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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회색지대 속 ‘집단 이기주의’…누가 정비사업 질서를 무너뜨리나

입력 2026-05-12 09:58:20 | 수정 2026-05-12 09:58:17
박소윤 기자 | xxoyoon@daum.net
[미디어펜=박소윤 기자]

박소윤 건설부동산부 기자

아전인수(我田引水). 각자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해석하고 행동한다는 뜻의 사자성어다. 

최근 서울 주요 재건축·재개발 현장을 들여다보면 이 말이 유난히 자주 떠오른다.

조합은 특정 건설사에 유리한 결정을 내렸다는 논란에 휩싸이고, 건설사는 법과 규정의 경계선을 넘나드는 ‘아슬아슬한 제안’을 경쟁적으로 내놓는다. 관할 지자체는 ‘조합이 판단할 문제’라며 한발 물러선다. 공공성과 투명성이 핵심이어야 할 도시정비사업이 점점 회색지대로 빠져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까닭이다. 

이 같은 현상은 올해 수주전 사례에서도 반복된다. 최근 강남권 한 정비사업지에서는 경쟁 건설사들이 역대 정비사업에서도 보기 드문 수준의 금융 조건을 잇달아 제시했다. 한 건설사는 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에서 1%포인트를 뺀 ‘CD-1%’ 조건을, 다른 건설사는 ‘CD+0%’ 조건을 내걸었다. 조달 비용이 낮아질수록 조합원 분담금 부담이 줄어드는 만큼 표심을 흔들기에는 충분히 매력적인 카드다.

문제는 이런 제안이 단순한 ‘서비스 경쟁’으로만 보기 어렵다는 점이다. 현행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과 계약업무 처리기준은 시공과 직접 관련 없는 재산상 이익 제공을 제한하고 있다. 시중 금융기관보다 현저히 낮은 금리로 자금을 조달해주는 행위 역시 규제 대상이 될 수 있다는 해석이다. 실제로 2017년 반포주공1단지 1·2·4주구 재건축 수주전에서도 유사한 금융 조건이 제시됐지만, 논란 끝에 최종 계약에는 반영되지 못했다. 그만큼 민감한 사안이라는 의미다.

하지만 현장 분위기는 다르다. 규정 위반 가능성이 제기돼도 실제 제재로 이어지는 경우는 드물다. 서초구 역시 이번 금리 논란과 관련해 법률 검토를 진행했지만, 최종 판단은 조합이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취지의 입장을 보였다.  

압구정5구역 사례도 크게 다르지 않다. 모 건설사의 경쟁사 제안서 촬영 논란 당시 강남구청은 “문제의 소지는 있다”면서도 입찰 규정 위반 여부는 조합이 판단할 사항이라는 결론을 내놨다. 문제 소지는 인정하면서도 적극적인 개입은 피한 셈이다.

성수4지구 역시 비슷한 흐름이다. 성동구청은 최근 성수4지구 재개발 조합이 신고한 시공사 개별 홍보 행위에 대해 별도 조치가 필요하지 않다는 취지의 답변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조합은 입찰 건설사 직원이 조합원에게 문자를 보낸 행위를 문제 삼아 성동구에 판단을 요청한 바 있다.

서울시 공공지원 정비사업 시공사 선정기준은 시공사 직원의 조합원 개별 접촉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조합원 개별 접촉이 허용되면 건설사 간 금품·홍보 경쟁으로 번지며 공정 경쟁 질서가 훼손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결국 이 같은 행정기관의 소극적 태도는 시장에 잘못된 신호를 준다. 건설사 입장에서는 “명확히 금지되지 않았다면 일단 제안하고 보자”는 분위기가 형성될 수밖에 없다. 편법과 우회 전략은 점점 정교해지는데, 관리·감독 기관은 판단을 미루는 모습이 반복되는 셈이다.

더 큰 문제는 조합과 건설사 역시 이런 제도적 허점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조합은 경쟁이 치열할수록 더 유리한 조건을 끌어낼 수 있다고 판단하고, 건설사는 표를 얻기 위해 위험한 조건도 마다하지 않는다. 조합은 이를 협상 카드처럼 활용하고, 지자체는 뒤에서 상황만 지켜보는 구조가 반복되고 있다.

물론 행정기관에도 현실적인 고민은 있다. 현행 제도 자체가 해석의 여지를 남겨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관리·감독 기관이 계속 ‘나몰라라’ 식의 태도로 일관한다면 시장 혼란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사례가 반복되면 논란은 더 잦아지고 편법은 더욱 교묘해질 수 있다. 

도시정비사업은 단순한 민간 계약이 아니다. 수천억 원의 사업비가 오가고 도시 구조 자체를 재편하는 공공성까지 지닌 사업이다. 그럼에도 현장에서는 공정 경쟁 원칙보다 각자의 이해관계가 우선되는 모습이 반복된다. 법의 사각지대를 활용하는 건설사, 유리한 조건만 취하려는 조합, 책임 있는 판단을 미루는 행정기관의 행태가 맞물리면서 정비사업의 신뢰는 조금씩 흔들리고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눈치 보기식’이 아닌 명확한 기준과 원칙이다. 위법 여부가 애매하다면 방치할 것이 아니라 기준을 더 구체화해야 한다. 정비사업의 공정성을 지키는 일은 조합만의 책임도, 건설사만의 책임도 아니다. 관리·감독 권한을 가진 지자체 또한 더 이상 책임에서 비켜설 수 없다.


[미디어펜=박소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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