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경쟁이 기술을 넘어 국가 경쟁력의 핵심 변수로 떠오르면서 글로벌 인재 확보전도 한층 치열해지고 있다. 미국과 중국 등 AI 강국들은 대학과 빅테크, 국가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인재를 장기 축적하는 데 공을 들이는 반면 국내에서는 연구 인력 유출과 산업 현장 불확실성이 동시에 커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미디어펜은 이번 기획을 통해 AI 시대 한국 산업 경쟁력의 현주소와 과제를 짚어본다. <편집자주>
[미디어펜=배소현 기자] AI 경쟁이 국가 총력전으로 확장되면서 승부를 가르는 핵심 자원도 점차 분명해지고 있다. 반도체와 GPU, AI 데이터센터(AIDC) 등 연산 인프라가 AI 산업의 기반이라면 이를 움직이는 것은 결국 사람이다. 미국과 중국 등 주요 AI 국가들이 연구·산업·교육을 연결해 인재를 장기 축적하는 동안 국내에서는 핵심 연구자와 전문가들이 산업 현장을 떠나거나 해외로 이동하는 현상이 반복되는 분위기다. 여기에 산업 현장의 인력 확보 경쟁과 노사 갈등, 정책 연속성 문제까지 겹치면서 AI 경쟁력의 기반인 ‘인재 생태계’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31일 업계에 따르면 글로벌 AI 경쟁은 최근 인재 확보와 정착, 산업 생태계 구축 경쟁으로 확장되는 모습이다. 미국과 중국이 AI를 국가 전략산업으로 육성하며 사람과 산업, 자본을 묶는 데 집중하는 가운데 한국은 인재를 오래 남게 만드는 구조가 상대적으로 약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 AI 시대 ‘진짜 자원’은 사람… 해외는 인재 축적
미국과 중국 등 AI 선도국은 AI 경쟁을 기술 개발보다도 인재 생태계 구축 관점에서 접근하는 모습이다.
우선 미국은 빅테크를 중심으로 대학과 연구기관, 스타트업을 연결하는 구조를 구축하며 AI 산업을 키우고 있다. 대규모 GPU 투자와 데이터센터 확충, AI 스타트업 투자 확대가 동시에 이뤄지는 배경 역시 결국 인재 확보 경쟁과 맞닿아 있다는 분석이다.
중국은 보다 직접적인 방식으로 움직이고 있다. 중국 정부는 AI와 첨단 반도체 경쟁이 격화하자 AI 인재를 사실상 전략 자산으로 관리하는 분위기다. 최근에는 알리바바와 딥시크 등 민간 AI 기업 연구개발 인력에게 해외 출국 전 승인을 요구하는 등 통제 범위를 확대하는 모습이다. 화웨이와 유니트리(Unitree)를 중심으로 휴머노이드와 산업형 AI 투자를 확대하는 한편 인재 유출을 막기 위한 국가 차원의 관리 역시 강화하고 있다.
또 중국은 2017년 ‘차세대 AI 발전계획’을 발표한 이후 AI 대학을 35개에서 600개 이상으로 확대하며 장기 인재 육성 체계를 구축해왔다. 최상위 AI 연구자의 자국 잔류율 역시 2019년 11%에서 2022년 28%로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영국 역시 AI 인재 유입과 정착 기반이 강한 국가로 평가된다. 런던을 중심으로 한 AI 허브와 옥스퍼드·케임브리지·런던을 잇는 ‘골든 트라이앵글(Golden Triangle)’을 기반으로 연구와 창업, 투자 생태계를 연결하는 구조를 갖춘 모습이다. 영국은 AI 기업 약 5800개와 연간 11조 원 규모 투자 생태계를 기반으로 유럽 내 대표적 AI 허브로 평가된다. 대학과 기업, 투자와 일자리가 연결되며 인재가 산업 안에 정착할 수 있는 생태계가 형성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 AI 인재는 떠나고 현장은 흔들리고… 한국 생태계의 과제
반면 국내에서는 AI 인재 확보 구조를 둘러싼 고민이 커지는 분위기다.
국내 이공계 인력의 해외 이동 역시 통계로 확인된다. 미국 내 한국인 이공계 박사 인력은 2010년 9000명 수준에서 2021년 1만8000명으로 증가했다. 서울대·KAIST·포스텍 등 주요 대학 출신 인력이 상당 비중을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연봉 격차는 해외 이직을 고려하는 가장 직접적인 이유로 꼽힌다. 아울러 연구 지속 가능성과 조직 문화, 경직된 보상 체계 역시 주요 요인으로 거론된다. 국내 초임 연구자 연봉이 약 5800만 원 수준인 반면 해외는 1억6000만 원을 웃도는 등 격차가 크다는 조사도 나왔다.
AI 산업 현장의 인력 확보 경쟁과 노사 갈등 역시 변수로 거론된다. 업계에서는 AI 전환과 연구개발 속도가 빨라질수록 숙련 인력 확보 경쟁과 조직 운영 부담도 함께 커질 수밖에 없다고 본다. 특히 최근 IT·플랫폼·통신업계를 중심으로 성과급과 보상 체계를 둘러싼 노사 갈등이 이어지면서 업계 일각에서는 단기 보상과 미시적 이해관계에 논의가 집중될 경우 중장기 연구개발 투자와 AI 전환 속도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업계에서는 AI 인재 문제를 단순 인력 부족보다 ‘축적 구조’의 문제로 바라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제기된다. 글로벌 AI 인덱스에서 한국은 종합 경쟁력 5위를 기록했지만 인재 부문은 13위, 인재 순유입은 마이너스를 기록하는 등 기술 경쟁력과 실제 인재 유입·정착 구조 사이에 괴리가 존재한다는 지적이다. 반도체와 ICT 인프라 경쟁력은 갖췄지만 정작 연구자와 개발자가 국내 산업 생태계 안에 오래 머물도록 만드는 구조는 상대적으로 약하다는 의미다.
◆ AI 3강 외치지만… 흔들리는 정책 연속성
산업계에서는 정책 연속성과 실행 구조 역시 중요한 변수로 보고 있다.
AI 전략이 장기 국가 프로젝트라기보다 정권과 정치 일정에 따라 흔들리는 구조가 반복된다는 우려다. 실제 AI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아온 국가AI전략위원회에서는 최근 핵심 인사들이 정치권으로 이동하며 정책 공백 가능성이 제기되기도 했다. 업계에서는 AI 행동계획과 규제 개선, 산업 지원 과제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후속 실행 체계와 책임 구조 역시 중요하다고 본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전국 곳곳에서 ‘AI 수도’와 ‘AI 허브’, AIDC 유치 공약이 쏟아지는 현상 역시 비슷한 맥락으로 읽힌다. AI 산업이 지역 성장 전략으로 주목받는 것은 긍정적이지만 GPU와 전력, 인재와 예산 계획 없이 무작정 데이터센터와 AI 산업단지만 내세우는 방식은 실효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업계 내 한 관계자는 “AI 산업은 인재와 소프트웨어 생태계가 동시에 갖춰져야 하고 핵심은 사람이 남는 구조를 구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업계에서는 AI 경쟁력의 본질을 다시 봐야 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업계 내 한 관계자는 “AI 3강이라는 구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실제 산업 현장에서 연구와 창업 등이 원활하게 이어질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일”이라며 “국가 전략 역시 정치적 이벤트보다 거시적인 인재 축적과 산업 경쟁력 강화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말했다.
[미디어펜=배소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