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3년 발의됐지만 포괄적이라는 이유로 논의 진척 없어
'LH 사태' 이후 정치권에서 처리 필요성 목소리 높아지고 있어
LH 일부 직원들의 투기성 부동산 매입이 대한민국을 뒤흔들고 있다. 공정이 파괴되는 또 다른 현장을 목도하면서 우리 국민들의 상실감이 극에 달하고 있고, 그런데 LH 투기 의혹 파문은 사전에 방지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이해충돌방지법이 진즉 입법됐더라면 공직자들에 의해 공정이 깨지는 ‘배신의 시대’는 방지됐을 것이라는 얘기가 설득력을 드러내고 있다.

이에 본보는 지난 19대 국회부터 국회에 발의만 되면 제대로 논의도 해보지 못하고 폐기됐던 이해충돌방지법에 관한 연속 기획 기사를 마련했다.

시리지 순서 : ① 제3자·친척까지 막으려면 ② 미공개 정보 제한이 핵심 ③ 9년 묵은 이해충돌방지법, 입법까지 첩첩산중 ④ '제 목에 방울달기' 이번에는 다르다? ⑤ 국민권익위 복안은 ⑥ 전문성과 이해충돌 사이에서 ⑦ 결국 국회의 '추악한 민낯' 드러낸 입법 장난 [편집자 주]

[미디어펜=조성완 기자]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투기 의혹 사태가 불거지자 국회는 뒤늦게 이해충돌방지법 제정에 속도를 붙이고 있다. 지난 2013년 처음 발의된 이후 9년 동안 방치된 법안을 이제야 처리하겠다는 것이다.

이해충돌방지법은 공직자가 직무상 비밀을 이용해 재산상 이익을 취득하는 것을 금지한다. 지난 2013년 처음 제출된 법안에는 부정청탁을 금지하고 공직자의 이해충돌을 방지하는 내용이 포괄적으로 담겼다.

해당 법안은 당시 국민권익위원회가 심사숙고해 만든 법안으로 8개 정부 기관의 의견은 물론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등 시민단체들과 공청회를 거친 뒤 국회에 제출됐다. 

하지만 지난 2015년 청탁금지법(김영란법)이 통과될 당시 이해충돌방지법은 입법에서 제외됐다. 적용 범위가 너무 넓어 규정이 포괄적이기 때문에 공직자의 정상적인 공무를 방해할 수 있다는 게 이유였다.

   
▲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7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부동산관계장관회의를 마치고 '부동산 관련 국민께 드리는 말씀'을 발표하기 전 인사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대지 국세청장, 구윤철 국무조정실장, 홍남기 부총리,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 이재영 행정안전부 차관./사진=연합뉴스

김영란법 통과 당시 이행충돌방지 규정만 빼고 법안이 처리된 것을 두고 국회를 향한 비판 여론이 형성되자 당시 국회 정무위원회는 추후 심사를 통해 법안 처리를 약속했었다. 국민권익위원회가 지난 19·20대 국회에서도 법안 통과를 추진했지만 국회에서 더 이상의 논의는 이뤄지지 않았다.

국회가 이해충돌방지법의 처리를 차일피일 미루는 사이 논란은 계속 터져 나왔다. 가장 대표 적인게 박덕흠 무소속 의원 일가 건설사의 '피감기관 수천억원대 공사 수주' 이해충돌 논란이 다. 논란이 불거진 금액만 3000억 원에 이를 정도로 국회 역사상 최대의 이해충돌 사건이다. 

문제는 이를 조사할 마땅할 법안이 없었다는 점이다. 만약 이해충돌방지법안이 존재했다면 박 의원은 지난 2015년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위원으로 입성 자체가 불가능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지난 20대 국회에서 손혜원 전 의원의 이해충돌 논란을 거쳐, 21대 국회에서 박 의원까지 법안 처리의 필요성은 수차례 제기됐지만 그때 뿐인 셈이다. 그 여파는 전국민적 공분을 사고 있는 현재의 LH 사태까지 발생시켰다.

전현희 국민권익위원장은 지난 14일 “국회가 이해충돌방지법을 조속히 입법화 해 국민들의 공분에 응답할 필요가 있다”면서 “이해충돌방지법이 제정됐다면 공직자들의 사익 추구 행위를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전 위원장은 특히 “이해충돌방지법은 200만 공직자들에게 적용되는 법”이라며 "만약 이해충돌방지범이 제정됐다면 사적이해관계 신고와 직무 회피 규정으로 공직자들의 사익추구 행위를 원천 차단할 수 있어 이번 LH사태가 아예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회는 뒤늦게 해당 상임위인 정무위에서 공청회 일자를 잡는 등 이해충돌방지법 제정에 두팔을 걷어붙였다.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는 지난 15일 '공직자 투기·부패근절 대책TF' 회의에서 “이번 기회에 공직사회에서 투기를 비롯한 부패를 뿌리뽑아야 한다”며 “공직사회 투기를 근절하고 재발방지 위한 제도적 입법화가 아주 중요하다. 공직자 투기 및 부패방지 5법을 최우선 입법과제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민주당은 △공직자 사전적 예방 법률과 사후적 방지 처벌을 위해 이해충돌방지법 신속 처리 △공직자 윤리법과 토지주택공사법 개정으로 사전 예방 시스템 확립 △공공주택법 개정으로 처벌 범위 확대 및 부당이익 환수 등 포괄적이고 실효적 제재 부과 △불공적 거래행위 금지와 부동산거래분석원을 설립하는 등 부동산 거래질서 규율 체계를 확립하는 부동산거래법 추진을 약속했다.

   
▲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직무대행이 15일 국회 원내대표회의실에서 열린 공직자 투기-부패근절 대책TF 전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사진=더불어민주당 제공
김 직무대행은 “다시는 공직자가 투기와 비리를 엄두도 내지 못하도록 제도를 더욱 강화해 나갈 것이고, 이를 통해 문화로 정착시켜 나가겠다”면서 “공직자 투기 및 부패방지 입법은 미꾸라지 한마리 빠져 나갈 수 없는 튼튼한 그물망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처벌과 방지 규정을 얼마나 엄격하게 적용할지, 법안의 직접적인 이해당사자인 의원들이 적극적으로 나설지는 지켜봐야 할 사안이다.

이와 관련, 이번 LH 사건을 고발한 참여연대는 최근 논평을 통해 "제정안에는 직무상 알게 된 정보에 대한 이용금지 및 미공개 정보를 통해 경제적인 이득을 취한 본인, 제3자 처벌과 고위공직자의 사적 이해관계자 신고 및 공개 등의 내용이 담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치권을 향해서도 "이해충돌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법 제정을 약속해왔는데, 이젠 말이 아니라 행동이 필요하다"라며 "국회 정무위원회의 민주당과 국민의힘 간사는 오늘이라도 당장 공청회 일정을 확정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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