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용구 소설가·정신과전문의
이념의 전선이 판치던 시절, 자신의 두 아들을 죽인 원수를 양아들로 입적해 키우며 진정한 용서의 길이 무엇인지를 일깨워 준 목회자 손양원. 분열과 갈등, 증오로 치닫는 이 시대에 그가 던지는 울림은 감동을 넘어 가슴 묵직한 과제를 던진다. 미디어펜은 소설가이자 정신과 전문의인 신용구 원장의 '소설 손양원:용서'를 연재한다. 소설을 통해 진정한 용서와 화해 그리고 우리사회의 병폐인 갈등과 증오를 치유하는 길을 묻는다. 필자인 신 원장은 용서의 의미를 새삼 일깨워준 손양원 목사님께 감사를 드리고, 독자들 역시 손양원 목사의 인생을 통해 용서의 진정한 의미를 가슴에 한번 되새겨 보았으면 하는 바람을 전했다.  [편집자 주]


   

아버지의 비밀 3

"아들!"

뜻밖에 아버지가 내 등 뒤에 서서 나를 내려다보며 빙긋 웃었다. 여느 때 같았으면 한참 잡아끌어도 파하지 못했을 술자리였다. 그런데 오늘은 아버지가 스스로 술잔을 내려놓고 대폿집을 나와 나를 찾은 것이다. 아버지의 얼굴이 탐스럽게 익은 능금같이 붉은 것이 술은 제법 얼큰하게 취한 것 같았다.

"이게 뭐니?"
"눈깔사탕!"
"솜사탕 안 샀니?"
"응, 솜사탕 대신 기호, 영호  줄려고 사탕 샀어!"
"흐,....."

아버지는 말없이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흐뭇한 표정으로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우리 경호 이제 다 컸네, 장가가도 되겠어! 하하!"

누런 이를 드러내고 통쾌하게 웃는 아버지의 검은 머리칼이 동풍(冬風)을 받아 말갈기처럼 휘날렸다.

그 아래 숨어 있던 넓은 이마가 안개에 가려 있던 광활한 대지처럼 그 시원한 모습을 드러냈다. 내 눈에 비친 아버지는  오늘 따라 이 세상에서 제일 멋진 사람으로 보였다. 아버지가 내 가슴 한구석에 있던 걱정을 덜어 준 탓이었다. 난 아버지와 오씨 아저씨의 술자리가 길어지지는 않을까 내심 조바심을 내고 있던 중이었다. 

동생들에게 줄 선물까지 준비한 마당에, 아버지까지 별 일 없이 일찍 돌아왔으니 그야말로 오늘은 해가 서쪽에서 뜰 일이 생긴 것이었다. 이만하면 운수대통한 날이라 아니 할 수가 없다. 현진건의 소설  운수 좋은 날은 보통 인간의 정말 재수 없는 서글픈 일상을 씁쓸하게 그리고 있지만, 나만은 오늘의 행복이 끝까지 이어질 것이라 믿고 싶었다.

암튼 아버지를 잘 모시고 돌아오라는 어머니의 당부까지 완수해서 내 임무를 완벽하게 수행하게 된 셈이니. 이보다 더 기쁠 수는 없었다.  

내 노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 순전히 재수였다. 그래도 난 이 상황이 몹시 기뻐서 전쟁에서 이기고 돌아온 개선장군처럼 갑자기 의기양양해지는 기분이었다. 나는 뼈마디 굵은 아버지의 울퉁불퉁한 손에 이끌려 즐거운 걸음을 바삐 재촉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오늘은 수락산에 기거하는 걸인들이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들이 이미 시장을 다녀갔다면 모르지만 다녀가지 않았다면 그들이 나타나기 전에 빨리 피하는 것이 상책이었다.

이 때문에 나는 아버지보다 걸음이 더 바빴다. 아버지가 황새걸음으로 성큼 한 걸음을 내디디면 난 좌우로 눈알을 뱅뱅 굴리면서 뱁새걸음으로 세 걸음을 놓고 있었다. 하지만 인파에 치어서 우리의 걸음은 바쁜 마음과 달리 속도를 내지 못하고 거의 제자리를 맴돌고 있었다.

아버지는 천성 탓인지는 몰라도 심성이 비단결처럼 고왔다. 동네 사람들 부탁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나서서 늘 자기 일처럼 도왔고, 걸인들을 보면 불쌍히 여겨 그냥 지나치지를 못했다.

이 와중에 아버지와 친분 아닌 친분을 우연히 맺게 된 걸인들이 있었는데, 수락산 자락에서 움막을 짓고 사는 다섯 명의 걸인들이 바로 이들이었다. 

아버지는 시장에 나가는 날이면 무의식적으로 이들을 찾았고, 이들을 만나게 되면 아버지는 이들이 자기 식솔이나 되는 양 자신이 가진 것은 모두 다 내주었다. 이런 날은 영락없이 아버지의 호주머니는 빈털터리가 되어 마른 먼지만 풀풀 날렸다.

이러다보니 어머니는 아버지가 시장엘 나가는 날이면 늘 마음을 졸이게 되었다. 한때 의욕이 넘칠 땐 이런 불상사를 막으려 당신 스스로 팔을 걷어붙이고 아버지를 따라 나서 얼굴을 붉혀가며 목청을 높이기도 했지만, 결국 서로 감정이 상해 다툼으로  이어지는 일이 잦아서, 어머니도 나중엔 아버지를 따라나서는 걸 포기하고는 아버지를 지킬 파수꾼으로 나를 지목해 아버지가 시장 나들이에 나설 때 나를 딸려 보내곤 했다. 

삼대독자였던 아버지는 자신의 첫 핏줄을 아들로 얻게 된 것이 너무 기뻐 나를 품에 안았을 때 세상을 다 얻은 기분이었다고 했다. 이 때문에 다른 형제들 보다 나를 향한 아버지의 사랑이 유독 깊었다. 어머니가 당신을 대신해 나를 아버지의 외출에 동행시킨 것도 다 이런 연유가 있었다.

설 대목 장터는 장을 보러 나온 사람들로 발 디딜 틈도 없이 빼곡히 들어차 있어 콩나물시루나 다름없었고, 인파에 밀려 나는 사람의 바다에서 둥둥 떠다녔다.

산산이 부서지는 하얀 물보라를 일으키며 뒤로 성큼 물러서는 파도처럼 나 역시 앞으로 한걸음을 나아가면 그 힘의 반작용으로 여지없이 뒤로 두 걸음을 더 뒷걸음질을 쳤다.

사람들의 힘에 밀려서 내 몸이 휘청거릴 때마다 사탕봉지는 아래위로 출렁이며 위태롭게 춤을 추었고, 애타는 내 마음과는 상관없이 사탕은 하나 둘 사방으로 튀었다.

까딱하다간 눈 깜짝할 사이에 사탕 봉지를 몽땅 농칠 판이라, 나는 눈이 동그래져서 아버지를 놓치지 않으려 젖 먹던 힘까지 짜내어 죽을힘을 다해 아버지의 손을 꼭 붙들었다

손에서 쥐가 날 지경이었다. 하지만 사력을 다한 노력에도 내가 인파를 뚫고 밖으로 빠져 나왔을 땐 품에 안겨 있던 사탕봉지는 너덜너덜 찢어져서 애지중지했던 사탕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없었다.    

"아빠, 어떻게?"    

나는 거의 울상이 되다시피 하여 아버지의 팔을 잡고 매달렸고, 사탕 한 봉지를 잃고 온 세상을 다 잃은 것처럼 사색이 되어 눈가에 주렁주렁 눈물을 달고 있는 아들의 모습이 아버지 눈에는 재미있게 보였던지 껄껄 소리 내어 웃으며 은근히 놀렸다.    

"아들, 사내자식이 어째서 계집애처럼 그렇게 눈물이 많아! 남자란 말이지 자고로, 세 번 운다고 했어, 언제 우는지 알아?"

아버지는 잃어버린 사탕 때문에 속이 타는 내 심정은 안중에도 없이 엉뚱하게 남자의 눈물에 대한 장광설을 늘어놓으며 속이 시꺼멓게 탄 내 가슴을 박박 긁어댔다.

난 완전히 토라져서 샐쭉한 표정을 짓고는 새침때기마냥 입을 꼭 다물었다. 어떤 말에도 대꾸하지 않겠다고 속으로 다짐까지 했다.

"자식이 삐치기는......, 아들, 남자는 말이야, 세상에 태어날 때, 부모가 죽었을 때, 그리고 나라가 망했을 때 운다고 했거든? 근데 넌 어째서 고작 사탕 한 봉지 땜에 울고불고 난리야?"

세 번 우는 남자의 눈물이 아버지 같은 어른들에겐 목숨같이 소중한 인생의 의미를 담고  있을 진 몰라도 내게는 어림 반 푼 어치의 가치도 없었다. 남자가 열 번을 울던, 스무 번을 울던, 한번 울 때 눈물을 바가지로 쏟아내던, 남들에게 못났다고 핀잔을 듣던, 내겐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자존심은 어른들한테만 있는 게 아니다. 이마에 피도 마르지 않은 아홉 살, 인생도 모르는 아주 새파란 나이지만, 나에게도 자존심이란 게 있다. 잃어버린 사탕 한 봉지는 내 자존심이었다. 

또래 여자 아이가 나에게 안겨 준 수모까지 견디어 내면서, 내 욕망을 스스로 거두어들이고 택한 내 자존심이었다. 또한 동생들에 대한 내 사랑이기도 했다.

"아빠가 두 봉지 사줄 테니까 이젠 뚝 그쳐!"

아버지의 약속이 반갑긴 했다. 하지만 내 귀에 그 말이 썩 달콤하게 들리지는 않았다. 내 자존심을 어찌 사탕 두 봉지에 비할 것인가. 

아무튼 아버지는 다시 사탕을 사러 인파 속으로 뛰어들었고, 난 신작로 버스 정류장 앞 느티나무 아래 펴 놓은 평상에 앉아서 사탕을 사러 간 아버지를 기다렸다.

잠깐이었지만 이상하게 그 시간은 이날 하루 중 가장 길게 느껴진 시간이었다. 느티나무 옆 전봇대의 그림자도 길게 늘어지고 있어 얼마 전에 중천에 떴던 해도 이젠 제법 서쪽으로 자신의 무게 중심을 이동시키고 있었다. 

내 눈은 아직 오지 않은 아버지를 찾아 시장 쪽을 부지런히 두리번거렸고, 그러다가 나도 모르게 목을 뒤로 돌려 수락산을 살피고 있었다. 나흘 전에 서울 인근에 폭설이 내린 터라, 수락산 등선엔 하얀 눈이 잔뜩 쌓여 있었다.  

'얼어 죽었을까? 이번 폭설에......, 에이, 설마!'

   
▲ MBC 드라마 '왕초' 한 장면.

수락산 걸인들이 시장에 나타나지 않은 것이 내게는 안도감을 주었지만, 한편으로는 그들에게 마음이 쓰이기도 했다. 그들을 경계했던 내 죄책감이 고개를 든 것이다. 주일학교를 다니고 있던 터라, 하느님에게 벌을 받지 않을까 더럭 겁이 나기도 했다.

5일장이 서는 날이면 이들은 어김없이 시장을 찾았다. 장날엔 사람들이 평소보다 몇 곱절 더 많이 몰리고, 잔칫집 같은 시끌벅적한 분위기에 휩쓸려 모두 괜히 흥이 나서 여느 때보다 사람들의 인심이 후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이들 걸인들은 예의도 바르고, 상인들에게 눈곱만한 피해도 주지 않는데다 나름 재미있는 특기와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는 가슴 아픈 사연도 갖고 있어서 시장 상인 가운데 그들을 챙기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나름 시장의 명물들이라 할 수 있었다.

물론 그들이 돌아갈 때면, 사람들의 온정에 힘입어 손이며 등에는 그들이 며칠 동안 먹을 부식거리가 풍성하게 들려있기 마련이었다. 

소아마비를 앓아 한쪽 다리를 저는 미아라는 사람은 인사성이 밝아서 안면이 있든 없든 사람을 만나면 누구든 간에 눈웃음을 치고 생글거리면서 먼저 머리를 숙여 넙죽 인사를 했다.
 
"알랑하십니까?"

혀 짧은 소리로 미아가 건네는 안녕하시냐는 이 인사말은 당연히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었는데, 인근 꼬마들에겐 혀 짧은 그의 이 인사말은 아주 인기가 있어, 아이들이 놀 때 그를 곧잘 흉내 내곤 하였다.  
또 이들 일행을 실질적으로 이끌고 있는 대장 노릇을 하는 고복수란 인물은 생김새는 험상궂어도 노래 실력이 뛰어나 사람들에게 또 다른 즐거움을 주었다. 특히 가수 고복수 선생의 '짝사랑'을 구성지게 잘 불러 자신의 이름값을 톡톡히 했다.

이들 일행 가운데는 노랫가락에 매끄러운 기름칠을 해서 신명을 더해주는 춤꾼도 있었다. 사람들은 그를 춤을 잘 추어 ‘춤쟁이’라 불렀는데, 이 사람은 고복수가 노래를 하면 언제 어디서든 거기에 장단을 맞추어 어깨를 들썩이며 추임새를 넣고 볼록한 엉덩이를 좌우로 삐죽삐죽 튕기면서 서커스단의 피에로처럼 경박하게 춤을 추어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었다. 

이들 일행엔 이처럼 재미있는 사람만 있는 게 아니었다. 인생의 화두를 공부로 삼고 학문에 정진하는 지식인의 모습을 한 사람도 있다.

김 학사라 불리는 인물인데, 그는 가마솥같이 절절 끓는 한 여름에도 두꺼운 학사모를 머리에 늘 썼다. 거기에다 새색시 같이 얌전한 자세로 영어 사전을 옆구리에 꼭 끼고 다녔다.

시장 사람들은 그가 지나가면 그에게 안타까운 눈길을 떼지 못했다. 그는 일대에서 부자로 소문난 의정부 김 부잣집의 둘째 아들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생활도 문란했고 축첩도 일삼았는데, 자신의 행실이 정결치 못한 탓인지 남들도 자신과 같을 것이라 판단했던지 적반하장 결혼 이후 남자라곤 남편 외엔 아무도 본적도 없는 착한 아내가 바람을 피운다고 의심하여 툭하면 김 학사의 엄마를 폭행했다고 한다.

결국 남편의 매질을 견디다 못한 김 학사의 어머니가 목을 매었고, 이에 충격을 받아 그가 실성하게 되었다는 것이 김 학사에게 얽힌 비극의 골자이다. 그런데 요즘은 그 시말(始末)은 분명치 않지만 그에 대한 미담이 전해지고 있어 듣는 사람들의 눈시울을 붉히게 할 뿐 아니라 한 겨울에 꽁꽁 얼어붙은 가슴까지도 훈훈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가 실성한 이 와중에도 엄마의 무덤을 찾아 자신이 구걸해서 얻은 부식으로 제물을 차려놓고는 어머니의 넋을 위로하며 대성통곡하는 모습을 자주 보았다며, 실성한 김 학사가 생사람 잡은 김 부자 보다 훨씬 낫다고 사람들이 입을 모아 그를 칭찬했고, 사람들은 김 학사의 이런 마음과 사정을 살펴서 그들이 구걸을 하러 오면 언제나 후하게 대접을 해주었다. 이외에도 백치기가 조금 있는 스무 살 남짓한 곱분이가 홍일점으로 이들을 따르며, 이들 무리의 양념 역할을 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우리 동네로 가는 버스가 막 출발한 후 사탕을 사들고 돌아왔다. 우리 동네로 가는 버스는 1시간에 한 번 씩 온다. 그러니 영락없이 이 자리에서 꼬박 한 시간을 더 기다려야 한다. 바람이 차지만 이곳에서 나고 자라 겨울 추위에는 익숙한 편이니, 이 평상에서 앉아 시간을 보낸다 한들 그리 힘들 건 없다, 수락산의 걸인들이 나타나지만 않는다면.

날이 저물어 장을 보러 나온 사람들은 집으로 돌아 갈 채비를 서둘렀고 장사꾼들도 바닥에 부렸던 짐을 꾸리고 있었다. 사람들로 바글거리던 시장에 이젠 파장 분위기가 역력했다.  장작불을 피워 고기를 굽고 술잔을 기울이며 정담을 나누는 사람들도 더러 있었다. 이런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오래 묵혀 놓은 숙제를 다 해치운 듯 아주 기분이 개운했다.

'장보고 나면 아버지가 딴 데 한 눈 팔지 못하게 얼른 모시고 와야 된다!'

엄마의 당부가 없었어도 내가 먼저 그렇게 했을 것이다. 이젠 오늘 구입한 제수용품을 들고 집으로 돌아갈 일만 남았다.

'이게 정말 얼마만인가?' 

아버지의 선행으로 우리 집안은 매번 명절마다 홍역을 치렀다. 아버지가 선행을 하는 것은 좋은 일이이지만, 베푸는 정도가 우리 형편에 걸맞지 않았기 때문에 항상 말썽이 따랐던 것이다. 

엄마는 아버지와 첫선을 보던 날 인정이 넘치는 아버지의 따뜻한 마음에 호의를 가졌다고 한다. 그런데 후일에는 아버지의 선행에 상식적이지 못한 지나친 면이 있다는 것을 알고는 걱정을 했고, 급기야는 이 같은 선행이 잦아지면서 다툼으로까지 이어지는 일이 많아 큰 골머리를 앓았다.

당연히 우리 집 명절 분위기는 비를 잔뜩 머금은 시꺼먼 여름하늘처럼 늘 우중충했다. 그럼에도 아버지는 자신의 행동을 멈추지 않았다. 나는 문득 그에 대한 궁금증이 일었다. 

"아빠, 미아한테 왜 그렇게 많은 돈을 줘?"
"불쌍하니까......."
"불쌍한 사람들은 많잖아? 우리도 가난한데, 그런데 왜 미아한테는 그래?"
"허허, 요 녀석이 못하는 말이 없어!"

아빠는 싱긋 웃으며 내 머리에 가볍게 굴밤을 먹이고 다더니. 담배를 꺼내어 불을 붙였다.

"너는 이 아빠가 미아한태 돈 주는 게 안 좋아?"
"나쁜 건 아니지만, 엄마 아빠가 싸우게 되니까, 그렇지."
"허허!"

아빠는 내 말에 달리 대꾸할 말이 없는지 소리 내어 웃기만 했고, 우리를 싣고 갈 버스가 시커먼 연기를 뿜으며 정겹게 달려오고 있는 모습을 보고는 구세주라도 만난 양 반색을 하며 잽싸게 짐을 챙겨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정확히 그 때였다.

"알랑하십니까?"

난 내 귀를 의심했다.

'이게 무슨 소리야?'

분명 미아 일행이었다. 난 그들을 보고도 믿기지 않았다.

'대체, 이게 어찌 된 일이지? 이 사람들이 땅에서 솟았나? 하늘에서 떨어졌나? 어디서 나타난 거야? 마술을 부리기라도 했단 말인가?'

아버지도 예상을 못했던지 수락산 걸인들의 느닷없는 출현에 흠칫 놀랐고, 미아는 우리를 놀라게 한 것이 미안했던지 민망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얼굴을 붉혔다. 아버지는 사춘기 소년처럼 수줍게 웃고 있는 미아를 향해 걸어갔다.

내 몸에서 나는 양키 냄새와 달리, 한겨울이라 씻지 못한 그들의 몸에서는 땀에 찌든 고약한 냄새들이 뒤섞여 오묘한 화학반응을 일으킨 탓인지 생전 처음 맡는 악취가 풍겨 코를 찔렀지만, 아버지는 눈도 깜짝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반갑게 그와 악수를 나누고는 그와 몇 마디 말을 주고받더니 안주머니에서 봉투를 하나 꺼내어 손에 쥐어 주었다.

"이거 얼마 안 되지만, 받아 두어, 곱분이가 몸 풀 날이 멀지 않은 것 같은데......"
"아이구......, 자꾸 이러시면 안 되는데......, 어쨌든 박 썬쌩님, 고맙십니다."

미아는 자신들 때문에 아버지가 집에서 자주 곤란을 겪고 있다는 걸 알고 있어 내 눈치를 살피며 잠시 머뭇거리더니 이내 허리를 깊이 숙여 넙죽 인사를 하고는 돈을 받아 들었다. 이들 일행의 유일한 홍일점 곱분이의 배가 남산만 하게 불룩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곱분이의 뱃속에 있는 아이가 누구의 씨인지는 모르지만, 곱분이가 제법 곱상하게 생겨 눈독을 들이는 부랑아들이 적지 않았다. 이 때문에 곱분이의 몸에 아이를 잉태시킨 장본인은 아마도 이들 부랑자 중이 하나일 것이라 사람들은 생각하고 있었다.  
'이를, 어쩌지!'

모든 것이 도로아미타불이 되고 있었다. 미아와 김 학사, 춤쟁이, 고복수는 코가 땅바닥에 닿도록 허리를 완전히 꺾어 아버지에게 다시 완벽에 가까운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이를 흐뭇한 시선으로 바라보던 대여섯 명의 사람들도 자발적으로 십시일반 약간의 돈을 추렴해서 미아에게 건네고는 곱분이의 탈 없는 해산을 빌었다. 이 덕분에 파장 무렵의 버스정류장에 갑자기 생기가 돌았다. 서로를 칭찬하고 격려하고 모두가 따뜻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단연 아버지는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이 가슴으로 기억하는 가장 빛나는 사람이었다.   

모두가 아버지의 따뜻한 마음씨를 입이 마르도록 칭송했다. 아마 사람들뿐만 아니라 하느님도 아비지의 선행에 감동해서 아버지에게 상을 내릴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왠지 내 마음은 편안하지 않았다. 두 근 반 세 근 반 걱정만 앞섰다. 아홉 살 내 눈에도 범상치 않은 앞 일이 너무 선하게 보이는데, 나이를 먹은 아버지 눈엔 왜 아무 것도 안 보는 것일까? 보고도 모른 척 하는 것일까? 난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고 알 수도 없어 가슴이 터질 듯이 답답하기만 했다.

그 순간 아홉 살짜리의 어린 인생은 백 살 먹은 노인네가 되어 버린 것 같았다. 정말 난 해소 천식을 달고 사는 노인네처럼 학학 대며 가느다란 숨만 열심히 쉬고 있었다.

설 명절을 지낼 돈을 모두 날린 덕분에 아버지는 기어코 그날 밤 어머니에게 쫓겨나, 밤이 이슥해지도록 까지 마을 어귀에 있는 늙은 주모의 주막집을 홀로 지키며 욕지거리가 반쯤 섞인 노파의 질퍽한 푸념 소리를 들으며 슬며시 잠이 들었고, 난 구들장이 내려앉을 것 같은 엄마의 한숨 소리를 뒤로 한 채  밤하늘의 별이 총총해지도록 돌아오지 않는 아버지를 찾아 밤길을 더듬었다. <계속> /신용구 소설가·정신과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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