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적인 '국정농단' 프레임…표적수사·선동 언론·군중심리 합작
최순실의 국정농단? 우리들의 어그러진 민주주의

수십 년 전의 일이 아니다. 지금으로부터 불과 9년 전이었다. 광우병이라는 미신에 사로잡힌 77만의 시민들이 거리로 나와 촛불을 들었다. ‘우리들은 옳다’며 거대 악에 맞서 싸우던 이 십자군은 자신들을 비판하는 사람들을 악으로 몰아세웠다. ‘우리’의 생각과 다른 목소리는 금기시 되었다.

감히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인간은 이명박 정권의 하수인으로, 국정원의 아르바이트로, 양심불량의 기득권으로 매도당했다. 그렇게 정의로운 촛불들이 모여 만든 불길이 휩쓸고 가자 2조에 달하는 사회적 손실이 발생했다. 

광우병 이후 8년의 시간이 흐른 2016년 가을. 우리가 과연 광우병 선동으로부터 뼈아픈 교훈을 배웠는지 여부를 가르는 시험대가 왔다.(이번 광화문 촛불시위를 주도한 53개 단체 중 23개 단체가 2008년 광우병 촛불집회 참여단체이며 2개 단체는 이적단체이다).

소위 최순실의 국정농단(國政農壇) 사태이다. 먼저 국정농단이란 무엇인가? ‘국정’은 글자 그대로 ‘나라정치’란 뜻이고, ‘농단’은 ‘이익이나 권리를 독차지한다’는 즉, ‘독점’이란 뜻이다. 국정농단은 나라의 이익과 권리를 독점하였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 국정농단이라는 단어는 대한민국 법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다. 국정농단은 조선의 법전인 《경국대전》에도 없는 죄명이다. 조선의 당쟁정치가 만들어낸 ‘탄핵용어’이다.

우리나라 조선시대 궁중 사극을 보면 패턴이 있다. 우선 어느 당파에서 음모, 모략꾼이 상대 당(黨) 영감의 하인이나 식객을 돈으로 매수하거나 약점을 잡아 대감이나 측근의 비리나 부정을 캔다. 그 비리와 부정의 전모를 사실 그대로 말하면 이야기가 길어져 어리석은 임금은 듣기 싫어한다. 아주 간단하게 몇 마디로 요약한다. 이럴 때 제일 흔히 쓴 단어가 바로 ‘국정농단’이다.

   
▲ 박근혜 대통령 탄핵 소추. 국민 다수는 아직도 언론이 부추기는 대로 대통령이 하야해야 할 어마어마한 범죄나 위법이 있다고 믿는다./사진=연합뉴스


당시 조선의 주권은 임금에게 있었다. 신하들은 임금의 권력의 일부를 빌려서 잠시 행사하는 것이다. 그런데 신하가 권력을 독점했으니 임금을 무시하고 능멸한 것이다. 임금은 국정농단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믿었던 신하에게 발등을 찍혔다는 배신감에서 부르르 떨게 된다. 신하들도 특정 대감이 나라의 이익과 권력을 독식했다니 경위야 어떻든 모두 기분이 나쁘다.

그래서 상대방을 국정농단이라는 죄 아닌 죄로 몰면 백전백승이다. 법을 떠나 감정으로 싸우는 한국인의 기질에 딱 맞는다. 이제 주권은 대한민국 국민[임금]들에게로 이양되었다. 2016년 가을, 조선의 역사에서 권력 찬탈의 비결(?)을 깨달은 정치인들과 언론들은 하나 같이 입을 맞춘다. 국정농단. 국민[임금]은 분노에 몸을 부르르 떤다.

광우병 때도 그랬고 지금도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적 프레임에 맞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것은 마녀사냥으로 이어진다. 아니 감히 국정농단의 대역 죄인인 최순실과 박근혜를 누가 두둔할 수 있단 말인가?! 그 역시 모 의원의 말처럼 ‘촛불에 타죽어야 할 최순실의 부역자’가 된다. 이런 상황에서 선악이 명료한 이 프레임에서 벗어나 자기 머리로 생각할 수 있는 ‘지식인’은 그야말로 극소수에 불과하다.

작년 11월 신문의 칼럼리스트, 교수, 변호사단체 등 사회 지도층들 모두가 이 사태를 지켜보면서 최순실 게이트가 너무 커 하야가 당연하다고 전제하고 있다. 그러나 그 누구도 대통령의 하야가 헌법상 무슨 의미가 있는지 깊이 분석하는 사람은 없다. 최순실의 국정농단을 운운하면서 국정농단이 법리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지 살펴보는 법조인도 없다.

변호사 단체의 성명이라는 것도 헌법적 논리가 없다. ‘실정(失政)-국민의 실망(失望)’이 헌법상의 대통령 퇴임사유인가? 법치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대한민국은 결코 법으로 운영되지 않고 있다. 엄중한 법리적 사실이 아니라 국민의 정서라는 모래성이 대한민국 사회를 지탱하고 있다. 

9년이 지났다. 과거 광우병 사태와 똑같이 선과 악이라는 단순한 이분법적 구도가 이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을 비판하는 자는 곧바로 소신있는 자요 정의를 아는 자들이다.(정의를 아는 자 중에서는 김일성을 추종하는 주체사상(主體思想)파(주사파)도 있다. <이게 나라냐>를 작사 작곡한 윤민석이다.

그는 김일성을 위한 “(김일성) 수령님께 드리는 충성의 노래”, “김일성 대원수는 인류의 태양”을 작사 작곡했다. <이게 나라냐> 곡의 가사의 1절은 다음과 같다. “이게 나라냐 이게 나라냐 근혜 순실 명박 도둑 간신의 소굴 범죄자 천국 서민은 지옥 이제 더는 참을 수 없다”) 그러나 저 정의의 사도들의 눈에, 이들을 옹호하는 듯한 발언을 하는 자들은 대역 죄인을 두둔하는 악한 부역 세력으로 내몰린다.

또한 지금 이 사회는 여전히 민주주의를 위시(爲始)한 전체주의(totalitarianism)에 가깝다. 다수와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그 사람을 나쁜 인간, 멍청한 인간으로 취급하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과거 광우병 사태 때 ‘국정원의 아르바이트’로 매도되던 사람들은 이제 ‘일베충’이라 매도되고, ‘극우’라 불리 운다.

실제로 필자의 지인인 최 모 양은 자신의 페이스북 타임라인에 올린 정치적 견해 때문에 심각한 신상털이와 참담한 성희롱을 당하였다. 그녀는 자신의 타임라인에서 탄핵의 부당성의 사유를 논리적으로 말했지만 그들은 이런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대통령 탄핵 반대집회에 참가하였던 장민성 씨는 올해 1월 1일 새벽 서울 보신각 인근에서 차에서 내렸다가 촛불집회 참가자들로 추정되는 10여명의 사람들로부터 집단폭행을 당하여 의식을 잠시 잃었고 양 팔은 망치에 맞아 부서져 깁스를 하였다. 그의 차의 창문은 둔기로 완전히 부숴졌다.

   
▲ 국회의원 300명 중 234명은 검사의 위법한 사견을 근거로 대통령을 탄핵소추했다. 대통령은 직무정지가 되어 귀양을 갔다. 이제 사약이 내려질 그날을 기다린다. 탄핵 선고는 10일이다./사진=연합뉴스

이러한 분위기가 계속되자 주권을 가진 국민[임금]은 국정농단이 무슨 죄인지는 몰라도 사극에서 본 것처럼 귀양 보내야 할 죄인이라고 믿는다. 국정농단이 법에 규정된 범죄나 위법행위인지 묻는 사람이 없다. 무조건 사극에서 본 대로, 아니 언론이 부추기는 대로 대통령이 하야해야 할 어마어마한 범죄나 위법이라고 믿는다. 이 때 즈음 이면 고고한 선비 나리가 등장할 법도 한데 당최 찾아볼 수가 없다. 촛불의 위력 때문이었을까?

검찰이 최순실의 범죄사실 조사내용을 발표하면서 느닷없이 조사대상도 아닌 대통령의 공모(共謀) 혐의를 발표했다. 명백히 검찰의 직무범위를 넘은, 자신의 사견을 발표하는 피의사실 공표의 범죄행위(형법 제 126조)이다. 그런데도 검찰의 월권, 즉 농단을 비판하는 곧은 선비가 한 사람도 없다. 국회의원 300명 중 234명은 검사의 위법한 사견을 근거로 대통령을 탄핵소추한다. 대통령은 직무정지가 되어 귀양을 간다. 이제 사약이 내려질 그날을 기다린다.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선고일은 10일이다.

2017년을 사는 국민[임금]은 정보의 홍수 속에서 수많은 정보와 마주 하고 있다. 복잡다단한 현실을 객관적인 자세로 파악하는 것은 어렵다. 쉽고, 단순하고, 자극적인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이 전략적으로 더 효과적이다. 이 점에서 ‘국정농단’ 프레임은 참으로 전략적이며 영악한 것이다.

권력욕에 굶주린 조선시대의 간신들의 그것처럼 말이다. 이 국정농단이라는 프레임을 펼쳐나가는 과정에서 수사가 동원되고, 왜곡과 거짓이 섞이고, 마침내 선동이 시작된다. 이러한 명료한 프레임에서 벗어나 원칙을 가지고 자기 스스로 생각하고 표현할 수 있는 ‘지식인’은 그야말로 극소수이다.

한 사회가 한 방향으로 치우치며 집단의 광기와 군중심리가 대중이라는 이름의 독재자에 의해 퍼져나갈 때, 잘못을 바로잡고, 오해를 고치고, 사회가 다양한 시각을 겸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이 사회 극소수에 해당하는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용기 있게 자기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을 존중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이자,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한 전제조건이다. 이제 우리는 차가운 머리로 이 사태를 바라볼 준비가 되어있는가? /이성권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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