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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P 현장] 소설가와 독자 경계 허문 차인표의 '우리동네 도서관'

입력 2026-05-27 19:42:28 | 수정 2026-05-27 20:27:59
이석원 부장 | che112582@gmail.com
[미디어펜=이석원 문화미디어 전문기자] 소설가이자 배우 차인표 작가가 신작 장편소설 '우리동네 도서관'을 들고 돌아왔다.  

27일 서울 중구 정동길에서 열린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 현장은 취재 열기로 가득했다. 현장에서 만난 차인표 작가는 특유의 진중하면서도 소탈한 어조로 지난 2024년 1월부터 올해 5월 초까지 약 1년 6개월 간 매달렸던 신작의 출발점을 '용(龍)'이라는 미스터리한 존재에 대한 의문에서 찾았다고 말했다.

신작 '우리동네 도서관'은 매일 동네 도서관으로 출근해 글을 쓰는 현대의 작가 '나'와, 고구려 시대의 화공 '번각'의 이야기가 정교하게 교차하는 작품이다. 자신이 직접 본 것만을 화폭에 담겠다고 다짐한 고구려의 화공 번각은 목숨을 볼모로 귀족의 무덤에 벽화를 그리라는 명을 받는다. 그리고 그 벽화 안에 반드시 실체가 없는 존재인 '용'을 그려 넣어야 하는 절체절명의 상황에 맞닥뜨린다.

소설가와 배우의 길을 함께 걷고 있는 차인표 작가가 27일 서울 중구 정동길에서 자신의 신작 소설 '우리동네 도서관' 출간을 기념한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사진=미디어펜



차인표 작가는 소설의 소재로 상상의 동물인 용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우리 선조들도 용이라는 존재에 대해 나와 비슷한 질문을 품었을 것이고, 그 전설과 유물 속에 후대에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심어놓지 않았을까 생각했다"며, 특히 덕흥리 고구려 고분 천장에 그려진 용의 이미지에서 강렬한 문학적 상상력을 얻었다고 전했다.

그의 설명처럼 소설 속 용은 단순한 상상의 동물이 아니다. 극심한 가뭄 속에서 "제발 비가 내려야 한다"고 부르짖는 민초들의 간절함, 어떻게든 살아남고자 하는 인간의 염원, 그리고 존재하지 않는 것의 실체를 끝내 증명하고 기록하려는 인간의 근원적인 욕망이 용의 형상 위에 겹쳐진다. 소설은 "부서진 흙바닥, 타버린 곡식, 황폐한 밭"으로 대변되는 극한의 절망 속에서도, 보이지 않는 것을 믿고 기록해 나가는 인간의 숭고한 마음을 집요하게 추적한다.

이 소설의 백미는 현대의 작가 '나'의 앞에도 고구려 화공이 고민하던 그 '용'이 실체화되어 나타난다는 점이다. 그러나 현실에 등장한 용은 작가에게 영감을 주는 신비로운 존재가 아니라, 오히려 "없는 걸 억지로 만들어 내려니까 머리가 아픈 거야"라며 창작자의 내면 깊은 곳에 자리한 불안과 위선, 한계를 날카롭게 찌른다.

차인표 작가의 '우리동네 도서관'은 메타 소설이라는 구조상 특성을 지니고 있다. /사진=미디어펜



기자간담회 현장에서 차인표 작가는 이번 작품이 가진 형식적 파격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소설과 에세이를 경계 없이 오가고, 소설 내부에 그 소설을 써 내려가는 창작의 과정이 고스란히 담겼다는 점이 전작들과의 가장 큰 차이"라고 짚었다. 이어 "의도하고 쓴 것은 아닌데, 문학평론가 김종회 교수께서 이 작품을 두고 창작자와 독자의 경계를 허문 '메타 소설(Meta-fiction)'이라 평해 주셔서 비로소 내 작품의 장르를 깊이 이해하게 됐다"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30년 넘게 카메라 앞을 지켜온 대한민국 대표 배우로서의 경험은 그의 문장 속에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글에서 웅장한 시각적 잔상이 남는다는 취재진의 평가에 차인표 작가는 "30년 넘게 대본을 읽어온 버릇 때문인지, 소설을 쓸 때도 머릿속으로 '풀샷'을 먼저 잡고 세계관을 설명하는 데 주력하는 편"이라며, 독자들이 "영화를 보는 것 같다"고 평해 주는 이유를 스스로 분석하기도 했다.

그러나 간담회 내내 차인표 작가가 가장 오래, 그리고 가장 깊은 울림을 담아 머무른 단어는 다름 아닌 '독자'였다. 그는 집필 과정에서 결국 자신을 끝까지 쓰게 만든 존재가 누구인지를 끊임없이 되물었다고 했다. 그 답은 결국 "제 소설을 읽고 각자의 고유한 해석을 덧입혀 소설을 비로소 완성해 주는 독자들"이었다.

그는 그동안 북 콘서트 등 현장에서 직접 눈을 맞춘 독자들을 회상하며 "한 분 한 분이 저와 똑같이 소중한 희로애락을 지닌 인격체들이었다. 그분들이야말로 내가 계속 책을 쓸 수 있게 지탱해 주는 존재이며, 나의 상상력조차 결국 앞선 누군가가 남겨놓은 소중한 흔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담담히 고백했다. 

이 깊은 성찰은 소설 속 "글을 쓴다는 것은 생각을 쓰는 일이었다. 생각은 나 혼자 만든 것이 아니었다"라는 상징적인 문장으로 이어지며, 쓰는 이와 읽는 이가 서로의 존재를 단단히 붙드는 메타 소설의 본질을 관통한다.

이날 차인표 작가는 소설 출간과 함께 오는 7월 국내 초연 연극 '죽은 시인의 사회'를 통해 연기 인생 33년 만의 연극 무대 데뷔를 밝히기도 했다. /사진=미디어펜


책의 제목을 '우리동네 도서관'으로 정한 이유 역시 지극히 인간적이었다. 차인표 작가는 "돌아보니 인생의 절반 이상을 내가 사는 동네에서 보내고 있더라. 도서관에서 글을 쓰며 그곳에 모인 평범한 이웃들을 바라보다 문득 과거 힘들게 사별했던 지인들의 기억이 스쳤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지금 내 곁에서 함께 숨 쉬고 살아주는 이 공간의 사람들에게 '같이 살아줘서 고맙다'는 마음이 울컥 들었다. 그래서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공간인 '우리동네 도서관' 외에 다른 제목은 도저히 생각할 수 없었다"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지난 2009년 '잘가요 언덕'으로 첫 펜을 잡은 차인표 작가는 이후 '오늘 예보', '인어 사냥' 등을 발표하며 성실하게 자신만의 문학 세계를 구축해 왔다. 첫 소설의 개정판인 '언젠가 우리가 같은 별을 바라본다면'이 영국 옥스퍼드대 한국학 필수 교재로 선정된 데 이어, 지난해에는 '인어사냥'으로 황순원문학상과 손호연 평화문학상을 동시 수상하며 명실상부한 중견 작가로 우뚝 섰다.

또 차인표 작가는 지난 해 '언젠가 우리가 같은 별을 바라본다면'으로 슬로베니아 류블라냐 대학교 한국학과에서 강연을 했고, 인도 마니푸르 대학교에서는 줌 강연을 했다. 또 '인어사냥'으로 튀르키예 이스탄불 대학교에서 강연도 했다.

올해로 배우 33년 차, 작가 17년 차를 맞이한 그는 오는 7월 한국 초연 연극 '죽은 시인의 사회' 무대에도 오르며 멈추지 않는 예술적 행보를 이어간다. 

창작자와 독자, 과거와 현재, 그리고 삶과 죽음의 경계를 따스하게 위로하는 차인표 작가의 신작 '우리동네 도서관'은 전국 서점가에서 만나볼 수 있다.

[미디어펜=이석원 문화미디어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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