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동하 기자] 미국 정부와 빅테크의 거대 자본이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로 쏟아지며 필수 전력 인프라인 대용량 에너지저장장치(ESS) 수요가 폭발할 조짐이다. 전기차 캐즘(수요 정체)으로 고전하던 국내 배터리 업계는 고수익 ESS를 새로운 캐시카우로 삼고 수주전에 사활을 걸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 전력망용 ESS 배터리 컨테이너 제품 ./사진=LG에너지솔루션
22일 업계에 따르면 트럼프 행정부는 매국 AI 기술의 글로벌 수출을 촉진하기 위해 외국 기업에 수십억 달러(수조 원) 규모의 수출 금융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출범할 계획인 것으로 파악됐다. 이는 국가 차원의 막대한 자본을 투입해 글로벌 AI 생태계에서 미국의 주도권을 굳히려는 거시적 전략으로 풀이된다.
여기에 민간 빅테크 기업들의 천문학적인 투자도 맞물려 돌아가고 있다. 일례로 스페이스X는 최근 기업공개(IPO)를 앞두고 자사를 AI 강자로 전환하겠다며 막대한 컴퓨팅 인프라 투자를 예고했다. 앞서 구글과 블랙스톤 역시 AI 클라우드 벤처 설립을 위해 거대 자본을 뭉친 바 있다.
미국 정부의 금융 지원과 월가의 자본이 AI 산업으로 집중되는 현상은 곧 전 세계적인 '초대형 AI 데이터센터'의 건립 붐으로 직결된다. 고도화된 AI 연산을 처리하기 위해서는 기존 클라우드 서버와는 차원이 다른 규모의 물리적 데이터센터 인프라가 필수적으로 뒷받침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 '전기 먹는 하마' AI…전력망 방패 된 ESS
글로벌 AI 데이터센터의 팽창은 전력망 및 배터리 산업에 낙수 효과를 유발하고 있다. 24시간 돌아가는 AI 데이터센터는 전기 먹는 하마로 불릴 만큼 극심한 전력 소모를 동반한다. 일시적인 정전이나 전압 강하조차 데이터 손실과 서비스 마비로 이어질 수 있어 안정적인 전력 수급이 과제로 꼽힌다.
이러한 전력망의 불확실성을 해소하고 안정성을 담보하는 핵심 인프라가 바로 대용량 에너지저장장치(ESS)다. 심야 시간대나 잉여 전력을 거대한 배터리에 저장해 두었다가, 데이터센터의 전력 사용량이 급증할 때 방전시켜 시스템 다운을 막는 '전력망의 방패' 역할을 수행한다.
더욱이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은 사용 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해야 하는 'RE100' 달성 압박을 강하게 받고 있다. 태양광이나 풍력 등 발전량이 들쭉날쭉한 신재생에너지를 데이터센터 전력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이를 안정적으로 모아두는 고용량 ESS의 탑재가 선택이 아닌 생존의 필수 조건이 된 상황이다.
◆ 전기차 캐즘 뚫는 K-배터리…맞춤형 ESS로 수익성 조준
전방 산업의 이러한 구조적 변화는 전기차 캐즘 여파로 수주 가뭄을 겪고 있는 K-배터리 업계에 돌파구로 작용하고 있다. 전기차용 배터리 대비 단가 인하 압박이 상대적으로 덜하고 턴키(일괄) 공급 계약이 가능해 마진율이 높은 ESS 시장이 캐시카우로 부상했기 때문이다.
수익성 중심의 질적 성장을 강조하고 있는 삼성SDI는 전력망용 대용량 ESS인 'SBB(삼성배터리박스)'를 전면에 내세웠다. 컨테이너 박스 형태의 완제품으로 현장 설치가 용이하며, 하이니켈 NCA 배터리를 적용해 에너지 밀도를 극대화하고 직분사 시스템으로 화재 안전성을 대폭 끌어올려 빅테크들의 까다로운 눈높이를 충족시키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 역시 AI ESS 특수에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북미 시장에 건설 중인 대규모 LFP(리튬인산철) 배터리 공장을 통해 원가 경쟁력을 확보하는 한편, 사내 독립기업 '에이블(AVEL)'과 미국 현지 법인 '버텍스(Vertech)'를 통해 단순 배터리 납품을 넘어 전력망 시스템 자체를 구축해 주는 시스템 통합(SI) 턴키 수주 전략으로 밸류체인을 확장하고 있다.
배터리업계 관계자는 "미국 정부의 자금 지원으로 AI 데이터센터 인프라 투자가 가속화되면서, ESS 시장은 과거의 틈새시장을 벗어나 전력망의 메인스트림으로 자리 잡고 있다"며 "전기차 수요 둔화로 보릿고개를 넘고 있는 K-배터리 기업들이 고부가가치 ESS 수주 확대를 통해 하반기 실적 방어와 장기적인 성장 모멘텀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관측된다"고 말했다.
[미디어펜=김동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