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무범위·기준·대상 모호…의정활동·공무 집행시 '사익 배제' 어렵다는 한계
[미디어펜=김규태 기자] 사전 미공개 정보를 악용한 공직자들의 부동산 투기 문제가 불거지자 여권은 '이해충돌방지법'을 들고 나왔지만 갈 길이 멀다.

'이해충돌'이라는 개념은 지난 20년간 법조계에서 꾸준히 언급되어 왔지만 그간 입법 못한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19~20대 국회를 통틀어 수십 건의 관련 발의안이 나왔지만 소관 상임위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임기만료 폐기됐다.

현행 공직자윤리법 2조 2항에는 '이해충돌 방지 의무'가 있지만 위반 시 제재 조항이 없어 선언적 규정에 그친다. 지금과 같은 온 국민의 공분을 가라앉히고 공직자들이 공익 보다 사익을 추구하지 않도록 이해충돌방지법을 완비할 필요가 있다.

이해충돌방지법을 제대로 입법하기 위해서는 그간 지적되어 온 맹점을 보완해야 한다.

   
▲ 지난 2013년 처음 발의된 이해충돌방지법은 2015년 김영란법이 통과될 당시 '적용 범위가 너무 넓다'는 이유로 입법에서 제외됐다. /사진=연합뉴스
우선 앞서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일명 김영란법) 제정 당시 나왔던 한계점으로, 이해충돌 방지에 적용해야 하는 공직자들의 직무 범위와 그 기준이 모호하다.

국회의원들의 의정활동도 마찬가지다. 국회법에서 상임위 위원선임 및 안건심의에 대해 '이해충돌 회피' 의무를 명시하고 있지만, 회피의 주체는 국회의원 본인이 아니라 의장이나 교섭단체 대표다.

직무 범위 차원에서도 지역구 국회의원의 경우 지역 연고와 재산이 있을 수밖에 없다. 유권자들의 지역 개발 요구가 의원 자신의 이해충돌로 이어지는 구조다. 비례 국회의원의 경우, 대다수가 자신의 전문성을 인정받아 국회에 입성한 것인데 자신이 배정받은 국회 상임위 입법활동 전부 논란의 여지가 있다.

또한 대통령 등 청와대의 정책 입안, 각 부서 장관들의 활동, 선출직이 아닌 일반 공무원들의 정부 정책 수행시 사익과 공익의 추구를 뚜렷하게 나누는 게 어렵다.

부장판사 출신의 한 법조인은 11일 본보 취재에 "이해충돌의 문제는 일반화가 어렵다는데 있다"며 "공직자도 신분이 여러가지다. 이번에 문제가 불거진 것은 지방공사, 공기업인데 계약직 공무원부터 일반 공무원, 선출직 공무원 등 각자가 처한 신분과 상황이 천차만별"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다양한 상황을 법률 규정을 통해 어떻게 구체화하느냐가 관건"이라며 "각 공직자의 정확한 신분 정의가 우선되어야 하고 그 다음에는 직무 범위와 대상, 정보 접근 권한과 직무관련 미공개정보의 구득 여부를 명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어느 공직자든 그 직무 범위와 대상은 우리 국민 5천만 명의 생계와 재산, 권리에 관계되어 있다"며 "징벌적 벌금 등 사후 처벌을 강화하는 것과 별개로 공직자의 권리와 범위, 정보 접근을 최대한 줄여서 이해충돌 자체를 사전에 예방해야 한다"고 밝혔다.

지방청에 근무하는 현 현직 부장검사는 이날 본보 취재에 "업무상 취득을 규명해야 혐의를 적용할 수 있다"며 "현직 공직자를 제외하면 처벌 범위가 좁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미공개 내부 정보를 피의자들이 사전에 이용했다고 쉽게 인정하지 않는다"며 "비슷한 유형의 어느 사건이나 유죄를 장담하기 어렵다. 명확한 증거가 있어야 한다"고 전했다.

   
▲ 문재인 대통령은 3월 10일 공직자들의 '신도시 땅 투기' 의혹에 대해 "공직자 이해충돌을 방지하는 입법까지 이번에 나아갈 수 있다면 투기 자체를 봉쇄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번에 불거진 공직자들의 부동산 투기 문제에 대해 '주식백지신탁제도'를 본따 '부동산백지신탁제도'를 도입해 해결하자는 법조계 의견도 나온다.

투지주택 관련 공기업, 지방공사, 관련 부처에 일하는 공직자, 여야 국회의원 전원이 재직시 자신의 부동산 운용을 완전히 일임하는 정도의 강력한 수단을 써야 한다는 지적이다.

앞서 김영란법을 만들 당시에도 논의 과정에서 이해충돌 방지에 대한 규정이 복잡하고 여야 이견이 커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공직자들의 부동산 투기에 대한 형사처벌 등 사법적 접근도 현실적으로는 장애물이 많다. 토지 취득과 업무 연관성의 규명이 관건인데, 공직자 당사자가 미공개 정보로 토지를 취득했는지 여부를 입증하기 어렵다.

우리나라 부패방지법에는 부당이득에 관한 몰수 규정이 있지만, 이를 적용하려면 업무와의 '직접적인 연관성'을 규명해야 하는 구조다.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겨도 되는지, 국민은 묻고 있다. 정부가 칼을 빼들었다는데, 구조적인 허점을 메울지 의문이다. 처벌을 강화하더라도 사전 예방책이 제대로 마련되지 않는한, 이번과 같은 공직자 부정부패는 또 일어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