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유태경 기자]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최근 4년간 중소기업 지원에 쏟아부은 돈은 무려 136조 원에 달한다. 한 해 평균 34조 원꼴이다. 그러나 천문학적인 예산 투입이 무색하게도 국내 중소기업 생태계 기초체력은 오히려 후퇴하고 있다. 정부 지원이 기업 성장을 촉진하기는커녕 시장에서 도태돼야 할 부실기업 수명을 연장하는 '인공호흡기'로 전락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18일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산업통상부 의뢰로 수행한 '중소-중견기업 지원 연계강화 방안 연구'에 따르면, 현행 중소기업 지원 체계는 기업의 도약을 가로막고 한계기업 생존을 연장하는 방향으로 작동하고 있다.
근본적인 원인은 외형적 규모에만 초점을 맞춘 획일적 분류 기준에 있다. 현행 중소기업기본법상 업종별 3년 평균 매출액 최대 1800억 원 이하, 자산총액 5000억 원 미만이면 중소기업으로 분류돼 세제 감면과 정책금융, 공공조달 우대 등 수백 가지의 전방위적 혜택을 받는다.
문제는 기업이 성장해 중견기업이 되는 순간 이 혜택들이 대부분 사라진다는 점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몸집을 키울수록 손해를 보는 구조다. 결국 혜택을 유지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성장을 거부하거나 기업을 쪼개는 '피터팬 증후군'이 구조적으로 고착화됐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국내 전체 기업 중 중견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9년부터 2023년까지 5년째 고작 '0.1%'라는 박스권에 갇혀 있다. 기업들이 성장을 '못' 하는 것이 아니라, 성장하지 '않'는 것이 시장에서 더 합리적인 선택이 됐기 때문이다.
시장에서 퇴출당해야 할 부실기업이 정부 지원금으로 버티면서 한계기업은 급증했다. 한계기업은 3년 연속 영업이익으로 빚의 이자조차 갚지 못하는, 즉 사실상 회생 가능성이 희박한 기업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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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감사 대상 기업 중 한계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8년 약 13%에서 2023년 17%로 4%p(비율 기준 31%) 늘었다. 특히 코스닥 등 상장 중소기업의 경우 같은 기간 17%에서 26%로 약 53% 폭증했다. 더 심각한 점은 이들 한계기업 중 영업이익 자체가 마이너스인 순수 적자 기업 비중이 90%를 넘는다는 사실이다. 부실기업이 득세하면서 시장의 역동성은 구조적으로 저하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반면 혁신 지표는 일제히 고꾸라졌다. 연평균 매출 성장률이 20% 이상인 고성장 기업이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09년 22%에서 2022년 13%로 급감했다. 이들의 고용 기여도 역시 같은 기간 20%에서 11%로 반토막 났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생산성 격차는 2.4배에서 3배로 더 벌어졌다. 예산을 쏟은 지난 15년 동안 중소기업의 글로벌 경쟁력은 오히려 후퇴한 셈이다.
KDI는 이제라도 지원 체계의 패러다임을 뿌리부터 바꿔야 한다고 강력히 권고했다. 단순히 매출이나 자산 규모가 작다고 보조금을 쥐여주는 방식을 끝내야 한다는 지적이다.
KDI 관계자는 "매출액 등 외형적 규모 기준 대신 투자, 고용, 연구개발(R&D) 등 실질적인 혁신 활동을 기준으로 삼는 '행태 연동형' 지원 체계로 전환해야 한다"며 기존 R&D 편중 지원에서 벗어나 컨설팅, 해외 진출, 브랜딩 등 기업별 패키지형 다각화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일회성 퍼주기를 막기 위해 지원 효과가 객관적으로 증명된 기업에 한해서만 다음 단계의 지원책을 연결해 주는 '성과 연동형 집행 방식'을 대안으로 제시하며 "혁신 없이 보조금에만 의존하는 기업은 과감히 걷어내고, 도약 의지가 있는 기업에 예산을 집중해야 중소기업 생태계가 살아날 수 있다"고 제언했다.
[미디어펜=유태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