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하늘 기자] “서울중앙지검입니다. 김하늘씨 맞으신가요?”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보이스피싱 전화다. 하지만 그 뒤부터 이어지는 말들은 사람의 혼을 쏙 빼놓고 의심을 거둬간다. 그동안 보이스피싱 피해 사례를 보며 코웃음 치던 내가 금융사기를 당하는데 드는 시간은 1분이면 족했다.

   


“제대로 협조하지 않는다면 형사처벌을 피해갈 수 없을 것 입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 나의 명의로 대포통장이 개설돼 있으며, 1억2000만원의 피해액과 다수의 피해자가 있는 상황. 일면식도 없는 ‘김명철’씨와의 관계를 끊임없이 추궁 당하다보니 어느새 억울한 용의자가 돼있었다. 이내 나의 무죄를 성토해야 하는 상황까지 몰아갔다. 

보이스피싱인지 아닌지 확인이 필요하단 의심의 물음표엔 계좌번호나 비밀번호를 물어보면 그냥 끊으시면 되는 것 아니냐는 당당함의 마침표가 돌아왔다.

실제로 그들은 계좌번호나 비밀번호, 주민등록번호 등을 묻는 얕은 수를 쓰지 않으며 피해자의 의심을 가라앉혔다. 

반면, 피해자들을 용의자로 만드는 수법을 교묘히 이용해 억울함을 통해 본인 스스로의 정보누출을 노린 것으로 보였다. 

마침내 담당검사라는 사람과 전화까지 하게 된 나는 “사실 제가 금융감독원 출입기자인데요”라는 말을 내뱉었고, 동시에 전화는 바로 끊겼다.

   
▲ 사진=유튜브 영상 캡처


최근 금융당국의 노력으로 보이스피싱 피해 건수는 2015년 5만7695건, 2016년 4만5921건, 올해 상반기 2만2041건으로 꾸준한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다만, 수법이 교묘해지고 다양해지면서 피해액은 증가해 올해 상반기에만 피해액이 월평균 173억원으로 파악됐다.

수법은 크게 서울중앙지검과 같은 정부기관 사칭형과 대출빙자형으로, 정부기관 사칭형은 사회경험이 적은 20·30대 여성이, 대출빙자형은 대출 수요가 많은 40·50대가 취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누구나 쉽게 당할 수 있는 보이스피싱의 경우 보상조차 받기 힘든 상황인 것으로 파악됐다. 또한 허위신고 악용을 근거로 녹취가 없으면 신고조차 할 수 없다. 

금감원 관계자는 “당국은 수사기관이 아니다보니 미래창조과학부에 보이스피싱 전화번호 중지신청을 해야한다”며 “업무 과정에서 합당한 증빙 자료 등의 근거를 남겨야해 녹취 등 증거자료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관련 보상은 피해 계좌에 남아있는 잔액 내에서만 환급이 가능하다”며 “잔액을 이미 사기범이 탕진한 상황이라면 어쩔 수 없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보이스피싱 피해자들의 피해는 더욱 커져갈 수밖에 없다. 

실제 한 네티즌은 “보이스피싱을 당해 빚이 생겼다”며 “경찰서를 몇 번이나 갔다와도 절차가 너무 까다로워 보상을 받기 힘든 상황”이라고 전했다.

그는 또 “보이스피싱 피해에 대한 보상을 받을 수 없어 빚을 해결할 방법이 없다”며 “개인회생 신청을 준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해외의 경우엔 금융사기 피해가 발생하면 금융사의 책임에 큰 비중을 두고 있다.

미국은 전자금융거래 사건이 발생하면 은행이 전적으로 책임을 부담하도록 하고 있다. 이용자 같은 경우는 단순히 정해진 기간 안에 어떤 사고에 대해서 통제만 해 주면 전부 보상을 받을 수 있다. 

지난 11일 최흥식 금융감독원장은 취임사를 통해 "금융감독의 궁극적 추구는 소비자 보호"라는 입장을 밝혔다.

새로운 금감원장의 시대가 도래하며 그의 취지대로 금융당국은 궁극적으로 소비자를 보호하고, 이에 따라 피해에 대한 합당한 보상 절차도 진행되길 기대해본다.   

한편, 보이스피싱 사기를 당했다면 ‘보이스피싱 지킴이’를 접속해 ‘개인정보 노출사실 전파(해제) 신청서’를 작성한 후 직접 은행에 제출한다면 피해확산을 막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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