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불허로 다른 국가에 제출한 기업심사 요청 철회 수순 전망
조선 빅3→빅2 개편도 불발…출혈경쟁 재현 우려
과거 인수전 참여했던 포스코, 한화 등 새 인수 후보군 거론
재무구조 악화, 인수 후보군 성장전략 변화 등 변수
[미디어펜=김태우 기자]현대중공업그룹의 대우조선해양 인수합병(M&A)이 유럽연합(EU)의 불허로 사실상 무산됐다. 

지난 3년간의 인수합병 작업은 전면 백지화되고 대우조선해양은 다시 산업은행 산하에 남아 새 주인을 찾아야 할 상황에 처한 것이다. 양사의 합병으로 준비해왔던 'K-매머드 조선사'의 글로벌 시장 제패 꿈도 3년 만에 물거품이 됐다.

현대중공업그룹 지주사인 현대중공업지주는 지난 13일 EU 공정위원회로부터 대우조선해양과의 기업결합을 불허한다는 심사 결과를 통보받았다고 밝혔다.

   
▲ 현대중공업그룹의 대우조선해양 인수합병(M&A)이 유럽연합(EU)의 불허로 사실상 무산됐다. /사진=현대중공업·대우조선해양 제공


현대중공업지주는 그동안 EU 측에 기업결합 승인 여부의 쟁점 사안이었던 'LNG선 시장 독점 우려'를 불식시키기에 충분한 근거를 제시했음에도 불구, 결국 불허 결정을 내렸다며 유감을 표했다.

현대중공업지주는 "향후 최종 결정문을 면밀히 검토한 후, EU 법원을 통한 시정요구 등 가능한 대응 방안을 종합적으로 마련할 예정"이라고 밝혔지만 사실상 이번 인수합병은 무산됐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EU가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의 기업결합이 역내 법규에 위반된다고 판단한 이상 철회 가능성은 희박하기 때문이다.

조선과 항공 등 다국적 기업은 기업결합을 진행할 때 진출한 국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한 국가라도 반대할 경우 기업결합은 무산된다. 그렇다고 세계 최대 시장인 EU를 포기하고 합병을 강행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현대중공업으로서는 대우조선해양 인수합병을 통해 얻는 것보다 유럽 시장을 포기함으로써 잃는 게 더 많다"면서 "EU의 이번 결정으로 아마도 다른 나라에 제출한 기업결함 심사 요청도 철회 수순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2019년 3월 본계약 체결 이후 3년을 끌어 온 두 조선기업의 합병은 최종 불발됐다. 대우조선해양의 재무구조 개선작업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고, 삼성중공업까지 포함한 현재의 '빅3' 체제를 '빅2'로 개편해 한국 조선업 경쟁력을 끌어올리겠다는 국가 차원의 계획도 모두 무산됐다.

업계에서는 최근 조선시황이 다시 살아나면서 반등을 기대하던 조선업계가 다시 기존 3강 체제에서의 출혈 경쟁 재현으로 어려움에 빠질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정부는 2015년 조선업 구조조정 당시 국내 대형 조선사들의 생산능력 30%가량을 폐쇄해야 경쟁력을 회복할 수 있다는 진단을 내렸고, 결국 현대중공업의 대우조선해양 인수합병이 최적의 방안으로 떠오르며 기업결합이 추진됐었다.

대우조선해양이라는 뜨거운 감자를 다시 떠안게 된 산업은행의 대응도 관심이다. 산은은 대우조선해양 지분 55.7%를 보유한 대주주다.

산은은 지난 2000년과 2015년 두 차례에 걸쳐 대우조선해양을 살리기 위해 수조원 씩의 공적자금을 투입한 사례가 있다. 같은 상황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현대중공업으로의 M&A가 무산되더라도 재매각을 추진해야 한다.

인수 후보군으로는 과거 대우조선해양 인수 입찰에 참여한 바 있는 포스코와 한화 등이 거론된다. 포스코는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할 경우 철강 사업의 전방산업 계열사를 거느릴 수 있다는 점과 전용선 발주 등의 연관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한화는 방산 분야에서의 시너지가 기대 요인이다.

최근 조선업황이 호황을 보이며 현대중공업그룹이 인수 계약을 체결했던 3년 전보다 기업 가치가 상승했다는 점도 재매각을 한층 수월하게 만들 수 있는 요인이다. 현재 시황이라면 인수 후 1~2년 정도 후부터는 대우조선해양이 내는 흑자를 통해 인수 비용 일부를 회수할 것이라는 기대를 할 수 있다.

하지만 크게 악화된 대우조선해양의 재무구조는 여전히 재매각 추진의 걸림돌이다. 지난해 3분기 기준 대우조선해양 부채비율은 297.3%로 집계됐다.

현대중공업과의 M&A 이후 1조5000억원을 지원받아 재무구조를 개선할 예정이었지만, 합병 불발로 없던 일이 됐다. 대우조선해양의 새 원매자는 인수자금 외에도 막대한 채무를 감당해야 한다.

원매자로 거론되는 포스코와 한화의 성장 전략이 과거와 달라졌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포스코는 철강 및 전후방 사업과는 별개로 배터리 소재 중심의 신사업 추진에 나서고 있고, 한화는 항공우주와 태양광, 수소 등 그린에너지를 미래 핵심사업으로 삼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산은을 비롯한 대우조선해양 채권자들을 위해서나 조선업종 구조 개선 차원에서나 현대중공업으로의 M&A가 최선이었다"면서 "어떤 대안을 찾더라도 기존 방안에 비해서는 부족함이 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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