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정유업계 올 1~9월 석유제품 수출액 300억달러
베네수엘라, 석유 매장량 많지만 품질 탓 수출 난항
   
[미디어펜=나광호 기자]"설렁탕을 사왔는데 왜 먹지를 못하니..."

1924년 발표된 현진건의 단편 소설 '운수 좋은 날'에는 주인공 김 첨지가 주검으로 변한 아내 앞에서 슬피 울며 이같이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운 좋게 큰 돈을 벌고 병을 앓고 있던 아내가 설렁탕을 먹고 싶어해서 사왔는데 정작 아내가 먹지 못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창립멤버인 베네수엘라도 2016년 기준 원유매장량 3022억배럴을 자랑하지만 석유 수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베네수엘라 국영석유사 PDVSA는 2013년 1000억달러의 석유제품을 수출했으나, 2016년 수출액이 300억달러로 급락한 데 이어 최근 2년간 하락세가 지속되고 있는 상황이다.

반면 '기름 한 방울 안 나는 나라'로 불리는 한국은 2015년 이후 지속된 저유가 기조에서도 꾸준히 수출 물량을 늘리면서 베네수엘라와 대조를 이뤘다.

26일 한국석유협회에 따르면 국내 정유업계는 올 1~9월에만 300억달러(1억2289만배럴)에 달하는 석유제품을 수출했다. 특히 올 3분기에 원유도입량의 52%를 석유제품으로 정제해 수출한 것을 비롯해 최근에는 원유도입량의 절반 가량을 수출하는 등의 성과를 내고 있다.

석유협회 관계자는 "국제해사기구(IMO)의 탈황규제 등에 대응하고 시설고도화 등을 진행하고 있으며, 올해 수출액이 400억달러를 넘어설 것"이라고 기대했다.

   
▲ 베네수엘라가 원유 수출에 난항을 겪고 있다./사진=한국석유공사


한편 베네수엘라 원유 수출이 난항을 맞은 까닭으로는 △베네수엘라 원유 품질 △반미감정에 따른 기술 낙후 △베네수엘라 경제 상황 △셰일가스 본격 시추 등이 꼽힌다.

베네수엘라 원유의 상당량은 유황·소금·물 등 불순물이 많은 초중질유로, 이를 정제하기 위해서는 일반 원유 대비 많은 화공약품과 고도의 정제능력을 가진 설비가 필요하다. 베네수엘라에 대한 투자를 늘려 원유를 도입하려는 중국도 불순물 문제를 제기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베네수엘라는 반미감정 및 다국적 기업에 대한 적대감을 이유로 미국을 비롯한 외국 정유사들을 내쫓으면서 기술이 개선되지 못하는 동안 설비가 노후화됐고, 원유 품질을 높이기 위해 외국에서 원유를 도입해 희석하는 방식을 사용하고 있지만 원유 도입을 위한 자금이 충분치 않아 이마저도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경이다.

2000년대 후반부터 미국에서 셰일오일 시추가 본격화된 가운데 지하 3km 암반에 파이프를 투입하고 수평으로 파이프를 뻗어 원유를 뽑아내는 '프래킹' 공법이 활용되면서 생산량이 증가, 베네수엘라 원유를 도입하지 않게 된 것도 수출 감소에 일조했다.

또한 사우디를 비롯한 전통 산유국들이 셰일업계를 고사시키기 위해 국제유가를 배럴당 20달러대로 떨어뜨리는 '치킨게임'을 벌이면서 베네수엘라는 고래 싸움에 등 터진 새우로 전락하게 된다. 베네수엘라 원유는 국제유가가 70달러를 넘지 못하면 경제성이 없는 것으로 평가된다.

최근 인터넷에는 '단군은 땅 보는 눈이 없었다'는 등 국내 자원 부족을 한탄하는 주장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으나, 한국과 베네수엘라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가장 중요한 것은 인적자원이라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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