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는 작품성만이 아니라 주변 환경·교통편 등 다각적인 측면에서 선택
   
▲ 김병희 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문화예술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미술관, 박물관, 공연장 같은 장소가 문화예술작품에 접근할 수 있는 공간적 의미를 지닌다. 이에 비해 문화예술기관이나 단체의 입장에서는 그런 곳이 문화예술작품을 소비자에게 연결해주는 유통 경로라는 의미를 갖는다. 관객이나 관람객에게 문화예술작품을 어떤 곳에서 선보였을 때 가장 효과적일까? 작품과 소비자들이 만나는 접점인 장소를 결정할 때도 합리적인 선택의 문제로 귀결된다.

문화예술작품의 수준이나 품질이 소비자의 선택을 완전히 좌지우지한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항상 그렇지는 않다. 소비자들은 작품 자체만 놓고 판단하지 않고 공연장과 전시장의 주변 환경에서부터 교통편에 이르기까지 장소에 관련된 여러 요인들을 종합하고 나서 티켓을 구매한다. 문화예술 마케팅의 관리 차원이나 티켓을 판매하는 맥락에서 장소는 대체로 3가지 의미를 띠게 된다.

먼저, 공연장으로써의 장소가 있다. 널리 알려진 박물관이나 미술관 또는 공연장을 생각해보자. 어떤 특별한 장소는 그 이름만으로도 문화예술 소비자를 끌어 모으는 힘이 있다. 문화예술 소비자들은 어떤 작품만을 보고 판단하지 않고, 공연장이나 전시장의 주변 환경과 교통편에 이르는 모든 요인을 종합한 다음 작품을 선택하고 티켓을 구매한다.

국립극장, 국립중앙박물관, 세종문화회관, 예술의전당, 대영박물관, 루브르박물관, 시드니오페라하우스, 시카고미술관, 프라도미술관, 카네기홀 같은 국내외 주요 문화예술기관이나 단체는 공연장으로써의 장소라는 의미가 있다. 유서 깊은 박물관이나 미술관 또는 공연장은 그 이름만으로도 문화예술 소비자에게 신뢰감을 준다. 

   
▲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앞에서 필자(2007). /사진=김병희 교수 제공

호주 시드니의 오페라하우스는 공연 작품의 내용에 관계없이 건축물의 아름다움 자체만으로도 많은 관객과 여행객을 끌어 모은다. 이곳은 오페라, 발레, 전시, 관람, 현대 음악에 이르기까지 모든 예술 공연을 아우르는 문화예술 복합 공간이다.

보는 각도에 따라 오렌지 껍질이나 조가비 형태를 나타내는 오페라하우스에서 흥미로운 체험도 할 수 있다. 관객들은 공연장은 물론 녹음실, 도서관, 전시장도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 편리한 교통망도 갖추고 있어 공연장으로써의 장소로 손색이 없다.

소비자들은 유서 깊은 장소에서 공연이나 전시를 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문화예술작품의 질적인 수준을 신뢰하기 때문에, 박물관이나 미술관 또는 공연장의 명성과 이미지는 관객을 매료시키게 마련이다.

아이디어에 따라 소비자들의 인식을 바꿔 박물관이나 미술관 또는 공연장의 영향력을 확장할 수도 있다. 널리 알려지지 않은 학교 강당, 종교 시설, 일반 건물 같은 곳이라도 마케팅 기획자의 아이디어에 따라 문화예술 소비자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킬 방안은 얼마든지 많다.

다음으로, 대체 공간으로써의 장소라는 의미다. 최근 들어 문화예술기관이나 단체에서 '찾아가는' 공연이나 전시를 기획하는 사례들이 증가하고 있다. 이때 필요한 것이 공연이나 전시를 대체할 수 있는 장소이다.

문화예술 소비자들이 박물관이나 미술관 또는 공연장으로 찾아오게 하지 않고 문화예술작품이 그들 곁으로 다가간다면, 사람들은 일상생활에서 문화예술작품을 더 친숙하게 만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문화예술기관이나 단체에서 찾아가는 공연이나 전시를 기획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공공기관의 비어있는 공간을 활용해 찾아가는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운영한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문화예술작품을 쉽게 향유할 수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이 1990년부터 운영하고 있는 '찾아가는 미술관'은 미술 활동을 전혀 하지 않는 어린이를 대상으로 창작 워크숍 프로그램을 가동한다. 전국의 초등학교 학생들을 위해 기획된 이 프로그램은 예술가와 어린이가 소통하며 미술에 대한 공감대를 넓혔다.

이밖에도 '찾아가는 미술관 전시회', '찾아가는 해변음악회', '해변:열린 미술마당'과 같은 프로그램도 대체 공간으로써의 장소를 구현하는 활동이다. 대체 공간으로써의 장소 개념을 적용하면, 예술인과 소비자의 만남을 통해 문화예술의 대중화를 촉진하고, 건전한 여가문화를 조성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티켓 배급처로써의 장소인데, 온라인과 오프라인 영역을 두루 포괄한다. 소비자들이 티켓을 편리하게 살 수 있는 방법과 남아있는 티켓의 활용 방안을 고민하는 것도 중요하다. 마케팅 기획자는 작품과 장소에 대한 정보를 고객에게 상세히 제공하도록 티켓 판매원을 교육시키고, 티켓 배포 방법을 전략적으로 결정해야 한다.

매표소 직원은 고객의 전화 문의에 응대하거나 고객들과 직접 만나기 때문에 문화예술기관이나 단체의 브랜드 접촉점이기도 하다. 매표소 직원의 말투 하나하나에 따라 고객들은 티켓을 구매할 수도 있고 구매하지 않을 수도 있다.

문화예술기관이나 단체는 티켓 발권 대행사와 계약을 체결하고 티켓 판매의 대행을 맡길 수도 있다. 늘 그렇지는 않지만 판매 대행을 맡은 발권 대행사가 소비자들에게 높은 수수료를 부과하거나 고객에 대한 각종 정보를 독점할 가능성도 있다. 따라서 문화예술기관이나 단체의 마케팅 책임자는 발권 대행사를 결정할 때, 몇 군데를 비교해보고 나서 더욱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

   
▲ 이탈리아 피렌체 '우피치미술관' 입구에 선 필자(2016). /사진=김병희 교수 제공

이탈리아 피렌체의 우피치미술관(Galleria degli Uffizi)은 티켓을 오프라인과 온라인에서도 살 수 있고, 발권 대행사를 통해서도 구매할 수 있다. 이 미술관은 르네상스 시대의 회화가 많아 세계 최고의 르네상스 미술관으로 유명하지만, 티켓 배급처로써의 장소 개념을 구현하고 있다. 오프라인이든 온라인이든 발권 대행사든 어디에서 티켓을 사더라도 수수료가 높지 않고 고객들이 납득할만한 합리적인 가격에 티켓을 판매한다.

1560~1580년 사이에 건축된 우피치미술관은 처음에 코시모 1세 대공의 사무실로 쓰였다. 미술관의 역사는 코시모의 후계자들이 1581년부터 예술 작품을 전시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메디치가의 수장고에 있던 미술품들은 1737년에 피렌체시에 기증되었고, 이후에도 수많은 작품이 기증되어 세계적인 미술관으로 자리 잡았다. 2500여점에 이르는 미술품이 45개의 전시관에 선보이고 있다. 이 미술관에 가면 보티첼리의 <봄>과 <비너스의 탄생> 같은 원작을 감상하며 특별한 아우라를 경험할 수 있다.

장소의 3가지 의미에서 놓치지 말아야 가장 중요한 사실은 문화예술작품이 소비자들과 만날 수 있는 접점을 제공한다는 점이다. 공연장으로써의 장소든, 대체 공간으로써의 장소든, 티켓 배급처로써의 장소든, 소비자들은 그 장소에서 작품을 감상하며 황홀경을 체험한다.

"하느님이 가장 좋아하는 장소는 사람의 가슴"이라는 유대인의 속담처럼, 문화예술 소비자들은 그곳에서 감동의 무늬를 가슴에 새기고 돌아오기 때문에 장소가 제공하는 접점의 의미는 그토록 중요한 법이다. /김병희 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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