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구태경 기자] 일본 효고현 고베항 워터프런트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컨테이너 부두가 아닌 시민들이 오가는 공원과 상업시설이었다. 바다를 따라 조성된 산책로와 녹지공간, 새롭게 들어선 대형 아레나와 관광시설은 항만보다 도시공원에 가까운 인상을 줬다.
하지만 고베시의 설명은 의외였다. "물류 기능은 여전히 최우선입니다"
지난달 29일 고베시 항만국 관계자들과의 간담회에서 확인한 고베항 재생의 핵심은 항만을 없애고 도시를 만든 것이 아니었다. 변화한 물류 환경에 맞춰 항만 기능을 재배치하고 남은 공간을 시민과 관광객에게 돌려주는 것이었다.
1868년 개항한 고베항은 일본을 대표하는 국제무역항 가운데 하나다. 1900년대 들어 근대항만으로 성장했고 1960년대 이후 컨테이너 운송 시대가 본격화되면서 일본 물류 중심지 역할을 수행해왔다.
1981년 당시 고베 신항 개발현장./사진=고베시
전환점은 1995년 한신·아와지 대지진이었다.
당시 지진으로 약 6000명이 목숨을 잃었고 도시 전체가 큰 피해를 입었다. 항만시설은 약 2년 만에 복구됐지만 지역경제 회복은 쉽지 않았다. 고베시는 막대한 재정 부담을 안게 됐고 워터프런트 개발 역시 장기간 중단될 수밖에 없었다.
이후 재정 상황이 안정되면서 고베시는 2012년부터 본격적인 워터프런트 재생 사업에 착수했다.
재개발의 중심은 과거 물류 기능을 담당했던 신항부두 일대다. 과거 소형 선박들이 드나들던 공간은 컨테이너화가 진행되면서 역할이 줄어들었고, 고베시는 이 부지를 공원과 문화시설, 상업공간으로 탈바꿈시키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메리켄파크와 하버랜드다. 과거 항만시설이 자리했던 공간은 시민 휴식공간과 관광명소로 변모했다. 최근에는 신항부두를 중심으로 대형 아레나와 슈퍼요트 정박시설 조성도 추진되고 있다. 고베시는 일본 최초로 대형 슈퍼요트가 정박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세토내해를 찾는 글로벌 해양관광 수요를 끌어들인다는 구상이다.
시민 휴식공간과 관광명소로 탈바꿈한 대형 아레나와 요트 정박시설./사진=구태경 기자
고베의 상징인 포트타워도 최근 리뉴얼을 마쳤다. 1963년 건립된 포트타워는 내진 보강 공사를 거쳐 지난해 재개장했다. 향후 발생 가능성이 제기되는 대형 지진에 대비하기 위한 조치다.
워터프런트 개발 기획을 담당하고 있는 세키구치 나오키 항만진흥과 계장은 "바다와 산, 하늘 그리고 역사적 자산을 함께 살리는 것이 워터프런트 개발의 목표"라며 "기존 건축물과 역사 유산을 최대한 보존하면서 새로운 공간을 조성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고베는 도시와 항만이 맞닿아 있는 독특한 구조를 갖고 있다. 산과 도심, 항만, 바다가 한 공간 안에 어우러져 있다. 워터프런트 개발 역시 이러한 도시 특성을 유지하면서 시민과 관광객이 바다를 더욱 가까이 접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다만 고베시가 재개발에만 집중하는 것은 아니다.
세키구치 계장은 물류 비즈니스 확대가 여전히 최우선 과제라고 강조했다. 워터프런트 개발이 진행되는 가운데서도 항만의 기본 기능은 유지하고 있으며, 물류 경쟁력 확보를 위한 기반 확충도 지속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실제 고베항의 컨테이너 물동량은 2014년 217만 TEU에서 2022년 225만 TEU로 증가한 뒤 2024년에는 213만 TEU를 기록했다. 세계 주요 허브항만과 같은 급격한 성장세는 아니지만 항만 기능을 유지하면서 도시 재생을 병행하는 방향을 택한 셈이다.
이 같은 모습은 부산 북항 재개발과도 맞닿아 있다.
부산 역시 북항 재개발과 신항 확장을 동시에 추진하며 항만 기능과 도시공간 활용이라는 두 가지 과제를 안고 있다. 부산항만공사가 배후도시 활성화와 해양관광 기능 확대를 강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개항 이후 15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고베항은 대지진과 산업구조 변화 속에서도 항만과 도시의 균형점을 찾기 위한 실험을 이어가고 있었다. 항만을 지우지 않으면서도 시민에게 바다를 돌려준 고베의 선택이 부산항의 미래와 어떤 접점을 만들어갈지 관심이 모아진다.
[미디어펜=구태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