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 허용조건 명시한 모자보건법 전면개정 필요
보건복지부 '의료관계행정처분규칙'도 폐기해야
[미디어펜=김규태 기자] 1953년 형법에 규정됐던 낙태죄가 11일 헌법재판소(헌재)의 결정으로 66년 만에 '위헌' 판단을 받아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면서, 현재 진행중인 재판에 대한 후속조치와 관련법 개정이라는 입법과제가 남게 됐다.

헌재는 이날 산부인과 의사 A씨가 자기낙태죄·동의낙태죄를 규정한 형법 269조1항·동법 270조1항이 위헌이라며 낸 헌법소원 사건에서 재판관 7 대 2 의견으로 위헌 결정했다. 구체적으로는 4(헌법불합치)·3(단순위헌)·2(합헌)의 의견으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헌법불합치'는 해당 법률이 사실상 위헌이지만, 즉각적인 무효화에 따르는 법 공백과 사회적 혼란을 피하기 위해 법 개정 전까지 한시적으로 그 법을 존속시키는 결정이다.

이번 결정에 따라 내년 12월31일까지 국회가 형법 해당 조항(269·270조)을 개정하지 않을 경우, 낙태죄 규정은 폐지되고 시한이 만료된 낙태죄의 법률 효력은 사라진다.

단 법 개정 전까지는 한시적으로 법 효력이 존속되기 때문에 형법 해당 조항과 결부된 모자보건법 14조도 여전히 유효해, 이에 대한 법 개정도 과제 중 하나다.

모자보건법은 인공임신중절수술(낙태)의 허용범위와 그 조건을 명시한 것으로, 보건복지부는 이것과 형법을 결부시켜 의사의 낙태진료에 대해 '의료관계행정처분규칙'을 통해 1개월간 면허를 정지하고 있다.

모자보건법 14조에 따르면 의사는 (임신 24주 이내인 경우에만) 대통령령에서 정한 정신장애 및 질환이 있거나 강간·준강간에 의한 임신, 법률상 혼인이 불가한 혈족·인척간 임신, 임부의 건강을 심각하게 해치는 경우만 낙태 수술을 할 수 있다.

이러한 조항 때문에 무뇌아 등 생존 자체가 거의 불가능한 태아를 낙태해도 산모와 의사 모두 처벌 대상이 된다.

   
▲ 1953년 형법에 규정됐던 낙태죄가 11일 헌법재판소(헌재)의 결정으로 66년 만에 '위헌' 판단을 받아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자료사진=연합뉴스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이날 헌재가 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자 보건복지부 '의료관계행정처분규칙'을 즉각 폐기할 것을 요청하면서, 낙태 허용범위를 명확히 해 환자 진료권을 보장하고 개인 신념에 따라 낙태수술을 거부하는 의사를 환자들이 진료거부로 문제제기하지 않도록 후속조치를 요구했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 김동석 회장은 이날 "현행법은 산모와 관련된 사항만 반영돼 있고 태아에 관한 사항은 없다"며 "낙태 허용 시기도 산모, 태아마다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일괄 규정하기 어렵다. 정밀초음파는 임신 24∼26주 보는데 뇌질환 등 치명적 질환이 늦게 발견되기도 한다"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한 산부인과 전문의는 이날 헌재 결정에 대해 "모자보건법에는 임산부가 유전학적 정신장애가 있거나 풍진 같은 전염성질환이 있는 경우 낙태를 허용하지만 선천성 기형아를 허용하지 않는 모순이 여전하다"며 "1973년 개정됐다고 하지만 의학적 상황을 제대로 반영 못하고 현실 속 임산부들이 처한 고민과 선택을 구속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금까지 법대로 해왔다면 대한민국 모든 의사가 낙태수술을 해주지 말아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렇지 않았다"며 "낙태하려는 산모는 어디서든 한다. 낙태가 힘들수록 수술 비용만 높아진다. 이제는 현실을 감안해 법을 개정해야 할 때"라고 덧붙였다.

헌재는 이날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제한하고 있어 침해의 최소성을 갖추지 못했고 태아의 생명보호라는 공익에 대해서만 일방적이고 절대적인 우위를 부여해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했다"며 "다만 낙태죄 규정을 곧바로 폐지해 낙태를 전면적으로 허용할 수는 없다는 판단에 따라 2020년 12월 31일까지 법조항을 개정하라"고 밝혔다.

헌재가 이날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면서 사건의 직접 당사자인 A씨를 포함해 낙태죄로 기소되어 재판중인 피고인들에게는 공소기각에 따른 무죄가 선고될 것으로 관측된다.

또한 7년전 헌재가 합헌 결정을 내린 후 기소되어 형사처벌된 피고인들의 재심청구도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향후 국회가 의학적 판단과 현실을 감안해 모자보건법의 '낙태 규정' 조항을 어떻게 개정할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