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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결정의 순간들: 포니에서 IPARK까지 50년의 기록 ③ 신도시 개척사와 '땅 매입 작전'의 막전막후

입력 2026-06-04 15:07:05 | 수정 2026-06-04 15:06:55
조태민 기자 | chotaemin0220@mediapen.com
[미디어펜=조태민 기자]"분당에 신도시를 건설하라. 기한은 없다. 속도와 규모가 곧 생존이다." 1980년대 후반, 대한민국은 유례없는 경제 호황 속에서 극심한 부동산 가격 폭등과 주택 부족 사태를 겪고 있었다. 팽창하는 서울의 인구를 분산시키기 위해 정부가 꺼내 든 카드가 바로 분당과 일산 등의 '1기 신도시 대개발'이었다. 황무지와 논밭이었던 경기도 일대를 거대한 주거 타운으로 바꾸는 이 국가적 프로젝트의 최전선에는 정부의 계획을 현실로 만들어야 했던 민간 건설사들의 치열한 야전이 있었다. 

올해(2026년) 발간된 IPARK현대산업개발(옛 HDC현대산업개발)의 50주년 사사 《결정의 순간들》 제2장 '도시의 탄생과 아파트 계급' 전반부에는, 대한민국 국토의 지도를 통째로 바꾼 1기 신도시 건설 당시의 긴박했던 막전막후와 숨 막히는 '땅 매입 작전'의 기록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한국도시개발 임직원들이 회사 현판을 설치하는 모습. 훗날 현대산업개발로 이어지는 한국형 디벨로퍼의 출발점으로 평가된다.

 
지도 한 장 들고 무작정 내려간 논밭… 현장에서 벌어진 부지 확보 전쟁
당시 정부가 지정한 대규모 택지개발지구 외에도, 건설사들은 독자적인 민간 대단지 아파트를 지을 수 있는 알짜 부지를 선점하기 위해 사활을 걸었다. 사사에서는 당시의 개발 풍경을 '총성 없는 전쟁'으로 묘사한다. 현대산업개발의 전신인 한국도시개발의 개발팀 직원들은 매일 아침 종이 지도 한 장과 지적도를 가방에 넣고 경기도 일대 논밭으로 출근했다. 토지 소유주들을 일일이 찾아내 계약을 맺어야 하는 이른바 '작업'이 시작된 것이다. 수십 명, 수백 명에 달하는 지주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종갓집 종손을 설득하고, 외지에 사는 친인척을 찾아 전국을 헤매는 일은 다반사였다. 사사에서는 "당시의 땅 매입은 단순히 부동산을 사는 행위가 아니라, 아무것도 없는 무(無)의 공간에 새로운 도시의 밑그림을 그리는 디벨로퍼의 첫 번째 결단이었다"고 회고한다. 경쟁사보다 하루만 늦어도 핵심 입지를 빼앗기는 구조였기에, 계약금 보따리를 들고 밤낮없이 지주들을 만나러 다녔던 현장 직원들의 절박함이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다.

정세영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 한국도시개발과 현대산업개발을 이끌며 대규모 주택 공급 확대와 아파트 사업 성장의 기반을 마련했다.


분당 신도시를 건설하며 '한국형 디벨로퍼'의 기틀을 닦다
이러한 치열한 부지 확보 노력의 결정체가 바로 분당과 일산, 그리고 서울 외곽에 들어선 대규모 '현대아파트' 타운들이었다. 현대산업개발은 단순한 시공사(건물을 지어주는 회사) 역할에 머무르지 않고, 직접 땅을 찾고 금융을 일으켜 분양까지 책임지는 '종합 디벨로퍼(토지 개발자)'로 진화하기 시작했다. 특히 분당 신도시 건설 참여는 회사 역사에 있어 엄청난 전환점이었다. 체계적인 도로망, 상업지구와 주거지구의 완벽한 분리, 단지 내 조경 공간의 확보 등 현대적인 의미의 '도시 기획' 능력을 완벽히 내재화하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때 축적된 대규모 단지 배치 노하우와 주거 동선 설계 능력은, 훗날 2000년대 대한민국 아파트 시장을 뒤흔든 명품 브랜드 '아이파크(IPARK)'의 강력한 뼈대가 되었다.

쾌적한 신도시의 탄생, 그 이면의 명암
사사는 1기 신도시 대성공의 역사만을 찬양하지 않는다. 단기간에 수십만 가구를 몰아서 지어야 했던 국가적 속도전 속에서 발생한 자재 부족 사태, 공사 현장의 과열 경쟁, 그리고 원주민들과의 토지 보상 갈등 등 '신도시 개발의 명암'을 균형감 있게 다루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기의 '땅 매입 작전'과 신도시 개척사는 오늘날 대한민국 중산층이 가장 살기 좋다고 꼽는 주거 인프라의 표준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역사적 가치가 높다. 맨땅에서 신도시를 일구어내며 한국인들에게 '아파트에서 사는 쾌적함'이 무엇인지 제대로 각인시킨 시기였던 셈이다.

[미디어펜=조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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