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특별기고]기후를 넘어 자연으로, 자본시장이 던지는 다음 질문
입력 2026-10-22 10:32:15 | 수정 2026-10-22 10:32:15
서동영 기자 | westeast0@mediapen.com
기후변화와 자연자본, 공급망 인권 등 ESG가 다루는 리스크의 범위는 빠르게 확장되고 있다. 동시에 자율공시에서 의무공시로, 기업의 자발적 선언에서 법적 책임이 따르는 규제로 그 성격 또한 근본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이제 기업에 필요한 것은 막연한 방향성이 아니다. ESG 공시 실무부터 조직 거버넌스, 자금 조달 전략까지 아우르는 구체적이고 실천 가능한 해법이다. 이에 미디어펜은 매달 두 차례, ESG 전 영역에 걸쳐 탁월한 식견을 갖춘 대신경제연구소의 전문가들로부터 경영 현장에서 바로 활용할 수 있는 통찰과 해법을 들어보는 자리를 마련했다.[편집자주]
![]() |
||
| ▲ 박소은 대신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 | ||
온실가스 스코프 1·2·3 배출량 산정과 기후 리스크 시나리오 분석, 회복탄력성 평가 등 글로벌 표준에 발맞추기 위한 현장의 노력은 그 어느 때보다 분주하다. 그러나 자본시장과 규제 당국의 논의 지평은 이미 기후라는 울타리를 넘어 다음 단계로 확장을 모색하고 있다. 바로 생물다양성과 생태계 서비스를 포괄하는 ‘자연자본(Nature Capital)’이다.
기후공시가 기업의 체질 개선을 점검하는 첫 시험대라면, 자연자본은 그 체질이 비즈니스를 둘러싼 물리적 환경의 한계 속에서도 지속될 수 있는가를 묻는 질문에 가깝다. 기후변화 대응에만 집중한 채 자연자본 손실이 초래할 복합적 위기를 살피지 못한다면, 향후 자본시장이 요구할 다층적인 리스크 관리 흐름에서 한발 뒤처질 수 있다.
탄소 감축 너머, 비즈니스를 지탱하는 자연자본의 재무적 실체
세계경제포럼(WEF)은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절반 이상인 약 44조 달러가 자연 및 생태계 서비스에 직·간접적으로 의존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기후위기와 생물다양성 손실은 결코 분리된 영역이 아니다. 기후변화는 생태계 파괴를 가속화하고, 산림과 습지 등 자연 흡수원의 훼손은 다시 온실가스 흡수력을 떨어뜨려 온난화를 심화시키는 상호 연계(Nexus) 구조를 띤다.
그럼에도 기업 현장에서는 여전히 자연자본을 전통적인 환경보호나 사회공헌(CSR) 차원의 비재무적 영역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러나 사업 활동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원자재 조달, 공업용수 확보, 토양 비옥도 유지 등 자연자본은 공급망과 생산 활동을 지탱하는 본질적인 기반이다. 극심한 가뭄으로 인한 취수 제한이나 원자재 주산지의 생태계 훼손은 기업의 생산 차질과 원가 상승으로 직결되며, 이는 곧 영업이익률과 현금흐름에 직접적인 타격을 입힌다.
이러한 실질적인 위험 노출 경로가 점차 명확해짐에 따라, 글로벌 자본시장 역시 자연자본을 윤리적 가치의 차원을 넘어 기업가치를 좌우하는 핵심적인 ‘재무적 중요성(Financial Materiality)’의 영역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제도와 자본시장에서 감지되는 변화의 흐름
자연자본 리스크 관리가 향후 기업 경영의 주요 과제로 거론되는 배경에는 글로벌 규제 동향과 투자 생태계 전반에서 구체적인 제도적 틀이 단계적으로 구체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첫째, 글로벌 보고 지침 및 실사 법안의 도입 추세다. 유럽연합(EU)의 경우 기업지속가능성보고지침(CSRD) 하의 ESRS E4(생물다양성 및 생태계) 기준을 마련해 기업의 중대성 평가 결과에 따른 공시 체계를 단계적으로 도입하고 있다.
또한 EU 산림벌채방지법(EUDR)과 공급망실사지침(CSDDD) 등 입법 절차를 마친 규제들은 원자재의 지리적 위치(GPS) 추적과 생태계 영향 점검을 요구하며 글로벌 공급망 전반에 점진적인 관리 압력을 형성하고 있다.
여기에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 역시 차기 연구 과제로 ‘생물다양성, 생태계 및 생태계 서비스(BEES)’를 공식 선정하고 자연관련 재무정보공개 협의체(TNFD) 권고안 등을 참고하여 표준화 타당성을 검토 중이다. 과거 민간 프레임워크였던 TCFD가 IFRS S2의 근간으로 자리 잡았던 흐름을 비추어 볼 때, 자연자본 공시의 글로벌 제도화 논의 역시 중장기적으로 힘을 얻을 가능성이 크다.
둘째, 기관투자자의 스튜어드십 확장이다. 기후 분야의 대표적 이니셔티브였던 ‘Climate Action 100+’에 이어 출범한 ‘Nature Action 100’처럼, 글로벌 대형 기관투자자들은 자연 파괴 위험에 노출된 핵심 기업들을 대상으로 대화를 진행하며 자연자본 관리 전략을 점진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셋째, 글로벌 의결권 자문사의 지침 반영 추세다. ISS와 Glass Lewis 등 주요 의결권 자문사는 벤치마크 가이드라인에 산림 벌채, 수자원 리스크, 생물다양성 관리 등 자연 관련 환경 위험 요소를 단계적으로 반영하는 추세다.
중대한 환경 분쟁이 발생하거나 자연자본 훼손 리스크를 방치해 주주가치를 훼손했다고 판단될 경우, 이사회 및 감사위원회 이사 선임 안건에 대해 부정적 의견을 검토하는 기조가 나타나고 있다. 자연 리스크 관리가 단순한 실무 차원을 넘어 이사회의 감독 책임 영역과 맞닿기 시작한 셈이다.
![]() |
||
| ▲ 쓰레기로 뒤덮인 수변 생태계. 수자원과 생태계 훼손은 기업의 원자재 조달과 생산 활동에 직접적인 리스크로 이어질 수 있다./사진=미디어펜 김상문 기자 | ||
선제적 대응을 위한 기업의 실행 과제
자연자본에 대한 논의가 점차 구체화하는 현시점에서 기업은 기후공시 대응을 통해 축적한 거버넌스와 리스크 관리 프레임워크를 기반으로 단계적 대비에 나설 필요가 있다.
우선 고려해야 할 과제는 ‘위치(Location) 기반의 데이터 식별’이다. 전 지구적으로 대기 중에 균일하게 퍼지는 온실가스와 달리, 자연자본은 철저히 특정 지리적 환경에 종속(Location-specific)되는 특성을 지닌다. 동일한 양의 공업용수를 사용하더라도 수자원이 풍부한 유역과 고갈 위험이 높은 유역에서의 사업 리스크는 현저히 다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자체 사업장뿐만 아니라 1차 협력사가 위치한 지역이 생태계 민감 지역(Key Biodiversity Areas)과 겹치는지 파악하고, 공급망의 지리적 정보를 단계적으로 추적하는 체계를 고민해야 한다.
다음으로 TNFD가 권고하는 ‘LEAP(Locate-Evaluate-Assess-Prepare) 접근법’의 파일럿 적용이다. 자연과의 접점을 식별(Locate)하고, 의존성과 영향도를 파악(Evaluate)하며, 이에 따른 실질적 리스크와 기회를 평가(Assess)한 뒤 대응 방안을 준비(Prepare)하는 프레임워크는 기업 공급망의 숨은 취약점을 진단하는 데 유용하다. 초기부터 전 사업장을 포괄하는 완벽한 데이터를 구축하기보다는, 고위험 원자재나 핵심 거점을 중심으로 한 파일럿 스터디부터 차근차근 시작하는 현실적 접근이 바람직하다.
아울러 이사회 중심의 ‘기후-자연 통합 거버넌스’ 모색이다. 자연자본 이슈를 기존 기후 리스크 체계와 완전히 분리된 별도 과제로 다룰 경우 실무적 혼선과 자원 낭비가 발생할 수 있다. 이사회 및 ESG위원회 규정의 환경 리스크 감독 범위에 자연자본 이슈를 자연스럽게 연계하고, 주요 설비투자(CAPEX) 및 사업 포트폴리오 검토 시 기후와 생태계 영향을 통합적으로 바라보는 내부 의사결정 체계를 가다듬어야 한다.
완벽한 지표보다 지속가능한 비즈니스의 실체를 증명할 때
기후공시와 마찬가지로 자연자본 공시 역시 기술적인 지표 채우기나 정형화된 보고서 발간 자체가 목적이 될 수는 없다. 공시의 진정한 가치는 기업이 자연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고, 자연 의존성에서 비롯되는 경영 불확실성을 관리하여 장기적인 사업 회복탄력성을 확보하는 데 있다.
자연자본 공시가 전면 의무화되기까지 남은 시간은 규제 요구사항의 문구를 해석하는 관망의 시간이 아니다. 비즈니스 모델이 딛고 선 생태계 기반을 점검하고 사업 포트폴리오의 영속성을 입증해 내는 선제적 체질 개선의 기회다. 기후를 넘어 자연으로 확장되는 자본시장의 거대한 변화 속에서, 지속가능한 경영의 실체를 증명해 내는 기업만이 다가오는 규제와 시장의 파고를 넘어설 수 있을 것이다. /박소은 대신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
필자는 환경보건학 학사와 환경독성학 석사를 마친 후 대신경제연구소 ESG전략컨설팅센터에서 기업의 지속가능경영진단 및 전략 수립을 지원하고 있다. 기업의 기후/자연자본 공시 대응 체계 구축과 TNFD·LEAP 방법론 적용을 비롯해, 비즈니스 가치와 연계된 환경경영 전략을 자문하고 있다.
[미디어펜=서동영 기자] ▶다른기사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