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튜어드 코드십, 투자 기업 경영진 압박 수단으로 부상 가능성
수탁위원들, 이해 관계자 추천 한계점…소송 주체 부적합 지적
상장협 "연금 사회주의…지침 개정 아닌 법적 근거부터 마련해야"
[미디어펜=박규빈 기자]국민연금공단이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수탁위)에 대표소송 권한을 넘기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에 따라 수탁위가 3월 정기 주주 총회를 기점으로 투자 대상 기업 경영진에 대한 전방위적 대표소송에 나설지 이목이 집중된다. 국민연금은 내부 지침 일부 개정을 통해 대표소송을 가능케 한다는 입장이나, 재계에서는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 국민연금공단 전주 사옥 전경./사진=연합뉴스

14일 재계에 따르면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는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에 대표소송 개시 권한 위임을 추진하고 있다. 주주 대표소송은 주식회사가 이사에 대한 책임 추궁에 태만할 경우 주주가 나서서 이사에게 직접 법적 책임을 묻는 행위를 의미한다. 따라서 비공개 대화나 의결권 행사보다도 더욱 강경한 수탁자 행동이라고 할 수 있다.

국민연금공단이 내부 지침을 변경할 경우 수탁위는 다중 대표소송까지 제기할 수 있다. 기존대로라면 상법이 규정하는 대표소송을 낼 수 있는 자격을 지닌 주주는 피고인(이사)이 속한 회사의 주주에 한정됐었다. 그러나 2020년 개정된 상법은 모회사의 주주가 자회사 소속 이사에게도 문책할 수 있게 규정한다.

기본적으로 모회사가 발행한 주식 1% 이상을 보유한 주주만 대표소송을 걸 수 있도록 돼있다. 하지만 모회사가 상장된 회사이고, 해당 회사의 주식 0.5% 이상을 6개월 이상 보유한 주주일 경우에도 제소 자격을 갖게 된다.

이는 곧 지주사 지분을 일부 보유한 경우 수탁위가 경영진에 대해 전방위적 법적 책임도 물을 수 있게 한다는 의미와도 같다. 넓은 관점에서 보면 대표소송제는 ESG 경영 의식 제고 차원에서 진행되는 것으로 볼 수 있으나, 기준이 모호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 IATA 연차 총회에 참석한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사진=대한항공 제공

지난해 3월 대한항공 제59기 정기 주주총회에서 국민연금은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의 사내이사 선임 건에 대해 반대 의사를 표명한 바 있다. 아시아나항공 인수 결정으로 인해 대한항공의 부채가 증가하고, 실사도 하지 않아 계약상 불리한 내용이 존재할 수 있기 때문에 기업 가치가 훼손돼 주주들의 이익을 빼앗아 간다는 이유에서다. 다시 말해 주주권 침해라는 뜻이다.

이 당시 조원태 회장에 대한 주주들의 지지율은 82.84%로 압도적인 표결로 끝났다. 반면 노·사·가입자 대표 위원 9인으로 구성됐던 국민연금 수탁위는 자체 회의에서 5대 4로 조원태 회장의 대한항공 사내이사 선임에 반대하기로 결정했다. 이와 같은 이유로 수탁위가 시장의 판도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전문성을 갖춘 게 맞느냐는 비판이 일기도 했다.

당시에는 스튜어드 코드십이 큰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지만 현 시점에서는 대표소송감으로, 경영진을 압박하는 수단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높았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현재 기금운용본부에는 기금법무팀 외에도 리스크 관리 조직이 있다. 이곳은 △사안의 중요도 △소제기 판단의 전문성 △기금 운용 영향 등을 종합 감안할 수 있는 만큼 대표소송의 실익에 밝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수탁위원들은 이해 관계자들의 추천으로 구성된다는 한계점을 지니고 있고, 각 위원들의 전문 분야 등을 감안하면 대표소송을 결정할 수 있는 적격 주체로서는 부적합하다는 게 재계 중론이다. 기금 운용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아 수익률과 관계 없이 정치·사회적 이해 관계와 여론에 따라 소 제기를 결정할 유인이 매우 높다는 점도 문제다.

이와 같은 연유로 재계에서는 대표소송의 요건을 엄격히 제한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구체적으로는 이사의 고의에 의한 위법 행위로 인해 회사에 중대한 손해가 발생했고, 이사 개인에게 경제적 이익이 귀속됐으며, 해당 사실이 판결이나 당사자의 자백 등으로 확정된 경우로 한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상장회사협의회 관계자는 "장기간 소송이 수행돼야 하는 대표소송은 로펌 선임 비용 부담이 커 국부 펀드인 국민연금에 손해를 초래할 가능성이 상당히 크다"며 "기업에도 큰 위협으로 작용한다는 점에서 다른 주주권 행사와는 달리 신중하게 취급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국민연금 내부 지침에 불과한 수탁자 책임 활동 지침 개정만으로 대표소송을 결정하는 것은 무리"라며 "상법 규정 외에 국민연금법에 대표소송을 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동법 시행령에 소 제기에 관한 구체적 기준을 마련하는 게 우선"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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