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도의 전술 활용…속임수 전략으로 가야 소국인 多羅國 영토 뺏아
영국의 저명한 역사학자 에드워드 카는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대화' 또는 '과거의 사실과 현재의 역사가의 대화'라고 정의했다. 역사란 과거와 현재를 잇는 중요한 징검다리다. 그럼에도 우린 때때로 역사에 대한 무관심과 몰이해로 스스로를 부정하는 우를 범하곤 한다. 중국의 동북공정과 일본의 독도 도발은 계속되고 있다. 이에 맞서는 유일한 길은 역사에 대한 올바른 앎과 이해일 것이다. '독도는 우리땅'이란 가수 정광태의 노래에 등장하는 이사부(異斯夫)는 과연 어떤 인물일까? 이사부 장군은 경상북도 동부의 작은 부족국가 신라를 한반도의 주역으로 끌어올린 분이다. 또 다양한 종족을 하나로 통합해 한민족의 뿌리를 형성하게 했으며, 신라 삼국통일의 초석을 놓은 위인이기도 하다. 독도에 대한 이해와 자긍심 고취를 위해 미디어펜은 이사부의 흔적을 찾아 나선 김인영(언론인)씨의 '이사부를 찾아서'를 시리즈로 연재한다. [편집자 주] 

[異斯夫⑥] 10대에 가야 국경서 수비대장

속임수 전략으로 가야 소국인 多羅國 영토 뺏아

   
▲ 김인영 언론인
이사부는 이미 10대에 나이에 신라 남쪽 국경지대에서 국경수비대장을 맡는다. 10대의 나이는 어려도 한참 어린 나이다. 어린 나이에 전운이 감도는 국경 수비 책임자를 맡은 것은 지증왕의 조카라는 왕족의 지위 때문이었다.

극히 희박한 이사부에 관한 사료 중에서 10대의 기록이 한줄 나온다. <삼국사기 열전 이사부편>이다.

<삼국사기 열전>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에는 이사부가 실직 군주가 되기 앞서 가야 공격에 성공하는 장면이 나온다.

지도로왕(智度路王, 지증왕) 때 변경 관리가 되어 거도(居道)의 계략을 모방하여 말놀이로써 가야(加耶)[혹은 가라(加羅)]국을 속여서 빼앗았다. <삼국사기 열전>

글의 순서로 보아 이사부가 실직 군주가 되기 이전의 기록이다. 이사부가 강원도 삼척에 실직군주로 가기 전에 변경의 관리가 되어 가야국을 공격해 영토를 빼앗았다는 내용이다.

시기는 지증왕 초기. 지증왕 원년에서 실직군주가 된 6년의 사이, 즉 500~505년 사이였다. 실직 군주로 부임할 때 나이를 20대 초반으로 치면, 가야 접경지대 군 사령관으로 갔을 때 나이는 10대 후반이었다. 이사부는 어린 나이에 군인의 길을 걸었다. 왕족의 운명인지도 모른다.

이사부는 위계(僞計)의 전술로 가야를 공격해 땅을 빼앗았다. 전술은 거도(居道)의 계략. 거도는 탈해왕때 사람이다.

거도(居道)는 탈해 이사금 때 벼슬을 얻어 간(干)이 됐는데, 이때 우시산국(于尸山國)과 거칠산국(居柒山國)이 이웃 경계에 끼어 있어서 자못 나라의 근심거리가 됐다.

거도가 변경 관리로서 그 나라들을 병합하려는 뜻을 은근히 품고 매년 한 차례씩 장토(張吐) 들에 말떼를 모아 놓고 병사들을 시켜 말을 타고 달리면서 즐기게 하니, 당시 사람들이 그를 ‘마숙(馬叔)’이라고 불렀다. 두 나라 사람들은 익히 본 일이라서 신라의 일상적인 행사라고 여기고 괴이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이에 거도가 병마를 출동시켜 불의에 그들을 공격하여 두 나라를 멸망시켰다. <삼국사기 열전>

우시산국은 울산으로 비정된다. 신라시대 우시산이 지금 울산의 지명으로 바뀐 것이다. 거칠산국은 부산시 동래로 비정되며, 가야의 일원인 소국으로 파악된다. 신라는 서쪽 내륙보다는 남쪽 해안으로 세력을 넓혀갔다. 우시산국과 거칠산국은 신라의 최초 영토합병으로 기록된다.

이사부는 거도의 전술을 연구해 그 방법을 채택하기로 했다. 우선 들판에 군사들을 모아놓고 말놀이를 즐겼다. 이사부 군대는 말을 훈련시키고, 재주를 부리는 놀이에 열중했고, 가야를 공격하려는 의지가 없음을 보여줬다.

가야는 우시산국과 거칠산국처럼 이사부의 마희(馬戲) 작전에 속았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에 무장한 기병이 가야의 본거지를 급습했고, 가야는 굴복하고 땅을 내주게 된 것이다. 전형적인 속임수 전략이다.

그러면 <삼국사기 열전>에서 이사부가 실직군주로 가기 앞서 지증왕 초기에 변경의 관리가 되어 공적을 세운 곳, 즉 가야와 맞닿아 있는 변경은 어디쯤일까. 이사부가 10대에 전과를 올린 가야 지역이 어느 곳인지 명확하지 않지만, 경남 합천의 다라국이라는 연구 결과가 있다.

전덕재 교수(단국대)는 ‘이사부 가계와 정치적 위상’에서 경남 합천군 쌍책면 성산리에 위치한 옥전고분의 부장 유물의 변화상을 관찰하면서, 그 곳이 이사부가 거도의 계략으로 침공한 지역으로 추정했다.
 
   
▲ 경남 합천군 쌍책면의 옥전고분군. 고고학 조사발굴 결과에 따르면 합천 옥전고분군에서 지배집단의 묘역이 드러났고, 고분군에서 1km 떨어진 곳에 다라리라는 지명이 존재해, 이 일대가에 가야 소국인 다라국으로 비정되고 있다. /사진=합천박물관

이 일대는 가야의 소국인 녹국(㖨國, 또는 다라국)이 지배하던 곳으로 비정된다. 5세기 대가야는 녹국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했지만, 6세기초에 신라의 반격으로 녹국은 신라의 통제 아래 들어간다.

전덕재는 5세기말 조성된 옥전 고분에서 대가야의 토기와 유물들이 집중적으로 출토되지만, 6세기초에 만들어진 고분에서는 신라 양식의 무덤(횡구식 석실)이 출토된다는 점에서 이사부의 첫 가야 공략 대상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었다.

<일본서기에> 다라국(多羅國)에 대한 간단한 기사가 나오는데, 학계에선 경남 합천 일대에 다라국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해왔다. 고고학 조사발굴 결과에 따르면 합천 옥전고분군에서 지배집단의 묘역이 드러났고, 고분군에서 1km 떨어진 곳에 다라리라는 지명이 존재해, '옥전고분군=다라국'이란 등식에 힘을 실었다. /김인영 언론인
[김인영]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