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기아·한국지엠 파업 수순
금속노조도 19~26일 총파업 예고
[미디어펜=김태우 기자]연래 행사처럼 올해도 산업계의 하투(夏鬪)가 본격화되고 있다. 특히 하투가 심상치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면서 잇단 파업이 예고되고 있다.

현대·기아자동차와 한국지엠, 현대중공업 등 완성차 업계는 물론 조선업계의 노동조합이 임금단체 협상 결렬을 선언하며 대규모 투쟁을 예고하고 있다. 또 금속노조는 임단협 외 비정규직 불법파견, 일자리 연대기금 조성 등 사회적인 문제로 전선을 넓히고 있다.

이들 업계 모두 업황이 좋지 않아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점에서 노조의 지나친 집단이기주의에 대한 비판적인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 민주노총이 주최하는 6.30 사회적 총파업 대회가 서울 시내 곳곳에서 열리는 사전집회를 시작으로 열렸다./사진=연합뉴스

13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현대자동차 노조는 지난 6일 20차 임금·단체협약 교섭에서 교섭 결렬을 선언하고 이날과 오는 14일경 파업 찬반투표를 벌이기로 했다.

노조는 회사측에 요구했던 일괄 제시안이 나오지 않자 교섭 결렬을 선언했다. 지난 10일 집행부 간부와 각 공장 노조 대표가 참여하는 확대운영위원회에 이어 11일 대의원대회를 열고 쟁의발생을 결의했다. 이후 전 조합원 찬반투표에서 파업이 가결되면 파업을 위한 모든 절차가 마무리된다.

현대차 노조가 파업에 돌입하면 6년 연속 파업 행진을 이어가게 된다. 지난해의 경우 24차례 파업과 12차례 주말 특근 거부로 회사측에 14만2000여대, 3조1000여억원 규모의 생산차질을 입혔다.

현대차 노조는 올해 △기본급 월 15만4883원 인상 △성과급 전년도 순이익의 30% 지급 △4차 산업혁명 및 자동차산업발전에 따른 고용보장 합의서 체결 등을 요구했다. 

이에 반해 사측은 지난해 영업이익률이 2006년 이후 최저치인 5.5%까지 감소한 점을 이유로 올해 임금 인상이 어렵다는 입장으로 맞서왔다. 현대차 임원들은 위기극복 동참 차원에서 지난해 10월부터 올해까지 급여를 10%씩 반납하고 있다.

그동안 사측과의 힘겨루기에서 현대차 노조와 보조를 맞춰 왔던 기아자동차 노조도 같은 수순을 밟을 것으로 예상된다. 회사측에 제시한 요구안도 현대차 노조와 거의 동일하다.

한국지엠 노조는 현대·기아차 노조보다 더 빠르게 파업 사전 절차를 밟고 있다. 지난달 30일 중앙노동위원회에 쟁의 조정을 신청했고, 지난 6일부터 이틀간 파업 찬반투표를 진행해 파업 68.4%가 찬성, 파업이 가결됐다.

한국지엠 노조는 금속노조 지침에 따라 현대·기아차와 동일한 기본급 15만4883원 인상을 사측에 요구한 상황이다. 여기에 성과급으로 통상임금의 500% 지급, 8+8 주간 연속 2교대제 및 월급제 시행, 공장별 생산 물량과 차종 확약 들을 추가로 요구했다.

하지만 사측은 기본급 5만원 인상, 연말까지 성과급 400만원 지급, 협상 타결 즉시 500만원 격려금 지급 등의 안을 내놓았으며, GM 본사 차원에서 통제하는 생산 물량과 제품 계획을 한국지엠이 확약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현대·기아차와 한국지엠 노조가 파업에 돌입할 경우 금속노조 산하 완성차 사업장은 모두 하투에 동참하게 된다. 다른 완성차 업체인 쌍용차는 기업별 노조고, 르노삼성자동차는 금속노조 산하 르노삼성지회가 있지만 조합원 대다수가 가입된 기업별 노조(르노삼성 노동조합)가 교섭권을 갖고 있다.

개별 기업의 상황과는 무관하게 금속노조가 자동차 업계를 하투의 소용돌이로 내몰고 있다. 이들 3사가 ‘15만4883원’이라는 한결같은 인상안을 내놓은 것도 금속노조의 지침에 따른 것이다.

사실 자동차 업계는 노조와의 힘겨루기에 정신을 쏟을 여력이 없다. 현대차는 2010년 이후 지난해까지 6년 연속 영업이익률이 하락했고, 올해도 실적 반등을 기대하긴 힘들다. 올해까지 3년 연속 판매목표 달성 실패 뿐 아니라 2년 연속 판매실적 감소도 예상되고 있다.

글로벌 경영환경은 계속해서 악화되고 있다. 현대·기아차는 당장 중국에서 사드 역풍으로 판매가 반토막 났고, 미국에서도 판매가 감소하고 있는 가운데 한미 FTA 재협상 리스크까지 안고 있다.

   
▲ 민주노총이 30일 광화문일대를 점령하는 사회적 총파업을 벌였다. 교통대란이 벌어졌다. 이들의 파업은 명분도 없고, 타당하지도 않다. 기득권노조는 고액연봉을 즐기면서 비정규직과의 임금격차 심화, 청년실업 악화를 부채질한다. 노동개혁을 거부하면서 기업환경을 최악으로 전락시킨다. 기득권노조가 양보해야 비정규직 임금 격차 해소, 청년취업 확대등이 가능하다./연합뉴스

여기에 일본과 EU가 지난 6일 경제동반자협정(EPA)에 합의하면서 현대·기아차의 유럽 수출에도 비상이 걸렸다. 

현대·기아차는 그동안 한-EU 자유무역협정(FTA)을 통해 일본 업체 대비 가격경쟁력을 확보하고 있었으나 이러한 이점이 깨지게 된 것이다. 일-EU EPA가 최종 발효되면 현재 최대 10%까지 부과되고 있는 일본산 자동차에 대한 관세가 7년에 걸쳐 철폐된다.

한국지엠의 상황은 더욱 좋지 않다. 모기업인 GM은 현재 전세계 사업장을 대상으로 수익성과 사업 잠재력을 평가해 생산 물량과 제품 계획을 재조정하는 절차를 진행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노조의 과도한 임금인상 요구와 파업에 따른 생산차질은 한국지엠에 대한 평가에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GM이 한국지엠을 고비용에 파업 리스크까지 큰 사업장으로 평가할 경우 노조의 요구대로 새로운 차종생산을 확약 받는 것은 고사하고 기존 생산물량까지 중국 등 다른 공장에 빼앗길 수도 있다.

더욱이 제임스 김 사장의 사임과 함께 한국지엠의 한국 철수설이 다시 부상하고 있는 상황에서 노조의 파업은 사태를 더욱 악화시킬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문제는 자동차분야 뿐만이 아니다. 극심했던 수주 절벽을 벗어나고 있는 조선업계도 파업문제로 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현대중공업의 노조는 지난 12일부터 오는 14일까지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상경 투쟁’을 벌이고 있다. 현대중공업 노사는 올해 임단협은 물론, 지난해 임단협도 마무리하지 못해 파업과 협상을 반복하고 있다.

사측은 경영 환경을 감안해 기본급 20% 반납안을 제시했지만 노조측은 회사 경영 사정이 나아진 만큼 구조조정과 임금 반납안을 철회하라며 맞서고 있다. 

현대중공업 노조는 회사가 올해 수주목표치의 절반 이상을 올 상반기에 달성했고 세계적인 조선 경기 흐름과 현대중공업 경영 환경은 지난해와는 180도 달라지고 있으며, 이런 상황에 맞는 새 안을 제시하는 게 회사의 의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회사측은 올 상반기에 수주 물량이 늘어난 것은 맞지만 수주가 바로 실적으로 연결되는 것이 아니어서 경영 환경이 나아지려면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올해 국내 조선업체들의 수주 실적은 지난해와 비교해 개선됐지만 노조의 파업이 회사에 악영향을 줄 것이라는 시각이 많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배를 발주하는 외국계 선사들 입장에서 보면 파업하는 회사에 일감을 주고 싶겠느냐”라고 말했다.

산업계에서는 올해 5월까지 임금교섭 진행 속도가 역대 최저 수준이고 친 노동계 성향인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노사 갈등이 예년보다 클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완성차 업계 한 관계자는 "쌍용차와 르노삼성 등 여러해 동안 파업이 없었던 곳은 모두 회사가 한 번씩 존립 위기에 처한 경험이 있다는 사실을 다른 기업 노조들도 상기할 필요가 있다"면서 "회사가 어려움에 처하기 전 근로자들도 위기 극복에 동참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현대차의 경우 파업이 연례행사처럼 진행되면서 소비자들이 더욱 외면하고 있다"며 "한국지엠은 올해 기업의 생사가 걸린 위험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미디어펜=김태우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