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권분립 훼손 우려…과도한 신상털기는 법관의 직업적 양심 위축시켜
[미디어펜=김규태 기자]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집행유예 항소심 선고를 놓고 판결 불복종 움직임이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대법원 최종 판단이 남아있는 만큼 판결을 지켜보자는 원칙론에도 불구하고, 청와대에 정형식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를 파면하라는 국민청원이 빗발치고 일부 현직 판사까지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나서 법조계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법원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청원글에 대해 공식 대응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현직 판사들 사이에서는 개별 판결에 대해 파면 청원까지 나오고 정치권이 판사 비판을 주도하는 것은 삼권분립을 훼손하는 지나친 주장이라는 입장이 많다.

일각에서는 과도한 신상털기가 독립적 판단을 담보하는 법관의 직업적 양심을 위축시켜 법과 양심에 따라 공정한 재판을 받아야 하는 피고인의 권리를 오히려 침해하는 결과를 빚을 수 있다고 보았다.

또한 현직 판사가 다른 판사의 재판에 대해 언급하는 것을 삼가는 법원 문화에서 인천지법 김동진 부장판사가 지난 6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재용 판결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다'는 짧은 글을 남긴 것에 대해서도 도를 넘은 비판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방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이재용 부회장 선고든 박근혜 전 대통령 1심이든 판결에 대한 국민적 비판과 달리, 동료 판사가 직접 심리를 진행하고 모든 기록을 살펴본 후 결론내린 것에 대해 기록을 검토 않고서 비판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며 말을 아꼈다.

또다른 형사부 판사는 "국민 일부가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양형판단을 비판했다는 취지라면 수긍할 수도 있지만 현직판사가 다른 재판부 판결에 동의하지 않는다면서 이유를 안 밝혀 아쉽다"며 "판결에 대한 비판은 헌법이 보장하는 삼권분립, 견제와 균형의 범위 안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수도권의 한 판사는 "재판에 심급 제도가 있는지 모르느냐"며 "항소심 선고는 종국 판결이 아니고 양쪽에서 상고하겠다고 모두 밝힌 만큼 대법원 판단을 차분히 기다릴 필요가 있다"며 판결 불복종 논란에 대해 선을 그었다.

판사 출신의 한 법조계 인사는 "항소심 집행유예 선고가 이재용 부회장 사건에 대한 최종 판단이 아닌 만큼 대법원 판결을 기다려야 한다"며 "부정청탁이 없다거나 재산국외도피죄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법리적 판단은 존중되어야 하고 논란이 된 사안에 대해 대법원이 심리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 항소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지난 5일 구속된 지 353일 만에 풀려났다./자료사진=연합뉴스


이와 관련해 판사 출신의 나경원 자유한국당 의원은 8일 tbs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기록을 못봐서 모르겠습니다만 재산국외도피 부분에 다툼의 여지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대법원에서 치열하게 공방이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바뀔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다만 나 의원은 정형식 부장판사에 대한 여론에 대해 "분노와 도를 넘은 비판이 삼권분립 원칙을 크게 훼손하는 것 아닌가"라며 "사법부 독립을 지키기 위해 김명수 대법원장의 메시지가 있어야 한다"고 언급했다.

법조계는 헌법이 보장하는 삼권분립에 따라 현직법관 인사는 청와대가 개입할 수 없는 영역이라면서 법관을 청와대가 파면하라는 취지의 주장은 떼법이라고 보았다.

헌법은 법관에 대해 탄핵 또는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지 않는 한 파면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법관징계법은 법관에 대한 징계 처분을 정직·감봉·견책 3가지 유형으로 가능하도록 하고 있고, 이에 따라 현직 법관의 파면은 청와대 청원으로 가능하지 않다.

법조계는 이에 대해 "판결 자체에 대한 건전한 비판은 문제 없으나 개인사나 친인척 관계를 들추면서까지 판사 자체를 비난하는 것은 옳지 않고 정치재판으로 끌어내리려는 것"이라고 보았다.

검찰은 7일 이재용 부회장의 항소심 판결에 대해 "향후 대법원에서 바로 잡힐 것"이라며 "재판부가 이 부회장을 무리한 집행유예로 석방하고 다른 뇌물공여 사건과 달리 부당하게 가벼운 형을 선고했다"고 반발하고 나섰다.

항소심 재판은 끝났지만 이 부회장에 대한 법원의 유무죄 판단은 진행 중이다.

법조계는 3심제를 둔 헌법 정신에 맞춰 대법원의 최종 판단을 기다리는 국민의식이 아쉽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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