으면서 과학적으로 증명된 건국절을 믿지 않는 습성도 주술적 집단주의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주술적 집단주의를 조장하는 언론

문제는 ‘주술적 집단주의’의 중심에 언론이 있다는 점이다. 언론의 힘은 막강하다. 그들의 편협함이 꾸준히 제기 되어 오고 있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언론을 믿는다. 특히 1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조중동이라는 매체, 공영방송 KBS가 하는 말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해 의심 없이 받아들인다. 예단하긴 어렵지만 대다수의 국민이 국회의 탄핵소추장을 읽지 않고 언론이 보여준 것을 그대로 믿었을 것이다. 

알만 한 사람은 알겠지만 모르는 사람들은 끝까지 모른다. 이번 탄핵 정국이 비전문가들에 의해 비과학적으로 생성되고 비이성적으로 퍼진 주술적 소문 때문이라는 것, 이 모든 게 언론에 의해 확대 재생산 됐다는 것을. 오죽하면 대통령 변호인단으로 참여한 김평우 변호사가 “쓰레기 언론들이 사실을 보도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된 거”라고 했을까. 김평우 변호사가 덧붙인 말은 지금의 언론이 얼마나 타락했는지 보여준다. “양측의 의견을 똑같이 보도하는 게 언론이야. 당신들은 지금까지 한 번도 그렇게 한 적이 없어.”

반론의 여지가 없다. 김평우 변호사의 지적대로 한국 언론의 집단적 오류는 치명적이다. 탄핵 찬성 집단은 국민이 자발적으로 모인 촛불집회고, 탄핵 반대 집회는 박사모가 주최한 태극기 집회라 명한다. 백만 촛불 이백만 촛불 운운하더니, 태극기 집회 인원이 촛불을 넘어서자 더 이상 숫자를 세지 않는다. 숫자는 중요치 않다는 이유에서다. 최근엔 촛불집회엔 사람이 많은 것처럼 앵글을 잡고, 태극기 집회엔 사람이 별로 없는 것처럼 연출해 비난을 받았다.

비단 이번 사건 뿐 아니라 몇 달 전 미국 대선 보도에서도 언론의 오류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미친 트럼프’가 대통령이 될 리 없다”던 언론들은 트럼프가 승리하자 미국 국민성을 탓한다. 자신들의 잘못은 돌아보지 않고 미국 국민들을 통째로 바보로 만든 것이다. 총리후보자의 발언을 제멋대로 짜깁기해 국민들의 반발을 집결시키고, 그에 대한 아무런 처벌이 없는 것 역시 특이한 일이다. 

그들에게 ‘언론의 기초’라는 개념이 있는 걸까. 허위 사실로 집단적 분노를 자아내 얻고 싶은 것이 그들만의 기득권일까, 체제전복일까. 한심하고 무섭다. 명분은 서민, 소수, 약자의 편에 선다는 것이지만 그것은 위선이다. 진정으로 약자를 위한다면 그렇게 해선 안 된다. 사실에 입각하지 않은 ‘카더라’성 기사로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린다면, 경제발전은커녕 망국으로 가게 될지도 모른다. 주술적 집단주의, 이를 조장하는 언론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다. /조우현 자유경제원 자유사회실장

   
▲ 김평우 변호사가 덧붙인 말은 지금의 언론이 얼마나 타락했는지 보여준다. "양측의 의견을 똑같이 보도하는 게 언론이야. 당신들은 지금까지 한 번도 그렇게 한 적이 없어."/사진=미디어펜

(이 글은 8일 자유경제원이 주최한 ‘결국은 경제다! 경제살리기’ 연속세미나 3차 『주술적 집단의식이 경제를 망친다』에서 조우현 자유경제원 자유사회실장이 발표한 토론문 전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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