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성차 업계 고임금‧다인력 구조 못 고치면 도태 불가피
쌍용차 생산직, 절반 무급휴직 해도 공장 운영 문제 없어
[미디어펜=김태우 기자]기본급 인상과 함께 보다 낳은 일자리를 위해 강경대응도 불사하겠다며 하투에 나서고 있는 국내 완성차 노동조합들의 집단이기주의에 대한 경고음이 커지고 있다. 코로나19 위기 속에서 고임금만 주장하는 완성차 노조들이 쌍용자동차 사태를 잊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때 대한민국 1%라는 슬로건으로 고급화된 자동차를 선보이며, 고공행진을 구가했던 쌍용차지만 현재는 새로운 주인을 찾아야 하는 슬픈 현실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자동차 산업의 고질적인 문제로 꼽히는 고임금·다인력 구조의 문제가 가장 치명적이었다. 

   
▲ 수출을 위해 평택항에 대기중인 완성차. /사진=미디어펜


그럼에도 현재 완성차 업계 노동조합들은 여전히 높은 임금과 복지를 목소리 높이고 있는 실정이다. 자동차 산업이 전기차로의 패러다임 전환 속도가 빨라지고 있는 만큼 현재의 일자리 보존이 우선시 돼야 한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17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지난주 여름휴가 복귀이후 조업에 들어간 완성차 업체들은 임단협과 관련해 특별한 변화 없이 지나갔다. 업계에서는 휴가 복귀 이후 파업에 들어갈 것이라는 전망도 있었지만 다행이 잠잠한 한주를 보냈다. 

당초 기아와 한국지엠, 르노삼성자동차는 교섭 일정을 잡고 임금인상안에 대한 노사간 이견을 조율할 예정이었다. 현대자동차는 여름휴가 전 교섭 타결에 성공했고, 쌍용자동차는 법정관리 체제 하에서 자구안의 일환으로 교섭 없이 올해 임금‧복지 조건을 2019년 수준으로 동결했다.

기아의 경우 사측이 협상안을 제시했지만 아직 이에 대한 피드백은 없는 상태로 알려졌다. 이미 지난 10일 쟁의행위 찬반투표에서 노합원들의 의견을 모아 파업권을 확보한 상태지만 아직 이에 대한 움직임은 없는 상태다. 

다만 과거 현대차와 동일한 조건에 타결해왔던 전례를 감안하면 미타결 3사 중 가장 빠르게 마무리 지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기아 사측은 교섭 재개와 함께 현대차 타결 내용과 비슷한 수준의 △기본급 7만원 인상(정기호봉 승급분 포함) △경영 성과금 200%+350만원 △품질향상 특별격려금 230만원 △재래상품권 10만원 △주간연속 2교대 20만포인트 등의 내용을 골자로 한 제시안을 전달했다. 

기아 노조는 휴가 전 소식지를 통해 현대차 노사가 합의한 연간 임금성 총합이 1인당 평균 1806만원이라고 전하며 조합원들에게 여름휴가 이후 교섭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최대 쟁점은 노조 별도요구안에 포함된 '신규인원 충원'이 될 전망이다. 기아 노조는 퇴직에 따른 인원 자연감소분을 충원하라는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올해 임협 마무리는 없다며 서울 양재동 본사 앞에서 1인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사측은 전기차 전환에 따른 생산직 수요 감소를 이유로 신규인원 충원에 난색을 표해왔다.

   
▲ 기아 광주공장 정문. /미디어펜


한국지엠은 노사간 1차 잠정합의안까지 마련했었다가 지난달 27일 조합원 찬반투표에서 부결되며 교섭이 원점으로 되돌아갔다.

노조는 확대간부합동회의, 교섭대표 회의와 쟁대위 회의 등을 열어 교섭 방향과 투쟁 수위를 결정할 방침이다.

사측과 합의안을 도출했던 노조 집행부로서는 리더십에 타격을 입은 모양새라 진일보된 2차 잠정합의안 마련이 여의치 않을 경우 강경세로 나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국지엠 노조는 이미 지난달 조합원 찬반투표와 중노위 쟁의 조정 중지 결정 등으로 파업권을 확보한 상태다.

부결된 1차 잠정합의안의 주요 내용은 기본급 3만원 인상(호봉승급 포함), 일시·격려금 450만원 지급 등이었다. 인당 평균 지급액이 1800만원에 달하는 현대차의 교섭 결과를 본 한국지엠 노조원들의 상대적 박탈감이 교섭 타결에 불리하게 작용했다는 게 업계 시각이다.

다만 찬반투표에서 반대가 51.2%(3441표)로 찬성(48.4%, 3258표)과 차이가 크지 않다는 점에서 사측이 노조 집행부의 면을 세워줄 만한 추가 제시안을 내놓을지 여부가 관건이 될 전망이다.

특히 스티븐 키퍼 GM수석부사장 등 최고경영진은 이달 한국지엠 방문 일정을 잡 았다가 최근 취소했다. 지난달 26~27일 한국지엠 임금협상 잠정합의안 노조 찬반 투표에서 절반이 넘는 51.15%(3441명)가 반대표를 던져 합의안이 부결된 데 따른 결정이다.

업계에서는 이번 본사 최고경영진의 방문에 한국지엠의 유리한 투자계획이 있었을 것이라고 봤지만 계획이 무산된 처지에 놓였다. 이에 노조에서 보일 행보의 변화도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지난해 임단협을 마무리 짓지 못한 르노삼성은 사측이 휴가 직전인 지난달 26일 올해 임협까지 포함한 2년치 통합 제시안을 내놓은 상태다.

노사는 사측 제시안을 놓고 28일 밤늦게까지 사흘 연속 집중 교섭을 벌였으나 합의에는 실패했다. 사측은 2020·2021년 임단협을 통합 교섭하고 2년치 기본급을 동결하는 대신 이에 따른 보상금 200만원과 생산성 격려금 1인당 평균 200만원 등 총 800만원의 일시금을 지급할 것을 제시했다.

노조는 지난해와 올해 기본급을 동결하면 2018년부터 4년 연속 동결하는 것이라며 반대급부로 일시금을 더 높여줄 것을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사측이 부산공장 유연성 확보를 위해 내년 2월까지 부품 수급 등에 따른 가동 중단시 개인 연차 5일을 소진할 것을 제안한 것에 대해서도 반발하고 있다.

현재 르노삼성의 대표노조는 지난 6월 제3‧4노조의 재교섭 요구에 따른 교섭 창구 단일화 절차로 인해 지난해 임단협 당시 확보했던 쟁의권을 상실한 상태지만, 이번 주 속개되는 교섭이 지지부진할 경우 다시 쟁의권 확보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 한국지엠 부평공장 입구 홍보관. /사진=미디어펜


다만, 휴가 전 마지막 교섭이었던 지난달 28일 노사간 이견을 좁히지 못했음에도 '결렬' 대신 '정회'를 선언하고 휴가 뒤 속개하기로 한 만큼, 이번 주 중으로 합의안이 도출될 가능성도 예상된다.

이에 업계에서는 쌍용차의 상황을 무시할 수 없다는 지적을 하고 있다. 

쌍용차의 직원 수는 올해 3월 기준 4732명에 달한다. 지난해 이들의 평균 연봉은 6600만원이었다. 지난 수 년간 임금을 동결하면서 현대차나 기아와 같은 메이저 완성차 업체에 비해 낮아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국내 생산직 업종을 통틀어 최상위급이다.

산술적으로 이 회사를 인수해 운영하려면 연간 3000억원이상의 인건비를 감수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지난해 쌍용차는 10만591대를 팔았다. 재료비, 부품비, 개발비, 마케팅비 등을 제외하고도 대당 300만원이상을 남겨야 간신히 손익분기점을 맞출 수 있단 얘기다. 단순계산으로 최저 가격이 1689만원인 티볼리에 300만원 이상의 인건비가 투입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쌍용차는 지난 7월부터 자구계획의 일환으로 생산직 인원 절반이 1개월씩 돌아가며 쉬는 순환 무급휴직에 돌입했다. 인원 구조조정을 하지 않으면서도 인건비를 줄이기 위한 절박함에서 도출한 아이디어였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절반의 인원이 없어도 공장이 잘 돌아가고 있음을 증명하는 결과를 만들었다. 

7월 쌍용차는 100%의 인원이 투입되던 시기와 마찬가지로 8000대 이상의 차량을 만들어 팔았다. 

이는 쌍용차만의 문제가 아니다. 향후 스마트 펙토리화와 전기차로의 패러다임 전환이 된다면 자동차의 부품수도 줄고 더 많은 인력이 없어도 생산과 공급이 가능해진다. 이런 상황에서 양질의 일자리만을 고집하고 더 많은 인력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노조 리스크를 바라보는 국민 여론의 악화는 결국 브랜드 경쟁력 저하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며 "여름 휴가 전 교섭이 실패했지만, 추석 전까지 최대한 합의안을 도출해 파업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피할 수 있도록 노사 모두 노력해야 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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