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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D 동력 상실"…제약업계 재정 절감 명분 '약가 인하' 우려

2026-03-25 15:38 | 박재훈 기자 | pak1005@mediapen.com
[미디어펜=박재훈 기자]오는 26일 열리는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이하 건정심)에서 제네릭 의약품 약가가 40%대로 낮추는 개편안이 상정되며 업계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연 3조 원을 넘는 매출이 축소되는 구조에도 정부는 ‘혁신·필수약 보상 강화’라는 명분을 내세우며 속도를 높이고 있어, 정부의 안정적 재정 확대와 산업 경쟁력 사이 균형을 잃었다는 비판이 거세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에서 열린 약가인하 긴급 간담회에서 노연홍 한국제약바이오협회 회장이 질의에 답하고 있다./사진=미디어펜 박재훈 기자



◆ 업계 목소리는 뒷전…"속도로 밀어붙이는 정부"

25일 업계에 따르면 정부가 추진 중인 약가제도 개편안은 제네릭·특허만료 의약품의 상한금액을 현행 오리지널 의약품 53.55% 수준에서 40%대로 낮추는 것이 골자다. 인하 대상은 3000~4500개에 이르는 제네릭과 특허만료 품목이며 정부는 2029년까지 단계적으로 가격을 깎는 로드맵을 검토 중이다.

업계가 이번 개편안에 따라 자체 추산한 피해 규모는 연간 3조6000억 원 수준이다. 이는 국내 제약사가 신약·개량신약 R&D(연구개발)과 생산설비, 인력 유지에 재투자해 온 자금의 상당 부분이 한 번에 줄어드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정부는 “환자 치료 접근성 제고와 건강보험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고 설명한다. 동시에 혁신형 제약사와 필수의약품에는 보상을 강화해 신약 개발과 보건안보 투자를 뒷받침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업계 시각은 다르다. 국내 제약사들이 제네릭에서 벌어들인 현금을 기반으로 신약 파이프라인을 키워 왔는데 약가가 인하되면 중장기적으로는 혁신 역량 자체가 약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특히 업계는 이번 개편이 2012년 대규모 약가 인하의 재현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당시에도 단기간에 약가를 대폭 낮춘 뒤 일부 품목 퇴출과 공급 불안, R&D 위축 등 부작용이 나타났는데 정부가 이번에는 체계적인 영향평가 없이 재차 일괄 인하를 밀어붙이고 있다는 것이다.

절차적 정당성 논란도 거세다. 그동안 복지부는 민관협의체와 간담회 등을 통해 “정책 방향에 대한 의견을 들었다”고 설명해 왔지만 정작 핵심 쟁점인 구체 인하율과 적용 방식은 막판까지 공개하지 않았다.

20여곳 제약사와의 간담회에서 업계가 제시한 제네릭 산정률 마지노선인 48.2% 역시 사실상 받아들여지지 않아 형식적인 의견수렴에 그쳤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가 별도 보고를 요구할 만큼 파급력이 큰 사안임에도 건정심 전체회의 한 번의 표결로 상정·의결을 끝내겠다는 정부 태도 역시 속도전 논란을 키우는 이유다.

◆ “혁신 우대 실효성 논란"…중소사 타격·공급 불안 우려

보건복지부 정부세종청사./사진=복지부



아울러 정부가 내세우는 ‘혁신 우대’ 카드도 실질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이 뒤따른다. 앞서 복지부는 혁신형 제약사와 필수의약품에 대한 보상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실제 설계는 기존 혁신형 인증 기업 등 일부 상위사에 주로 혜택이 돌아가는 구조라는 게 업계 분석이다. 혁신형 제약사의 기등재 제네릭에 적용되는 인하 유예 조항 역시 품목 수, 매출 기준 등의 조건으로 현실에서 체감할 수 있는 메리트는 크지 않다.

다수 중소·중견사는 별다른 우대 없이 대폭 인하만 적용받게 돼 약가제도 개편이 ‘소수 상위사 중심의 양극화’를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환자 입장에서도 단기적인 약값 인하가 오히려 장기적으로는 접근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제네릭 가격이 과도하게 낮아질 경우 원가·인건비를 감당하지 못하는 중소 제약사의 생산 중단과 시장 퇴출이 늘어날 수 있다. 이는 특정 성분의 공급 불안과 품절 사태로 이어질 수 있다.

고령화와 만성질환 증가로 제네릭 수요는 늘고 있음에도 공급망 안정성에 대한 인센티브보다 가격 억제에만 초점을 맞추면 중장기 건강보험 지출 구조에도 왜곡이 생길 수 있다.

이에 업계는 전면 백지화보다는 속도조절과 정밀조정을 요구하고 있다. 업계 비상대책기구는 “제네릭을 포함해 모든 품목에 일괄 인하를 적용하는 방식이 아닌 R&D 기여도와 공급 역할, 기업 규모에 따라 차등 조정하는 방안이 필요하다”며 “정책 시행 전 영향평가와 추가 협의가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약가제도 개편이 재정 절감만을 향해 달려가선 안 된다”며 “국내 제약·바이오 산업이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도록 산업정책과 보건의료정책의 균형을 다시 맞추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미디어펜=박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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