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렌식 명령 위반 등 발각…조기패소판결 등 제재 요청
[미디어펜=나광호 기자]LG화학은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에서 진행 중인 영업비밀침해 소송의 '증거개시' 과정에서 드러난 SK이노베이션의 광범위한 증거인멸 등을 이유로 강도 높은 제재를 요청했다고 14일 밝혔다.

지난 4월29일 LG화학이 ITC에 소송을 제기한 바로 다음날에도 이메일을 통해 자료 삭제를 지시하는 등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증거인멸 행위를 지속한 것으로 보이는 정황이 드러났다는 것이다.

LG화학은 13일(현지시각) 67페이지 분량의 요청서와 94개 증거목록이 ITC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됐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르면 LG화학은 SK이노베이션의 증거보존 의무를 무시한 것과 ITC의 포렌식 명령을 준수하지 않은 '법정모독 행위'를 근거로 SK이노베이션의 패소 판결을 조기에 내려주거나 영업비밀을 탈취해 연구개발·생산·테스트·수주·마케팅 등 광범위한 영역에서 사용했다는 사실 등을 인정해 달라고 요청했다.

   
▲ 서울 광화문 SK서린빌딩(왼쪽)·여의도 LG트윈타워/사진=미디어펜


일반적으로 원고가 제기한 조기 패소 판결 요청이 받아들여질 경우 '예비결정' 단계까지 진행될 것 없이 피고에게 패소 판결이 내려지게 되며, 이후 ITC 위원회에서 '최종결정(Final Determination)'을 내리면 원고 청구에 기초해 관련 제품에 대한 미국 내 수입금지 효력이 발생한다.

LG화학은 내용증명 공문을 발송한 4월8일 SK이노베이션이 7개 계열사 프로젝트 리더들에게 자료 삭제와 관련된 메모를 보낸 정황이 발견됐으며, 같은달 12일에도 75개 사내 관련조직에 삭제지시서를 보내는 등 소송제기 이전부터도 전사차원에서 증거인멸 행위를 해왔다고 주장했다. 

이어 SK이노베이션이 제출한 'SK00066125' 엑셀시트는 삭제돼 휴지통에 있던 파일이며, 이 시트 내에 정리된 980개 파일 및 메일이 소송과 관련이 있는데도 단 한번도 제출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근거해 ITC에 포렌식을 요청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ITC는 지난달 3일 "980개 문서에서 'LG화학 소유의 정보'가 발견될 구체적인 증거가 존재한다"며 "LG화학 및 소송과 관련이 있는 모든 정보를 찾아서 복구하라"고 명령한 바 있다.

   
▲ SK이노베이션의 2019년 4월30일 사내 메일./사진=LG화학


그러나 SK이노베이션은 ITC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980개 문서가 정리된 한 개의 시트를 조사했으며, 나머지 74개 시트에 대해서는 자체 포렌식을 진행하고 있었다는 것이 증인조사 과정에서 드러난 것으로 전해졌다.

LG화학은 포렌식 진행시 LG화학측 전문가도 한 명 참석해 관찰할 수 있도록 하라는 ITC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조사과정에서 LG화학측 전문가를 의도적으로 배제시키는 등 포렌식 명령 위반 행위를 지속했다고 강조했다.

LG화학 관계자는 "SK이노베이션이 탈취한 영업비밀을 이메일 전송과 사내 컨퍼런스 등을 통해 관련 부서에 조직적으로 전파해온 것으로 보인다"며 "SK이노베이션 서산공장, LG화학 난징·폴란드 공장의 코터 스펙을 비교하고 해당 기술을 설명한 자료 등을 사내 공유 했다는 내용이 발견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SK이노베이션은 전직자들을 고용함으로써 발생 가능한 법적 리스크에 따라 마케팅·생산 분야 인력과 배터리 셀 연구개발 인력을 분류해 관리한 내용도 발견됐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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