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선 인력 충원·재정 지원 호소…'일시보호' 쉼터 확대도 관건
[미디어펜=김규태 기자] 오는 13일 정인이 양부모의 아동학대·학대치사·유기·방임 혐의에 대해 첫 재판이 열리는 가운데, '정인이 사건' 등 아동학대의 실제 예방·해결을 위한 전담공무원제가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전담공무원제는 지난해 10월 1일 도입됐다. 그 후 석달이 지났지만 아직 아동학대에 제대로 대응하기 위해선 갈 길이 멀다는 평이 많다.

아동학대 조사업무를 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 각 지방자치단체로 이관했는데, 일선 현장에선 전담공무원에 대한 안전대책과 재정 지원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높다. 특히 '기피 보직'으로 찍혀 지원자가 없어 제비뽑기로 전담공무원을 차출하는 실정이다.

   
▲ 양부모의 학대로 생후 16개월 만에 사망한 정인 양이 안치된 경기도 양평군 하이패밀리 안데르센 공원묘원에 추모 메시지와 꽃들이 놓여 있다./사진=연합뉴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12월까지 전국 228개 시군구 중 118곳에 290명 배치됐다. 나머지 110개 시군구에는 아동학대전담공무원이 없다. 올해 보건복지부는 전국 228개 전체 시군구로 664명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지난 2019년 보건복지부가 집계한 아동학대 신고는 4만 1388건인데, 이중 학대로 판단된 사례는 3만 70건으로 확인됐다. 현재 배치된 290명을 기준으로 동일한 아동학대 사건을 담당한다고 가정하면 1인당 103.7건을 맡게 된다.

문제의 핵심은 예산 부족과 매뉴얼의 비현실성이다.

서울 한 자치구에서 아동학대 업무를 맡고 있는 공무원 A 씨는 11일 본보 취재에 "야간이나 주말에도 신고가 들어오면 아동학대가 맞는지 출동해야 해서 24시간 긴장하고 있다"며 "밤낮으로 현장에 나간다고 보면 된다"고 전했다.

그는 "매뉴얼은 있지만 매뉴얼대로 하기가 무척 힘들다. 피를 말릴 정도"라며 "사무실 전화번호를 내 개인 스마트폰으로 착신전환하는 것은 기본이고 아동학대 피조사자(부모)가 퇴근한 늦은 오후에 가정을 방문한 후 피해아동 응급조치까지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아동학대 사례가 천차만별"이라며 "부모가 조사를 거부하거나 보복성 연락 등 협박하는 경우도 있고 피해아동이 다수이거나 영유아라 의사소통 문제도 많다"고 덧붙였다.

특히 그는 "아동학대 업무 수행을 위해 카시트, 공용스마트폰 등이 필요하지만 아동학대 상담실 구축비 2000만 원을 제외하면 편성된 예산이 없어서 다른 지자체는 전담공무원이 자비를 쓰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현직 아동학대전담공무원이 글을 올려 추가지원과 안전대책을 호소했다.

게시글 2건 모두 '정인이 사건'이 전 국민에게 알려져 공분을 사기 전 게재된 것으로, 청와대 답변 기준에 미달하는 동의 숫자(각 5454명·987명 동의)로 청원 마감됐다.

청원인 'naver-***' 씨는 지난달 2일 올린 글에서 "국가와 지자체는 공무원을 사용하는 사용자로서 최소한의 직원안전대책 및 재정적 지원이 필요하다"며 "밤 9시 조사 종료가 기본이고 응급조치라도 하는날엔 새벽 2시, 3시 퇴근도 허다하다"고 밝혔다.

그는 비용과 관련해 "보건복지부는 각 지자체에 전담공무원이 갖추어야 할 환경에 업무용차량, 업무용휴대폰, 녹음기, cctv가 설치된 상담실 등이 필요하다고 했는데 왜 예산은 0원입니까"라며 "모든 예산부담을 지방비로 부담하라고 합니다"고 지적했다.

이어 "아동이 신체적으로 학대를 당했다면 의료기관으로 조치하라고 합니다. 그 의료비는 누가 부담하나요"라며 "국가와 지자체에 학대피해아동에 대한 의료비가 단 1원도 편성되지 않았는데 저희가 자비로 부담하라는 건가요"라고 반문했다.

특히 청원인은 "저의 11월 초과근무시간은 95시간이고, 이중 제게 지급되는 수당은 57시간이겠네요. 하루에 4시간씩만 인정되니까요"라며 "올 1월에 결혼하고 전 신혼생활도 못 보내고 아이를 가지고 싶어도 엄두 못내고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청원인은 "예산을 세웠지만 지역은 업무용 휴대폰이 없어서 자비로 휴대폰을 개통한 곳도 많다. 야간에는 출장비도 없다. 이 업무를 수행한 2달이 지옥같다"고 하소연했다.

또다른 청원인 'kakao-***' 씨는 지난달 4일 글을 올려 "어느 누구도 선뜻 전환되어 아동보호전담일을 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며 "전환시켜 놓고 어떤 처우도 당연히 없을 뿐더러 고용체계는 전국이 각기 다른 공무직-신입공무원-임기제공무원-시선제공무원-기간제근로자-계약직근로자 여러 형태로 되었으며 같은 일을 하며 모두가 다른 형태의 처우를 받고 있는 기막힌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인력 또한 턱없이 부족한 상황으로 인력충원을 요청해도 예산이 없다는 답밖에 돌아오지 않았다"며 "아동을 보호해야 하기에 병원을 데리고 가야 하며 밥을 사 먹여야 하고 아직 세워져 있지 않은 예산 때문에 직접 사비를 들여야 하는 상황이다. 업무를 맡으면서 두통약을 달고 살고 있다. 2달 밖에 되지 않았는데 너무 지쳐 있으며 아동을 보호해야 한다는 책임감에 몸과 마음이 무척 힘든 상태"라고 덧붙였다.

아동학대를 어떻게 해야 한다는 정치권 말은 많지만 일선 현장에서 전담공무원들이 바라는 것은 한 방향으로 좁혀진다.

바로 전담인력 충원과 처우 개선, 예산 지원이다.

또한 아동학대 확인 즉시 분리 조치를 하는 경우를 위해 전국 시군구에 아동학대 쉼터를 대폭 확대하고, 예산 부족으로 쉼터 확대가 불가능할 경우 그룹홈 등 시설에서 일시보호할 수 있는 정책과 지원이 필요하다.

아동학대 사례를 공유한 후 분노하고 슬퍼하는 것은 아무런 실효성이 없다. 보건복지부가 예산 문제를 해결하고 지속적인 재정 투입과 인원 충원에 나서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