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개월 확대로는 업종별 정상경영 차질
'형사처벌 완화' 배제해 독소조항 리스크 여전
[미디어펜=김규태 기자] "주52시간제에 탄력근무요? 일손 부족한 현장은 이미 퇴근체크 후 자발적으로 알아서 더 일하는 방식으로 대처하고 있습니다. 1년으로 확대해도 모자랄 판에 6개월 확대라니, 현장의 사정은 아무 것도 모릅니다."

지난 19일 노동정책 사회적대화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에서 노사가 한발씩 양보해 극적 합의를 이뤘지만 기업 현장의 호소를 외면해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보통신 분야 생산라인에 근무하는 오모 과장은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노조 합의를 의무화했다는데 그렇게 되면 거대노조가 자리잡은 사업장일수록 탄력근로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근로시간이 규칙적으로 예측가능한 사업장이면 모를까 수출전선에 있는 제조업체일수록 2~3주전 미리 근로시간을 내다보기 불가능하다. 아무리 단축해도 3~4일은 걸린다"고 말했다.

네트워크장비 납품기업 백모 대표 또한 "법조 자문 등 법률리스크에 대비가능한 큰 기업들이라면 몰라도 각 근로자들이 불가피한 근무시간 위반에 대해 회사를 고발할 리스크는 더 커질 것"이라며 "경사노위가 사측에 대한 '형사처벌 완화' 여부를 논의에서 배제했다는 점이 유감이다"고 밝혔다.

재계에서는 건설·정유화학·정보통신 등 해외수주 및 특정시기에 일이 몰리는 업계 특수성을 감안하면 6개월로 탄력근무 단위기간을 확대해도 무용지물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는 이번 합의에 대해 "성수기가 있는 일부 중소기업의 경우 평균 성수기 연속기간이 5~6개월에 이르고 있어, 6개월로 늘려봤자 활용 못하는 기업이 생길 수밖에 없다"며 "주요 선진국에서는 단위기간을 최대 1년으로 둔다"고 설명했다.

   
▲ 사진은 2018년 11월22일 청와대에서 열린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제1차 본위원회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모두발언하고 있는 모습./사진=청와대

탄력근로시간 사전 합의를 의무화한 것도 또다른 문제로 꼽힌다.

한 제조업체 법률고문을 맡고 있는 법조계 인사는 "탄력근로에 대해 노조가 동의하지 않으면 어떻게 하라는 말이냐"며 "주당근로시간이 60시간 줄어들면서 기업 부담이 늘었고, 가장 민감했던 임금 보전에 대해 사측에 비용 책임을 떠넘긴 것"이라고 언급했다.

그는 "경사노위 합의안에 따르면 근로시간 사전합의 요건이 매우 엄격하다"며 "당초 사측 요구사항이던 선택근로제 확대가 빠졌을 뿐더러 근무배치 등 인적자원의 유연한 활용이 어려워졌다"고 덧붙였다.

경사노위는 이번 합의로 큰 산을 넘었지만 탄력근로 단위기간 확대를 위한 근로기준법 개정까지는 첩첩산중이다.

합의안은 사측이 근로자 대표(노동조합)와의 서면 합의를 통하되, 3개월을 초과하는 탄력근로제는 일별 근로시간이 아니라 주별로 정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임금을 보전하고 충분한 휴식(근로일 간 11시간 의무휴식)을 보장하면서 노조(또는 근로자 과반수 대표) 동의까지 얻어야 한다.

하지만 지난해 7월 전격적인 근로시간 단축 강행에 이를 맞추지 못하는 현장의 호소가 여전하고, 근로시간 위반에 따른 처벌 유예기간은 3월31일 종료된다.

여야는 향후 국회 논의 과정에서 업종별 특수성과 애로사항을 반영해 입법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