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용산어린이정원 아파트 공급 움직임에 여론 악화
입구에는 근조화환·방문객들도 "이해가 되지 않아" 갸우뚱
"정비사업이나 풀어줘라"…인근 이촌동 등 용산 주민들도 성토
김윤덕 장관 "원래 계획 없었다"면서도 실행 가능성 열어놔
[미디어펜=서동영 기자]"여기를 밀고 아파트를 짓는다는 거잖아. 잘 만든 공원인데 그건 아닌 거 같아."

   
▲ 용산어린이정원 앞 보도에 세워진 용산공원 아파트 건설 반대 화환들./사진=미디어펜 서동영 기자

폭염주의보가 발령될 정도로 햇볕이 뜨거웠던 지난 25일 서울 용산구 용산어린이정원. 입구 앞 보도에 세워진 수십 개의 근조화환을 지나 정원으로 들어선 한 여성 방문객은 함께 온 사람에게 이렇게 말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최근 용산어린이정원이 화두에 오르고 있다. 정부가 이곳에 아파트를 짓겠다는 계획을 밝혔기 때문이다. 김윤덕 국토교통부 장관은 부동산 공급대책 발표 다음날인 지난 14일 용산공원 내 아파트 건설 계획을 알렸다. 미군으로부터 반환받아 조성 중인 용산공원 300만㎡ 중 30만㎡인 용산어린이정원이 후보지로 꼽혔다. 이곳에 용적률 500% 이상 초고층 개발을 통해 청년과 신혼부부를 위한 소형 아파트를 최대 2만 가구까지 공급하겠다는 것이다.

이같은 정부의 움직임에 대해 반대의견이 거세게 일고 있다. 이는 입구 앞에 일렬로 길게 늘어선 근조화환을 통해 알 수 있었다. 화환에 걸린 리본에는 "어린이공원은 어린이에게", "아이들의 놀 권리와 미래 권리를" 등등 다양한 문구가 적혀 있었다. 얼마 전에는 서울 용산구 용산어린이정원 정문 앞 한마음공원 앞에 시민 300여 명이 모여 '어린이정원 사수 궐기대회'를 진행하기도 했다. 

   
▲ 용산어린이정원을 찾은 방문객들이 정원 안을 거닐고 있다./사진=미디어펜 서동영 기자

용산어린이정원 방문객들도 정부가 용산공원에 아파트를 세운다는 소식은 뉴스를 통해 알고 있었다. 강아지와 함께 방문한 30대 여성 2명은 "용산공원에 아파트를 세울 거라는 뉴스는 봤다"면서도 "정작 대상지가 여기였는지는 몰랐다"고 답했다. 

이 중 한 명은 탁 트인 대형 잔디밭을 바라보면서 외국 공원에 온 것 같은 이국적인 장소라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복잡한 서울숲보다 훨씬 나은 것 같고 전철역과도 가까워 접근성도 좋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굳이 잘 조성된 곳에 아파트를 지을 필요가 있냐"고 반문했다. 

이들 뿐만 아니라 산악회 회원이라는 노인 20여 명이 이곳을 찾아 둘러보며 사진을 찍기 바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처럼 용산어린이정원은 어린이 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찾아오는 휴식 공간으로 충분히 기능하고 있었다. 

   
▲ 산 삼각지역 인근 낡은 삼각맨션./사진=미디어펜 서동영 기자

◆황당한 용산 주민들 "정비사업은 막으면서 공원은 없애겠다니" 

용산공원 아파트 건설 계획은 서울시와 야당의 거센 반발에 직면한 상황이다. 용산공원 인근 주민들도 동의하지 않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용산공원 아파트 예정지에서 남쪽에 자리한 동부 이촌동 주민들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입을 모았다. 이곳에서 30년 넘게 살았다는 60대 남성은 "처음에 반환받은 미군기지에 공원을 짓는다고 했을 때 아파트 등 개발을 하자는 주장도 거세 상당히 시끄러웠던 걸로 기억한다"고 떠올렸다. 이어 "간신히 공원으로 합의봤는데 이제와서 아파트를 짓는 게 말이 되냐"며 "이럴 거면 처음부터 그러던가 갑작스럽게 이게 뭐냐"라고 어이없어 했다. 또 다른 남성도 "국립중앙박물관 바로 옆에 수십 층짜리 아파트가 생긴다면 상당히 보기 좋지 않을 것 같다"며 "용산공원은 오염정화도 제대로 못 한 상태인데 괜찮겠나"라고 우려했다.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대한 불신도 짙었다. 이촌동 내 한 공인중개사는 "젊은 사람들은 속내를 드러내지 않아 모르겠는데 나이 드신 분들은 용산공원 소식을 듣고 정부를 성토하기 바쁘다"며 "정비사업이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임대아파트가 코 앞에 들어선다는 데 누가 좋아하겠냐"고 전했다. 동부 이촌동은 한강맨션·한강삼익 등 재건축과 건영한가람, 이촌 우성을 비롯한 리모델링 등 상당수 단지가 정비사업을 진행 중이다.

이같은 분위기는 용산 내 또 다른 지역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용산어린이정원 주출입구에서 북쪽으로 1㎞ 가량 떨어진 삼각지 인근 한 주민도 "이곳은 오랜기간 미군기지 등으로 인해 개발이 쉽지 않았다"며 "정부가 정비사업 지원에는 소극적이면서 정작 용산공원에는 초고층 아파트를 짓는다고 하니 차별을 받는 것 같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여론이 악화하자 정부는 용산공원 아파트 건설에서 한발 물러섰다. 미디어펜이 용산어린이정원을 찾은 하루 뒤인 26일 김윤덕 장관은 오세훈 시장과의 2차 회동을 앞두고 "7만3000가구+α 규모 추가 신규 택지에 용산공원은 원래부터 없었다"며 공식화했다

이로써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용산공원 아파트 공급계획은 일단 수면 위로 가라앉게 됐다. 하지만 정부로서는 주택 공급이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언제든 꺼낼 수 있는 카드가 될 것으로 보인다. 김 장관은 이날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 출석 "훼손된 부지를 활용해 청년과 신혼부부에게 주택을 공급할 가능성을 공론화해 논의하겠다는 게 국토부 입장"이라고 밝혔다. 
[미디어펜=서동영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