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이석원 문화미디어 전문기자] 대원사가 ‘빛깔있는 책들’ 시리즈의 283번째 권으로 향토사학자 김강산의 저서 '호식장'을 출간했다. 이번 신간은 과거 한반도 산간 지역에서 빈번했던 호환(범에 의한 피해)과 그로 인해 파생된 독특한 장례 풍습인 호식장(虎食葬) 및 호식총(虎食塚)의 실체를 다룬 국내 보기 드문 민속 연구서다.
저자인 김강산 전 강원도문화재전문위원은 태백산을 중심으로 정선, 영월, 삼척 등 강원도와 경북 북부 산악지대를 수십 년간 발로 누비며 직접 조사한 자료를 토대 삼았다. 책은 단순한 역사 기록을 넘어, 범이라는 절대적 존재 앞에서 인간이 느꼈던 근원적인 공포와 이를 주술적 의례로 극복하려 했던 선조들의 숙명론적 세계관을 심도 있게 추적한다.
'호식장'은 범에게 먹힌 유골을 거두어 현장에서 화장한 뒤 돌무덤을 쌓는 특수한 장례 절차를 의미한다. 이때 만들어진 무덤을 호식총이라 부르는데, 일반적인 묘와 달리 봉분 위에 시루를 엎어놓고 구멍에 가락(쇠꼬챙이)을 꽂아두는 기이한 형태를 띤다. 책은 이러한 행위가 호환 피해자의 영혼이 범의 앞잡이인 ‘창귀’가 되어 또 다른 이웃을 해치지 못하도록 가두려는 처절한 주술적 장치였음을 설명한다.
대원사가 ‘빛깔있는 책들’ 시리즈의 283번째 권으로 향토사학자 김강산의 저서 '호식장'을 출간했다. /사진=대원사 제공
특히 저자는 52명의 현지 어르신으로부터 직접 채록한 생생한 증언을 통해, 호환을 당한 집안과는 사돈의 팔촌하고도 혼사를 맺지 않았던 냉혹한 풍습 등 당시 산간 마을 사람들의 삶에 깊숙이 박힌 비극적 정서를 가감 없이 담아냈다. 팥죽을 이용한 호환 예방책부터 풍수지리설이 호환지에 미친 영향, 그리고 호환을 명당의 조건 중 하나로 여겼던 역설적인 인식 변화 등 흥미로운 학술적 분석도 함께 수록됐다.
저자 김강산은 태백문화원장과 강원도 문화재 전문위원을 역임하며 평생을 향토사 연구에 매진해온 학자다. 그는 “호식총은 가혹한 자연 환경 속에서 화전을 일구며 살아가야 했던 민초들의 슬픔이 승화된 문화유산”이라며, 점차 허물어져 방치되고 있는 호식총의 보존 필요성을 역설한다. 현재 태백향토사연구소장을 맡고 있는 그는 '우리고향 태백', '태백의 지명유래' 등 다수의 저서를 통해 지역사의 뿌리를 찾는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출판사 대원사는 “이번 신간은 사라져가는 한국 특유의 민속 신앙 체계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사료”라며 “자연과 인간이 공존과 대립을 반복하며 만들어낸 우리 민족의 생사관을 확인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범에 대한 경외와 공포가 빚어낸 기록물 '호식장'은 전국 주요 온·오프라인 서점에서 만나볼 수 있다.
[미디어펜=이석원 문화미디어 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