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이용현 기자]국내 해운업계가 기존 컨테이너·벌크 중심의 단순 사업 구조에서 벗어나 포트폴리오 다각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중동발 지정학 리스크와 글로벌 공급망 불안, 운임 변동성 확대가 장기화되면서 특정 선종에 의존하던 기존 성장 모델이 한계에 직면했다는 판단에서다.
‘윙세일(Wing Sail)’을 설치한 HMM의 5만톤급 중형 유조선(MR탱커) ‘오리엔탈 아쿠아마린(Oriental Aquamarine)’호./사진=hmm 제공
21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국내 해운사들은 기존 주력 사업 외 LNG 운반선과 탱커, 벌크선 등으로 선대를 확대하며 서로 다른 시황 사이클을 결합하는 전략에 나서고 있다.
과거에는 컨테이너 선사는 컨테이너, 벌크 선사는 벌크 중심으로 사업 영역이 비교적 명확하게 구분됐지만 최근에는 안정적인 수익 기반 확보를 위해 선종 다각화가 핵심 전략으로 떠오르는 분위기다.
실제 HMM과 팬오션의 경우 서로 다른 출발점에서 사업 포트폴리오 확대에 속도를 내고 있다. HMM은 기존 컨테이너 중심 구조에서 벌크선 비중을 꾸준히 확대하고 있으며, 팬오션은 벌크 중심 사업을 기반으로 LNG 운반선과 탱커 등 에너지 운송 분야로 영역을 넓히는 모습이다.
HMM의 벌크선 선대는 사업보고서 기준 2025년 1분기 32척에서 2분기 36척, 3분기 37척, 12월 39척, 2026년 1분기 47척으로 지속 증가했다. 이는 단순 선대 확대가 아니라 컨테이너 의존도를 줄이고 사업 구조를 다변화하기 위한 전략적 움직임이란 설명이다.
이에 더해 벌크선 확대와 함께 자동차운반선(PCTC) 사업 재가동, 장기 운송 계약 확대 등을 지속 검토하며 안정적인 현금흐름 확보에도 나선다는 방침이다.
팬오션도 기존 벌크선 중심 사업 구조에서 벗어나 LNG선과 탱커 등 에너지 운송 분야 확대에 속도를 내고 있다. 단순 벌크 시황에만 의존하던 구조에서 벗어나 서로 다른 수익 사이클을 가진 사업을 함께 운영하겠다는 전략이다.
실제 팬오션의 경우 현재 벌크 사업이 전체 매출의 약 57%를 차지하고 있으나, 비벌크 사업 역시 고르게 분포하고 있다. 곡물 트레이딩 사업은 약 23%로 두 번째 비중을 기록하고 있으며, 탱커선은 원유 및 제품 운송을 중심으로 약 5~8%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LNG선은 기존 2% 수준에서 최근 약 6%까지 확대되며 빠르게 존재감을 키우는 중이며, 컨테이너 사업은 약 8% 수준을 기록했다.
이에 따라 팬오션은 LNG와 탱커 부문 성장세가 두드러지면서 올해 1분기 연결 기준 매출 1조5089억 원, 영업이익 1409억 원을 기록하며 견조한 실적 흐름을 이어가기도 했다. 중동 지역 긴장 고조로 에너지 운송 운임이 강세를 보인 데다 보유 선대 가동률 상승 효과까지 더해지면서 관련 사업 수익성이 개선됐다는 평가다.
◆컨테이너·벌크 넘어 LNG·탱커로…해운업계 ‘포트폴리오 경쟁’ 본격화
이 같은 변화의 배경에는 최근 중동 리스크와 홍해 사태 등 지정학 변수로 인한 해상 운임 변동성 확대가 자리하고 있다. 실제 홍해 항로 우회가 본격화된 이후 아시아–유럽 컨테이너 노선은 운항 거리가 기존 대비 약 30~40% 늘어나면서 운임이 단기간 급등락을 반복했다. SCFI 기준으로도 해상운임은 2024년 중순 2000포인트 안팎까지 상승했다가 이후 물동량 둔화와 공급 정상화 기대가 반영되며 1000포인트대 중반까지 다시 내려오는 등 큰 폭의 변동을 보였다.
벌크 시장 역시 비슷한 흐름이다. 발틱운임지수(BDI)는 최근 몇 년 간 1000~3000포인트 구간에서 등락을 반복하며 뚜렷한 추세 없이 움직이고 있다. 중국 철강 생산량과 원자재 수입 수요에 따라 단기간 급등했다가도 해상 물동량 둔화 시 빠르게 되돌림이 발생하는 구조다.
이처럼 운임이 한 방향으로 움직이는 시장이 아니라 구간별로 급등과 급락을 반복하는 구조로 바뀌면서 해운사들의 실적 변동성도 함께 확대되고 있다. 이에 따라 HMM과 팬오션 모두 특정 선종 의존도를 줄이고 컨테이너·벌크·LNG·탱커 등 서로 다른 사이클을 가진 사업을 결합하는 포트폴리오 전략을 강화하는 흐름이 뚜렷해지고 있다.
결국 업계에서는 이러한 흐름을 두고 한 가지 시황에 베팅하는 구조에서 벗어나, 서로 다른 경기 사이클을 가진 사업을 조합해 변동성을 흡수하는 방향 체질이 바뀌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과거처럼 컨테이너 선사와 벌크 선사로 구분되는 구조에서 벗어나 다양한 선종과 장기 계약 기반 현금흐름을 확보한 종합 해운 플랫폼 기업 중심으로 재편될 가능성이 크다는 설명이다.
다만 선대 확대에 따른 투자 부담과 재무 안정성 관리 문제는 과제로 남아 있다. 특히 LNG선과 VLCC 등은 초기 투자 규모가 큰 만큼 차입금 증가와 재무 부담 확대 가능성도 함께 제기된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해운 시황은 특정 방향으로 움직이는 구조가 아니라 지정학 변수에 따라 급등과 급락을 반복하는 ‘비정형 시장’으로 바뀌고 있다”며 “단일 선종만으로는 안정적인 수익 방어가 어려워지면서 선종과 계약 구조를 함께 다변화하는 흐름이 불가피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미디어펜=이용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